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단상 ⑤ 여름의 단열, 그리고 기억의 누설점』

_습도는 감정을 흘리고, 단열은 그것을 붙잡는다

『퇴근길 단상 ⑤ ― 여름의 단열, 그리고 기억의 누설점』

― 습도는 감정을 흘리고, 단열은 그것을 붙잡는다



여름 퇴근길은 조금 다르다.


바람은 후덥지근하고,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마치 도시가 스스로 발열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럴 때면 나는

예전에 설계했던 어떤 소규모 다가구 주택의 단면도를 떠올린다.


옥상 슬래브 위로 타르 방수층을 덮고,

그 위에 단열재를 얹던 오후.

그날의 태양은 매서웠고,

콘크리트는 여과 없이 열을 품었다.

그리고 그 열은 밤이 되어도 식지 않았다.



단열이란,

외부의 열을 내부로 들이지 않도록 막는 기술이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내부의 온기를 외부로 새지 않도록 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건 일종의 ‘기억 보존 장치’ 같기도 하다.



공간엔 기억이 스민다.


사람이 오가고, 말을 나누고, 가만히 멈춰 숨을 고르는 동안

그 공간은 습도처럼, 냄새처럼

어떤 것을 담는다.


그리고 단열이 잘된 공간은

그 기억을 오래도록 품는다.



하지만 단열이 허술한 공간은

기억을 붙잡지 못한다.


열이 빠져나가듯,

사람도, 말도, 감정도 새어나간다.

그게 내가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배운 감각이었다.



어느 여름,

나는 외벽 단열이 빠진 다세대 주택의

2층 원룸에 갔던 기억이 있다.

거긴 여름엔 뜨거웠고,

겨울엔 뼛속까지 추웠다.

설계상으론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사람은 거기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게 구조의 결함인지, 감정의 결핍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사람도, 공간도,

어디선가 새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단열재가 눌려 찢어진 벽처럼,

우리도 어떤 계절엔 쉽게 상처 난다.

특히 여름.

모든 게 과도하게 팽창하고,

바깥과 안의 온도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계절.



퇴근길,

나는 종종 벽돌 사이의 줄눈을 본다.


그 얇은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고,

태양열이 저장되고,

어쩌면 누군가의 말 한 조각도 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억도 그렇다.

잘 닫힌 구조에선 오래 보존되지만,

틈이 생기면 스며나가고,

어느 날 문득,

전혀 엉뚱한 순간에 흘러나온다.


가령,

에어컨이 꺼진 버스 안의 퀴퀴한 냄새처럼.



문장을 쓸 때,

나는 그것이 기억을 누설하는 통로인지,

기억을 보존하는 구조인지 고민한다.


어떤 문장은 쉽게 마음을 식히고,

어떤 문장은 오래 머물게 한다.



건축에서 단열의 완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열화상 카메라로만 확인되는 미세한 경계,

그 투명한 막이

사람을 보호하고, 공간을 살린다.



글도 그렇다.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문장엔

단열이 없다.


열기가 그대로 드러나고,

감정이 지나치게 맨살로 노출된다.

나는 그런 문장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여백을 둔다.


쉼표를 넣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온도를 맞춘다.


글이 너무 덥지 않도록.

기억이 너무 빠르게 흘러나가지 않도록.



퇴근길,

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오후 7시 반.

나는 단열되지 않은 오래된 아파트 옆을 걷는다.


그곳엔 한때 누군가의 여름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빠져나간 시간의 껍질만 남아 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구조를

어느 정도까지 만들 수 있을까.





2025.06.13.


저녁 열기 속,

사라진 여름의 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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