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피난 동선에 대하여
『퇴근길 단상: 시즌2 ④ ― 도시의 틈』
― 피난 동선에 대하여
퇴근길.
나는 늘 같은 길로 돌아오지 않는다.
한 블록쯤 돌아가고,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적당히 인적 드문 골목을 걷는다.
딱히 무슨 이유는 없다.
그냥 오늘은 그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그냥’이라는 감정 안에는
작은 피난이 숨어 있다는 걸.
건축에는 피난 동선이라는 개념이 있다.
불이 나거나, 지진이 나거나,
어떤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사람이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경로.
대개는 최단거리, 가장 넓은 폭, 가장 확실한 계단으로 설계된다.
그러나 정작 삶 속의 피난은
그 반대에 있다.
사람이 몰리지 않는 곳,
잘 보이지 않는 통로,
누군가의 시선에서 살짝 벗어난 그 틈.
나는 그런 공간을 도면에 그린 적이 있었다.
대피 공간이 아니라
‘숨는 공간’.
도면상 명칭은 “설비점검실”이었고,
규모는 3제곱미터 남짓이었다.
그곳에 있던 경비 아저씨는
퇴근 전 늘 그 안에 들어가 10분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말했다.
“이상하게 여기 있으면,
시간이 안 간다니까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피난’이라는 말이
시간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퇴근길,
나는 종종 피난 계획이 떠오른다.
현관으로 들어가기 전
계단실을 한 층 더 올라갔다 내려온다든가,
아파트 단지 앞 슈퍼를 돌듯이 지나친다든가.
아무도 관심 없는 그 동선 안에서
나는 어떤 불투명한 감정을 식힌다.
그건 설계도에 없는 경로다.
하지만 그 길이 없으면
나는 무너질지도 모른다.
도시 곳곳엔
이런 피난의 틈이 있다.
비상계단 끝의 닫히지 않은 문,
폐쇄된 지하상가로 이어지는 경사로,
CCTV가 닿지 않는 뒤편 담장의 그늘.
나는 건축 설계자로 일하면서
이런 공간을 일부러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설계가 끝난 후에야 깨달았다.
사람은 설계된 동선 위에서 살지 않는다.
설계된 공간 사이의 틈에서 산다.
사람도 그렇다.
삶에선 ‘도망쳐야 할 순간’이 갑작스럽게 온다.
논리도 없고, 예고도 없다.
그럴 땐
이야기를 만들지도 않고,
인정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옆으로 빠진다.
나는 그걸 오래 부끄러워했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피난은 회피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다.
그걸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을 진짜로 이해하는 사람이다.
요즘 글을 쓸 때,
나는 이따금
피난로를 만든다.
너무 강한 문장 뒤엔 쉼표를 넣고,
너무 가까운 말엔 공백을 둔다.
그게 독자를 위한 감정의 출구라고 생각한다.
건축이 말하는 ‘비가시 피난 경로(非可視 避難經路)’처럼,
글도 가끔
보이지 않는 출구를 열어야 한다.
모든 것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퇴근길,
오늘 나는
그냥 돌아가지 않았다.
집 앞을 지나 조금 더 걸었다.
익숙한 길 끝에서,
익숙하지 않은 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돌아섰다.
어떤 감정은
정면으로 걷지 않고,
옆으로 빠지는 법을 택한다.
그리고 그때,
도시는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2025.06.18.
피난이 아니라,
필요한 여백.
ps. 오해하실까 봐서. ^^*
“비가시 피난 경로”는 건축법이나 소방법 상의 용어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건축에서 ‘피난 경로’는 보통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최단거리 / 유도등 설치 / 가시성과 접근성 확보 / 일정 폭 이상의 계단・복도 확보
⇒ 즉, ‘가시성(visible)’이 필수 조건입니다.
ex.
「건축물의 피난・방화 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14조
➝ 피난 경로는 표지, 조명, 통로 폭, 계단 경사도 등이 규정되어 있어야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골목길
#계단실과 계단 사이의 틈
#감정적으로도 ‘드러나지 않은 회피 루트’
⇒ 이런 감정의 우회로 / 숨은 경로 / 감정의 탈출구로서 “비가시 피난 경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