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사람 사이의 거리, 출입구 하나로 결정된다
『퇴근길 단상 ⑥ ― 건축은 결국 관계의 설계다』
― 사람 사이의 거리, 출입구 하나로 결정된다
퇴근길에 한 번쯤 마주치는 풍경이 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라치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
어깨를 조금 비껴 스쳐 지나가거나,
어색하게 멈춰 한쪽이 먼저 비켜주는 장면.
그 짧은 교차의 순간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있다.
건축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있다.
동선이 겹치고,
시선이 만나고,
어딘가는 침묵이 생긴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출입구의 위치에서 시작된다.
출입구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는 단순한 도면상의 배치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디서 마주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엇갈릴 것인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계단이 보이는 복도식 아파트와,
각 가구가 벽으로 단절된 복도형 아파트는
거주자들의 ‘관계의 결’부터 달라진다.
설계를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여기 문을 오른쪽으로 트는 게 낫겠죠?”
“중문 없으면 거실이 바로 노출되는데요.”
그 말들 속엔
기능이나 미관보다 더 중요한 게 숨어 있다.
어떤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가.
얼마나 노출되고 싶은가.
사람 사이에 얼마만큼의 여백을 두고 싶은가.
나는 한때
어느 교회 리모델링 설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기존 평면엔 사무실과 예배당 사이에 벽 하나 없이
직선으로 시선이 뚫려 있었다.
그 때문에 직원들은 늘 조용히 몸을 숨겼고,
성도들은 공간의 경계를 알 수 없어 머뭇거렸다.
나는 그 사이에
가벽을 하나 넣고, 출입구를 사선으로 틀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람의 얼굴이 아닌
탁자 모서리와 햇빛이 먼저 보이게.
그걸로 사람들은
서로를 더 부드럽게 만나게 되었다.
관계는 구조로 결정된다.
공간이 먼저 말하고,
사람은 그 뒤를 따른다.
퇴근길의 도시를 걸으면
그 관계의 선들이 곳곳에 있다.
출입구를 마주한 오피스텔 현관,
벽을 사이에 두고 말소리가 은근히 새는 학원 건물,
쇼윈도와 벽면이 반쯤 닫힌 카페의 테이블 배열.
사람들은 그 안에서 관계의 위치를 잡는다.
너무 가까우면 불편하고,
너무 멀면 낯설어진다.
도면에선 이걸 ‘최소 이격 거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걸
최적 감정 거리라고 불러왔다.
불필요한 침범 없이,
그러면서도 필요한 접촉은 놓치지 않는 거리.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문장과 문장 사이,
독자와 서술자 사이,
나는 얼마나 가까워질 것인가를 묻는다.
정직하게 드러내되, 과도하지 않게.
속마음을 내보이되, 공간은 남겨두게.
그건 결국 관계의 설계다.
그리고 그 설계는 언제나
조금씩 틀릴 수밖에 없다.
사람은 건물보다 복잡하니까.
하지만 틀릴 수 있다는 걸 아는 설계자만이
다시 고쳐 짓는 법을 배운다.
퇴근길,
나는 가끔 옛 도면들을 떠올린다.
그중 몇몇은 지금도 내가 기억한다.
구조가 부족했지만 따뜻했던 집,
완벽하게 시공되었지만 텅 비었던 건물.
관계를 지을 수 없는 건축은,
결국 공간으로도 실패한 셈이다.
나는 더 이상 도면을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글을 쓰며
관계를 설계한다.
어디쯤에서 마주치고,
어디쯤에서 돌아서야 하는지를
쉼표와 문단 사이에서 고민한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어떤 자세로, 어떤 거리를 두고 읽고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거리가
편안하길 바란다.
그 거리야말로,
지금 내가 설계한 이 글의 최종 구조니까.
2025.06.14.
퇴근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건축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