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건축가와 건축주 03.

― 한 통의 엽서


건축가와 건축주 03.


― 한 통의 엽서




그 엽서는 봄비가 내리던 날 도착했다.


우편함을 열었을 때,


나는 그 엽서를 바로 꺼내지 않고 잠시 바라보고만 있었다.


엷은 푸른색 종이, 손글씨로 적힌 주소.


그 필체는 여전히 단정했고,


조금은 숨을 참으며 쓴 것처럼 조용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나는 단번에 그녀라는 걸 알았다.


필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엽서 앞면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제주, 어느 바닷가의 오래된 돌담.


그리고 그 위에 기대앉은 길고양이 한 마리.


아무 설명도 없는 이미지였지만,


그녀라면 이런 그림을 골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엽서의 내용은 이랬다.






민수 씨,




그 집은 잘 있나요.


저는 요즘 매일 아침 귤나무 사이를 걷고 있어요.


가끔 서울의 겨울빛이 그립긴 하지만,


지금 이 바람도 나쁘지 않네요.




요즘은 조용한 집에서 작은 음악을 듣거나,


예전처럼 직접 커튼을 달고 있어요.


낮은 조도의 조명도 마음에 들어요.


이상하게 서울에서보다 훨씬 어두운 불빛인데,


더 따뜻하게 느껴져요.




무릎이 좀 아파졌지만,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그 날의 조명’을 기억하는 사람 드림.






엽서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다.


무슨 답장을 쓸까 고민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저 손으로 엽서를 뒤집었다 폈다 하며,


그녀의 문장을 소리 내어 몇 번 읽었다.




“그 날의 조명…”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맴돌았다.




그녀는 집을 떠났고, 도시를 떠났고,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것들에서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엽서 한 장은 마치 작은 등불처럼


내 책상 위에, 내 마음 어딘가에


오래 켜져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저녁이면 조명을 한 단계 낮춘다.


조금 어둡고, 조금 쓸쓸한 불빛 속에서


말없이 그 엽서를 다시 꺼내 읽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한 장의 엽서.




하지만 나에게는,


그 집의 마지막 햇살과 같은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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