건축을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
“2012년 1월 27일, 해뜨기 전 아침 7시 25분에 써 내려간 글을, 이제야 다시 꺼내어 다듬습니다.”
건축을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
“아뜰리에 사무실에서 밑바닥부터 다 배워야 하나요?”
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저요? 96년에 졸업해서 중간 규모 사무실에서 12년 넘게 일했어요. 아뜰리에 사무실도 잠깐 몸담아봤고요. 둘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아뜰리에라고 해서 무조건 더 많이 배우는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건축’이라는 말 자체에 속았던 것 같아요. 그 안에 뭔가 순수하고 고귀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줄 알았거든요. 한때는 그랬죠. 서점에서 브루노 타우트의 책을 펼치며 감동했고, 르 코르뷔지에의 선 하나에 인생을 걸 생각도 했어요. 밤을 새우며 루이스 칸의 문장을 필사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뜨거웠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식어가더라고요.
처음 사무소에 들어갔을 땐, 복사기 옆에서 설계도면을 말아보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종이 냄새, 잉크 냄새, 손끝에 묻은 먹물… 그게 마치 진짜 건축가가 된 듯한 기분을 줬죠. 그런데 그건 입구였을 뿐이었어요. 그 너머에는 수많은 회의, 끝도 없는 수정, 반복되는 실수와 책임, 현실이라는 이름의 질감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뜰리에 사무소는 왜 열악하냐고요? 사람 수를 줄여야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인건비 줄이려다 보면 사수도, 가르침도, 시스템도 사라져요. 그러다 보면 ‘혼자 알아서’가 전부가 되는 거죠.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당신이 만약. 자영업을 한다면 유의해야 해요.
인건비에 목숨을 걸다보면,
시스템이 사라져요.
그럼 그때부터는 '당신을 갈아넣어야 해요'.
예전 제 스승이셨던 토마스○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셨어요. “건축가는 원래 엘리트의 직업이야.” 그땐 듣기 싫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아요. 엘리트라는 건 능력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였던 거죠.
요즘은 천상병 시인의 시가 자주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건축에 대한 환상, 많이 접었지만, 아직도 마음 한 켠엔 남아 있어요. 그 환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면, 이 일도 안 했겠죠.
하지만 지금 나는 설계를 쉬고 있어요. 어떤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삶이라는 게 어느 순간 설계도면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만들었어요. 대신, 나무를 깎고, 가구를 만들고 있어요. 종이 위의 선에서, 손에 잡히는 물성으로 삶이 이동했죠. 그렇게 나는 조금씩 건축에서 멀어졌고, 이제는 건축이란 단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일까요. 요즘은 가끔 외로워요. 설계를 한다는 정체성은, 그 자체로 사람을 건축가로 보이게 만들죠. 하지만 이제 나는 설계를 하지 않으니, 어떤 이들에게는 더 이상 건축가가 아니게 된 거예요. 그 소외감이, 은근히 스며듭니다.
예전엔 제가 경력직 면접 볼 때면 꼭 물었어요. “어디서 일했어요? 누구 밑에서 배웠나요?” 혼자서 일 다 했다는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못 배운 경우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 처음엔 잘하는 줄 알았는데, 틀 자체가 어긋나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한 번은 팀 과장이 설계 변경하면서 지하주차장 복도폭 기준을 놓친 적이 있어요. 기둥을 안쪽으로 옮기기만 했는데, 그게 결국 시공 문제로 번졌어요. 설계 도서 책임은 저희에게 있었고, 영업정지 이야기까지 나왔죠. 그 친구는 실력도 있었고, 센스도 좋았는데, “리스트는 안 봐도 돼요”라는 말이 결국 화근이었죠.
그래서 저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믿어요. 사람은 피곤하고, 깜빡하고, 놓쳐요. 시스템은 안 그러죠. 체크리스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한 번 실수해 보면 절실히 느끼게 돼요.
요즘 친구들, 실력 정말 좋아요. 캐드, 스케치업, 맥스, 포토샵, 일러스트까지 빠삭하죠. 근데 중요한 건, 그걸 어디서 누구한테, 어떤 방식으로 배웠냐는 거예요. 기술은 금방 늘 수 있어요. 근데 틀을 고치기는 진짜 어렵거든요.
법 얘기도 해볼까요? 우리나라는 ‘허용된 것 외엔 다 불법’이에요. 미국은 정반대죠. 한 번은 미국 설계사무소랑 협업했는데, 법적 기준을 잘 모르더라고요. 속으론 비웃었죠. “이런 것도 몰라?” 그런데 알고 보니 걔네는 그냥 안 보는 거예요. 설계의 논리만 있으면 되니까요. 부럽기도 했어요.
(※ 이건 '해양법'과 '대륙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듯해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를 쉬게 된 뒤, 나무를 깎으며 생각했어요. 나는 여전히 구조를 만들고 있는 걸까? 내 손끝이 닿는 이 선들에 어떤 의미가 남아 있을까? 건축을 떠났지만, 어쩌면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설계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다만, 그게 이제는 도면이 아니라, 내 삶 그 자체일 뿐이죠.
어느 겨울 아침, 커피포트 앞에서 여후배가 울고 있었어요. 밤새 작업한 도면이 클라이언트에게 퇴짜 맞았대요. 저는 뭐라 했냐고요? “그럴 수도 있어. 근데 그걸로 끝나면 안 돼. 다시 그려야지. 그게 설계야.” 그 말, 지금도 제 스스로에게 하는 중이에요. “다시 그려야지.”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건축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첫 단추를 잘 끼우세요. 규모보다 시스템이 중요하고, 시스템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예요.
언젠가는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건축이란 게 단순히 집을 짓는 일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걸요. 그 구조 안에 나를 넣고, 가족을 넣고, 기억을 넣고, 미래를 넣는 일.
지금 저는 설계를 쉬고 있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자유롭죠. 하지만 가끔은 그 도면 위에 다시 손을 얹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건 아마, 건축이 나에게 준 어떤 감정들이 아직 완전히 떠나지 않아서일 거예요.
우리는 건축을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을 설계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비로소 진짜 건축이 시작됩니다.
대표 국가: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특징: 판례 중심: 과거 법원의 판결(판례)을 중시. 법률이 없더라도, 판사가 유사사례를 기반으로 판단 가능. 실무적이고 유연함. 주로 관습과 판례를 통해 발전
대표 국가: 독일, 프랑스, 한국, 일본 등
특징: 성문법 중심: 명문화된 법률(민법, 형법 등)에 따라 판단. 법 조문이 없는 경우, 판사는 제한적으로만 판단 가능.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구조. 법전(코드)에 의한 법 체계 강조
따라서 위 글의 문맥에서 말하는 건축법의 경직성, 즉 “법에 없는 건 불법”이라는 구조는 대륙법적 사고방식의 영향입니다.
반면 미국식 설계 문화의 자유로움은 해양법(판례법)**의 유연성에서 비롯된 것이죠.
※ 그러나 대륙법은 멋있어요. 굉장히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면에서 건축적이에요. 아름답지요.
ps.
미국 법정 드라마 보면 진짜 박진감 넘치잖아요.
“이의 있습니다!!!!” 외침에 흐름이 뒤집히고,
변호사는 열변을 토하고, 배심원은 술렁이고요.
근데 한국 법정 드라마는 조용하고 차분하죠.
이건 단순한 연출 차이가 아니라 법 체계의 차이 때문이에요.
미국은 해양법(Common Law) 체계라 과거 판례가 중요한 기준이 되고,
논리와 말싸움이 핵심이에요.
그래서 드라마도 자연스럽게 극적이 되는 거고요.
반면 한국은 대륙법(Civil Law) 체계.
법 조문과 증거 중심이라 판사는 듣고,
검사는 자료 내고,
변호사는 정리합니다.
말보다 문서가 중요하니 드라마도 잔잔해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미국 법정은 ‘말의 무대’,
한국 법정은 ‘절차의 흐름.
단지 시스템의 차이일 뿐.
그래도 가끔은, 우리 법정 드라마에서도 “Objection!” 한 번쯤 터지면 어떨까 싶긴 해요. �
글맛이 없듯 드라마맛이 없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