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건축가와 건축주 02.

― 그녀가 떠난 후, 공간은 남

건축가와 건축주 02.

― 그녀가 떠난 후, 공간은 남았다


그녀는 이사를 끝낸 후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물론,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관계의 마침표를 길게 끌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심스럽고, 단정하게 사라지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나중에야 그녀가 제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친구에게서였다.

정확히 어디인지,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 직접 묻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단지 그 집이, 그녀 없는 상태로

서울의 한 주택가 안에서 여전히 그대로 서 있다는 것만이 내겐 중요했다.


나는 몇 달에 한 번씩 그 집을 지나쳤다.

일부러가 아니라, 현장 답사를 가는 길목에 어쩌다 마주치는 식이었다.

그래서 더욱 자연스럽고 이상하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얀 외벽은 여전히 깨끗했고,

검은 창틀에는 새 커튼이 달려 있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고른 조명은

밤이 되면 테라스 창 너머로 희미하게 빛났다.


그 빛을 멀리서 보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공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을.

그녀가 주방 조명의 밝기를 세 번이나 바꿔달라고 했던 것,

욕실 창문 위치를 몇 번이고 함께 고민했던 것,

그리고 어느 날, 무릎을 꿇고 거실 벽면을 손으로 천천히 쓸던 그녀의 손동작을.


그것들은 도면에도, 계약서에도 없는 시간들이었다.

다만 그 집의 구조와 채광, 벽지의 질감 속에

아주 조용히 남아 있었을 뿐이다.


언젠가 꿈을 꿨다.

그 집 거실에 내가 혼자 앉아 있는 꿈.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테라스 창엔 그녀가 한때 걸었던 바람받이 커튼이 아주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 커튼을 보고 있었고,

꿈속의 나는 조금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하고, 잠깐 멈춘 듯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잠에서 깼을 때,

방 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집을 다시 지나치지 않았다.


사람이 떠나도 공간은 남는다.

하지만 그 공간도 결국, 조금씩 다르게 살아간다.


그녀가 남긴 집은 지금도 누군가의 일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커튼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고,

조명은 다른 전구로 교체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나는 안다.

그 집의 창문 사이로 흐르던 겨울 햇살을,

그녀가 커피를 내려 마시던 그 오전의 정적을,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서로 기대었던 그 시간의 두께를.


그 집은 나에게,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잠깐 머물렀던 감정의 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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