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현장은 늘 설계를 뛰어넘는다
『퇴근길 단상 ④ ― 구조계산보다 무서운 현장의 눈빛』
― 현장은 늘 설계를 뛰어넘는다
퇴근길, 나는 공사 중인 현장을 자주 지나친다.
천막이 반쯤 걷힌 가설 펜스 너머로
굴삭기 소리, 작업자들의 짧은 외침,
모래가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면을 그리던 시절,
나는 자주 현장에 나갔다.
사무실에서 쓴 구조계산서와
현장에서 마주하는 실제 구조물 사이엔
늘 작고 고집 센 괴리감이 있었다.
수치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현장소장은 뭔가를 찜찜해했다.
"이거, 기둥이 이쯤이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여기 철근은 좀 더 넣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럴 땐 난 보통 노트를 꺼내
도면을 다시 들여다보곤 했다.
“구조계산은 충분히 돼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그 눈빛 앞에서는
왠지 나 자신이 작아졌다.
책임의 단위가 달랐다.
계산은 숫자고,
눈빛은 경험이다.
전자는 정밀하지만, 후자는 감각에 가깝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감각이 옳은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은
계단실 보 하단이 예상보다 낮게 내려왔다.
설계상 오차는 8밀리미터였지만,
그 오차가 만든 그림자는
공간 전체를 무겁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저 '뭔가 불편하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건축은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오래 남는다.
눈에 띄는 파사드보다,
손에 닿는 문손잡이보다,
공기의 흐름이나 그림자의 깊이,
즉 감각적인 불일치가
사람을 멀어지게 한다.
나는 그때 알았다.
현장의 눈빛은 구조를 읽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걸.
그것은 수치의 적확함이 아니라
직관의 리듬이다.
그들이 멈춰 선 지점엔
항상 어떤 문제의 전조가 있었다.
퇴근길의 도시에서,
나는 여전히 그런 눈빛을 느낀다.
엎어진 가로수의 뿌리,
기울어진 외벽 타일,
급하게 보강된 철재 브레이싱.
그 하나하나가
도면에선 미처 읽히지 않았던 결과물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그렸던 구조는 정말로 사람의 동선을 이해하고 있었는가?’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공간을, 내가 안다고 착각한 건 아닐까?’
요즘은 문장을 쓰며
그 눈빛을 다시 떠올린다.
글도 결국 현장을 가진다.
누군가 읽는 순간,
내가 계산한 의미는 꺾이고,
의도치 않은 감정이 들어선다.
그리고 나는,
그 해석을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감탄한다.
현장은 언제나
설계를 뛰어넘는다.
계산보다 무서운 건,
그것을 ‘한눈에 알아보는 사람의 눈빛’이다.
그건 경험이 만든 감각이고,
나는 그 감각 앞에서 겸손해지는 법을
20년 설계 끝에 겨우 배웠다.
2025.06.12.
퇴근길,
현장을 지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