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단상: 시즌2 ③ ― 감정의 재료』

_벽돌과 유리의 온도

『퇴근길 단상: 시즌2 ③ ― 감정의 재료』

― 벽돌과 유리의 온도



퇴근길, 나는 자주 벽을 만진다.


지나가는 골목의 벽돌,

상가 외벽의 알루미늄 패널,

재개발 앞둔 아파트 단지의 타일 마감.


햇빛이 남긴 온기나,

비에 젖은 촉감이

그날의 감정과 기묘하게 겹친다.



건축 재료는 구조의 일부지만,

동시에 감정의 표면이기도 하다.


벽돌은 따뜻하고,

유리는 멀고,

노출 콘크리트는 조금 쓸쓸하다.



설계를 처음 배웠을 땐

재료는 기능의 언어였다.


단열 성능, 유지 관리, 시공성, 비용.


그러나 현장에서,

사람의 손이 닿은 벽면 앞에서는

그 모든 수치가 흐려졌다.



나는 어떤 빌라에서

벽돌 타일 마감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건축주는 물었다.

“왜 굳이 이걸로 해야 해요?”

나는 답했다.

“따뜻하잖아요.”

그 말에 스스로도 놀랐다.


그건 기술자가 아니라

기억을 믿는 사람의 대답이었다.



사람들은 공간을 감각으로 기억한다.

“그 골목, 벽이 좀 낡았지만 좋았어.”

“카페는 시끄러웠는데도 유리창이 멋졌지.”

“그 방은 바닥이 너무 차가웠어.”



그 말들 속에는

재료가 저장한 감정이 있다.


사람은 벽의 온도를 통해 공간을 판단하고,

천장의 질감으로 분위기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 감각은

도면에 적히지 않는다.


설계도에는 ‘벽돌마감’이라고만 쓰여 있다.

그 벽돌이 한여름엔 식어 있고,

겨울 아침엔 햇빛을 품고 있다는 건

설계자가 상상해야만 하는 일이다.



퇴근길,

유리창이 벽면 전체를 덮은 건물 앞에 멈춘다.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유리는 투명하지만, 감정이 스며들 곳이 없다.

모두가 다 보이는데,


아무도 남지 않는다.



나는 그런 공간을

‘정리된 슬픔’이라고 불렀다.


고르고 매끈하지만

사람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구조.



그에 비해 벽돌은

불규칙하고, 거칠고,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그 모서리엔 체온이 남는다.

비가 오면 냄새가 난다.


기억은 그런 물성 위에 붙는다.



문장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종종

‘이 문장은 유리로 쓰인 것 같다’고 느낀다.

반짝이지만 차갑고,

독자를 통과시키되 남기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벽돌 같은 문장을 지으려 한다.


불균형하고,

때로는 거칠지만

손을 댔을 때 체온이 느껴지는 글.



그게 내가

20년간 건축을 하며 배운 감정의 재료학이다.


공간을 기억하는 건 형태가 아니라

촉감이고,

온도고,

표면의 조용한 이야기들이다.



퇴근길,

나는 오늘도 벽을 만진다.


누군가 설계한 기억 위를

손끝으로 지나가며.





2025.07.17.


촉감의 도시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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