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같은 공간, 감정의 틈
『퇴근길 단상 ③ ― 건축과 감정 사이, 설계의 여백』
― 쉼표 같은 공간, 감정의 틈
퇴근길이면 나는 자주 ‘틈’을 본다.
빌딩과 빌딩 사이의 간격,
고가도로 아래 비어 있는 삼각형 모서리,
창문 프레임과 유리 사이의 얇은 실링 틈.
그런 공간은 늘 조용하고,
묘하게 감정적이다.
건축을 할 때, 나는 무언가를 “짓는 일”보다
무언가를 “비워두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느꼈다.
벽을 세우는 건 쉽다.
치수대로 쌓으면 된다.
하지만 벽과 벽 사이의 거리,
그 사이에 놓일 침묵 같은 공간은
계산이 아니라 감각으로 남는다.
나는 그 감각을 오래도록 다듬으며 살아왔다.
출입구 앞의 여백을 넓힐 것인지,
계단참 위에 채광창을 열 것인지,
창틀 아래 단차를 몇 밀리미터 높일 것인지.
그 모든 건 사람의 시선, 걸음, 마음이
어디쯤에서 멈추고 쉬게 될지를 상상하는 일이었다.
어떤 공간은 너무 가득 차 있다.
기능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숨 쉴 틈이 없다.
이야기를 걸 수 있는 여백이 없다.
그런 공간에서는 오래 머무르기 어렵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감정이라는 것도
그 자체로 흘러넘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담길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화는 침묵 때문에 의미가 생기고,
어떤 글은 빈칸 덕분에 마음에 남는다.
건축도 다르지 않다.
의도적으로 비워진 공간,
그 안에 채워지는 건 기능이 아니라
머무는 사람의 감정이다.
설계자로 일하던 시절,
나는 항상 이런 메모를 남기곤 했다.
“이 부분, 조금 더 비워둘 것.”
“의도된 무의미가 필요함.”
“기능 없음, 감정 있음.”
하지만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기 그냥 창고로 막죠?”
“이건 동선 낭비 아닙니까?”
“이렇게 비워두면 건축주가 뭐라고 할 텐데요.”
그럴 때면 나는 말없이
커피를 마시거나,
계획안을 덮거나,
혹은 회의실 벽에 붙은 파란 조도를 바라보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지만
누구보다 많이 비워두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는 걸
그들은 몰랐다.
요즘은 글을 쓰며 그 감각을 다시 꺼내 본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
의미와 의미 사이의 공백.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띄어쓰기 하나에도
나는 오래 멈춰 있는 편이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걸 전한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은
결국 여백으로 남는다.
건축의 틈처럼.
감정은 그 틈에 스며들어
사람의 기억이 된다.
퇴근길의 도시엔
기억이 쌓이기 좋은 틈이 많다.
계단참, 비상계단 끝의 난간,
교량 아래의 벤치,
그리고 버스 정류장 옆 기둥 뒤 그림자.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잠시 멈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하루를 접는다.
그게 도시가 감정을 수용하는 방식이다.
설계되지 않은 듯한 틈,
그러나 정확히 계산된 여백.
나는 지금도 그런 여백을 짓고 싶다.
문장으로.
의도를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거리.
기억이 은근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내가 믿는 감정의 구조다.
2025.06.11.
버스 정류장,
비어 있는 벽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