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내진설계와 기억의 복원력에 대하여
『퇴근길 단상 ① ― 흔들림의 기술』
― 내진설계와 기억의 복원력에 대하여
퇴근길이면 늘 한강을 지난다.
창문을 따라 도시는 천천히 흘러가고,
바람은 교각 밑에서 어설프게 치솟았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그 강 위엔 언제나 고층건물들이 서 있다.
유리 커튼월에 노을이 박힌 저 실루엣들,
그중 하나는 언젠가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확인해 본 적은 없다.
설계자란 늘 익명 속에 남는다.
얼마 전, 일본 남부 해역에서 지진 전조파가 관측됐다는 기사를 봤다.
7월 중 대지진이 올 수 있다는, 확실하지도 과장이라 치부하기도 애매한 이야기.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확실한 진동은,
내 퇴근길의 감각과 겹쳐졌다.
도면을 넘기던 오래된 손끝,
그 끝에 아직 남아 있는 구조의 리듬이
어디선가 미세하게 울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종종 생각한다.
이 건물은 몇 층까지 S파를 고려했을까.
기초 아래엔 면진 장치가 들어갔을까.
지상 30층에서 흔들리는 감각은 어느 정도일까.
도면을 그리지 않은 지 오래됐는데도,
그런 생각은 버릇처럼 따라온다.
내진설계는 건축에서 아주 기본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그 기본이라는 것이
얼마나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지,
설계자만이 안다.
지진은 두 가지 파동으로 다가온다.
빠르게 도달하는 P파,
그리고 그보다 느리지만 파괴적인 S파.
P파는 예고처럼 지나가지만,
S파는 구조물의 약한 방향을 정면으로 흔든다.
내진설계는 이 두 파동을 계산해
건물의 고유 진동수와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대화다.
보이지 않는 땅의 리듬과,
그 위에 세워진 구조의 리듬이
서로를 무사히 지나가도록 허용하는 설계.
내가 처음 내진 설계를 맡았을 때,
사수는 이렇게 말했다.
“절대 안 흔들리게 설계하지 마라.
흔들릴 수 있게 설계하되, 무너지지 않게 해.”
그 말은 그 후로 오래 남았다.
흔들리지 않는 구조는 없다.
있는 건 오직, 흔들림을 받아들이는 방식뿐이다.
어느 부재에 얼마만큼의 유연성을 줄 것인지,
감쇠 장치는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어떤 균열은 받아들이고,
어떤 진동은 흘려보낼 것인지.
건물마다 고유 진동 주기가 다르다.
지하 3층, 지상 20층의 콘크리트 구조와,
복층 구조의 철골 사무동은
서로 다른 리듬으로 흔들린다.
그 리듬을 설계하는 것.
그게 내진설계다.
요즘 나는 그 기술을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도 구조다.
마음도, 관계도,
어떤 진동엔 크게 휘청이고,
어떤 충격엔 잠깐 멈칫할 뿐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 구조가 ‘복원’되느냐는 것이다.
기억을 복구하고, 감정을 재배치하며,
다시 중심을 잡는 일.
건축에서는 그걸 ‘복원력’이라 부른다.
문서엔 resilience라고 쓰지만,
나는 그걸 마음의 기술로 읽는다.
흔들림을 견디는 힘,
혹은 흔들린 뒤에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
퇴근길의 도시가 흔들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속도로.
건물도, 사람도, 감정도
그 흔들림 위에 서 있다.
그 사실은 불안하면서도 묘하게 다정하다.
흔들릴 수 있다는 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문장에도 그런 구조를 짓고 싶다.
어딘가 한 줄은 기둥처럼 버티고,
또 다른 줄은 흔들림을 품을 수 있도록 유연하게.
한 구절이 독자의 마음에 들어갔을 때,
그 마음이 조금 흔들릴 수는 있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도록.
이것이 내가 설계자로서 배운 첫 번째 교훈이고,
지금 글을 짓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싶은 첫 번째 윤리다.
2025.06.09.
흔들리는 창가에서,
문장을 조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