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단상: 시즌2 ① ― 소음과 구조』

불협의 설계

『퇴근길 단상: 시즌2 ① ― 소음과 구조』

― 불협의 설계



퇴근길, 오래된 다세대 주택 옆을 지난다.


창문은 모두 닫혀 있지만, 안에서는 누군가가 텔레비전을 틀고 있었다.

사극이었다.

어딘가에서 대사가 울려 나왔다.

“이놈, 사내대장부가…”

그리고 이내 벽에 부딪혀 깨진 소리로 퍼졌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창문은 단열 이중창이었고,

벽은 시멘트 블록 위에 스터코 마감이었다.


하지만 그 안의 생활은

아주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건물의 ‘차음 성능’은 언제나 숫자로 평가되지만,

감정은 틈새로 샌다.



설계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소음 차단’이라는 개념을 기능적으로만 이해했다.


음향 차단 지수, STC 값, 층간소음 기준.

하지만 현장에서 그 숫자들은 무력했다.

벽 하나 사이로 싸움이 새어 나오고,

천장 위로는 누군가의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감정처럼 떨어졌다.



그때 처음 알았다.

소음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이의 문제라는 걸.


벽 두께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에서 새어 나온다는 걸.



퇴근길이면 나는 귀를 기울인다.

어디선가 울리는 발소리,


닫히지 않은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통화의 잔향,

편의점 앞 벤치에서 튼 블루투스 스피커의 저음.



도시는 무수한 소리로 채워져 있지만,

그중 어떤 소리는 구조의 문제고,

어떤 소리는 감정의 유출이다.


누군가는 애써 침묵하고 있지만,

그 침묵의 울림이

옆방의 벽을 타고 내게 도달한다.



나는 그런 구조를 지은 적이 있다.


시공 예산이 줄어

방화벽 대신 석고보드 이중 마감을 넣었던 어느 오피스텔.

그 방에선 한밤중에도 전화 통화 소리가 울렸고,

입주자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나는 도면을 들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벽은 소리를 막지 못한 게 아니라,

관계를 막지 못했다.



건축에서 구조란

‘버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차단하는 것’,

혹은 ‘전달하지 않는 것’도 구조다.

하지만 인간 사이의 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차단하면 고립되고,

유입되면 침해된다.

그 경계는 언제나 불협의 상태다.



나는 요즘

문장을 쓸 때도 같은 감각을 사용한다.


글에도 소리가 있다.

너무 다가오면 피로하고,

너무 조용하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배치하고, 쉼표를 고르고,

어떤 말은 벽 뒤에 감추듯

한 문단 아래로 내려둔다.



퇴근길의 도시,

그 안의 건물들,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모두가 어떤 소음을 만들고,

어떤 감정을 흘리고,

어떤 구조를 스스로 세우고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소음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중요한 건

어떤 소리는 받아들이고,

어떤 소리는 흘려보낼 것인가,

그 기준을 삶 속에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도면에선 ‘소음 경계’였고,

지금은 ‘감정의 구조’가 되었다.





2025.06.15.


소리 많은 골목길에서,

잠시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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