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단상

나는 이제, 글을 짓고 있다

『퇴근길 단상 ― 나는 이제, 글을 짓고 있다』

도면을 넘기던 손으로 문장을 짓는 일에 대하여


나는 더 이상 도면을 그리지 않는다.

마감이 가까운 월요일 밤, 형광등 아래서

벽체 두께를 조정하고, 계단 단높이를 고민하던 그 시간은

지금은 머릿속에서만 가끔 느리게 재생된다.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손끝에, 예전 그 선 긋는 감각이 남아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그건 어쩌면 오래된 직업이 남긴,

몸의 어딘가에 각인된 ‘구조의 리듬’이다.

기억도, 구조도, 그렇게 늦게 반응한다.


퇴근길이면 나는 자주 창밖을 바라본다.

강 너머 고층 건물들, 지하철 기둥의 간격,

아파트 외벽에 드리워진 반복의 문양들.

그 모든 것을 나는 아직도 구조적으로 읽는다.

도면 없이도 도면처럼 보는 감각.

그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엔

사람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지나간 자리에서도 감각이 남는 공간.

지금은 문장을 통해

그런 감각을 짓고 싶다.


내가 지금 쓰는 글에는

벽 대신 문단이 있고,

지붕 대신 여운이 있다.

기둥처럼 버티는 중심 문장과,

하중을 분산시키는 부속 문장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구조 설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달라진 건 재료다.

이전엔 콘크리트와 철근이었다면,

지금은 단어와 문장과 여백이다.

쉼표 하나에도,

문단을 나누는 공백 하나에도,

나는 여전히 ‘균형’을 고민한다.


하루키의 문장을 읽던 시절처럼,

나도 어떤 감정은 직접 쓰지 않고

그저 고요하게 둘러앉히는 방식으로 남겨두려 한다.

그게 내가 믿는 설계 방식이다.


문장은 보이지 않는 구조다.

나는 이제, 그것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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