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단상 ② ― 구조는 윤리다』

_수치와 책임 사이의 균열

『퇴근길 단상 ② ― 구조는 윤리다』

― 수치와 책임 사이의 균열



나는 퇴근길에 종종 같은 골목을 돈다.

멀리 돌아가지만 그 길을 택하는 이유는

거기 오래된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3층 높이의 벽돌 건물,

세월에 벗겨진 모르타르 외벽,

모서리마다 조금씩 기울어진 창틀.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은 지금쯤 은퇴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

그의 도면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 벽을 보면,

왠지 미세한 부끄러움 같은 걸 느낀다.

그 부끄러움은 나를 향한다.



내가 설계를 처음 배울 때,

선배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계산이 맞다고 해서, 설계가 옳은 건 아니야.”



그 말은 오래도록 이해되지 않았다.

수치로 증명되는 세계에서

‘맞다’와 ‘옳다’는 언제나 같은 줄 알았다.

하지만 설계를 하다 보면

‘맞지만, 옳지 않은’ 구조를 너무 자주 만나게 된다.


기능은 되지만,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동선.

코드는 통과하지만,

거주자가 견딜 수 없는 단열.

심지어는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침묵해야 할 배치까지.



그러니까 구조란

하중을 지탱하는 기술이기 전에,

먼저 삶을 지지할 수 있는 윤리여야 한다.

그게 내가 배운 설계의 두 번째 진실이다.


퇴근길의 도시엔 수많은 구조가 있다.

그 구조는 대부분,

이미 ‘계산이 끝난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묻는다.

‘이 구조는 정말 옳았을까?’



나는 구조기술자가 아니지만,

도면을 넘기며 살아온 세월이 있다.

그 도면 위엔 늘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1층 보의 높이를 조정할 것인가,

기둥을 외벽선 안으로 집어넣을 것인가,

계단참을 빼고 엘리베이터를 옮길 것인가.


그리고 대부분의 선택은

시간과 예산과 타협하며 결정되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은

언제나 묵직한 정적 속에서 찾아왔다.


어떤 도면은 ‘계산이 옳다’는 이유만으로

허술하게 넘어갔고,

어떤 도면은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며칠씩 다시 그려야 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재능이 아니라 태도였다.

설계자 개인이 어디까지 책임을 받아들이는가의 문제.



건축은 언제나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 직업이다.


도면 하나가

100명의 삶을 바꾸고,

계단의 너비가

한 명의 생사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구조란,

수치보다 더 오래 남는 윤리의 형태다.


단단하게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르게 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이 머물고,

사람이 살아내야 하는 공간이라면

설계는 곧 책임이어야 한다.



나는 이제 도면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문장을 짓는 지금도,

그 책임감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을 때,

그 마음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기둥 하나, 쉼표 하나를 신중하게 배치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글도 결국 설계다.

조용히, 오래 견디는 구조.

흔들리더라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윤리.



퇴근길,

나는 오늘도 그 오래된 교회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그 벽을, 기둥을, 창을 바라본다.

내가 짓지 않은 구조를 보며

내가 배운 구조의 본질을 다시 되새긴다.





2025.06.10.


돌아서기 전,

오래된 벽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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