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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편집장 Dec 07. 2021

우리가 오해하는 시조의 모든 것 10

#부록 #사설시조란 무엇인가

 우리가 오해하는 시조의 모든 것 Chapter. 10
도대체 사설시조란 무엇인가?(부록)


 

사설시조의 정의


   (너무너무 오랜만에) 부록이다. 그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여전히 미답의 영역인 사설시조에 내가 먼저 과감히 발을 디뎌보겠다! 사설시조 관련 연구와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고(古)사설시조’와 ‘현대(現代)사설시조’라는 명칭을 쓰려고 한다. 이제 모두가알다시피, 1920~1930년대 시조부흥운동 이후로 시조는 현대시조가 되었으니까!! 사설시조도 마찬가지. 음악 장르 시조창이었던 사설시조는 ‘古사설시조’, 문학 장르로서 사설시조는 ‘現代사설시조’다.

    ‘古사설시조’는 김천택의 <청구영언>(1728) 속 ‘만횡청류(蔓橫淸類)’ 116편에서 연원을 살필 수 있고, 변안렬(邉安烈, 1334~1390)의 <불굴가(不屈歌)>를 사설시조 형태로 보고 사설시조 장르 발생을 고려 말기로 소급하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다. 이후 20세기에 본격적으로 사설시조가 등장하게 된 것은 이병기의 <풀버레>, <우레>, 조운의 <구룡폭포), 김상옥의 <선죽교>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사설시조의 형태와 관련한 논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정리는 나의 힘!!)


① 사설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에 두 구절 이상 또는 종장 초구라도 평시조 그것보다 몇 자 이상으로 되었다. 초장, 중장이 너무 길어서는 아니 된다. (이병기, 1978)

② 초, 중장 모두 제한 없이 길고 종장도 어느 정도 길어진 것이다. (김사엽, 1950)

③ 사설시조는 초, 중, 종장의 구법이나 자수가 평시조와 같은 제한이 없고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어조도 산문체로 된 것이다. (김종식, 1950)

④ 그 형식은 사설적이었던 만큼 과거의 모든 구속을 타파하랴 하는 데서 훨씬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여 초, 중, 종 3장 중에 어느 한 장이 임의로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엄격히 말하면 초장은 거의 길어지는 법이 없고, 중장이나 종장 중에 있어 어느 것이라도 마음대로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대개 중장이 길어지는 수가 많다. (조윤제, 1955)

⑤ 장시조는 단시조의 규칙에서 어느 두 구 이상이 각각 그 자수가 10자 이상으로 벗어난 시조를 말한다. 이 파격구는 대가가 중장(제2행) 의 1, 2구이다. 물론 종장도 초장도 벗어나고 3장이 각각 다 벗어나는 수도 있다. 이 장시조는 창에서도 만횡청류나 농악조로 부르는 것으로 가사나 잡가에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이태극, 1959)

⑥ 자수 면에서 볼 때, 사설시조는 70자에서 803자까지의 자수로 된 시조라 할 수 있다. (서원섭, 1982)


   이들의 논의를 종합하면 사설시조 역시 일반 시조와 같이 초, 중, 종장 3장으로 나뉘며, 대체로 중장이 많이 늘어나고, 종장 첫 음보가 3자 고정이어야 한다! 특히 1953년 <시조부흥론>(시조연구)을 발표하며 ‘제2차 시조부흥운동’을 일으키고자 했던 이태극은 ‘사설시조’는 음악상의 용어이므로, ‘장시조(長時調)’라는 명칭을 제시하며 사설시조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월하(月河) 이태극(1913~2003). 강원도 화천에 이태극 문학관이 있다.  제2차 시조부흥운동의 주역이시다!


   이태극 따르면, “단시조의 6구 형태 기준율에서 어느 한 구의 자수가 그 기준율을 멀리 벗어난 것”은 ‘중시조(中時調)’, “단시조의 6구 형태 기준율에서 어느 2구 이상의 자수가 10자 이상으로 벗어나서 길어진 것”을 ‘장시조(長時調)’로 분류 가능하다. 그는 장시조가 형태상으로 많이 길어지면 가사(歌辭)와 비슷해 보일 수 있으니, 가사와 구분되는 조건으로 ‘三章’과 ‘종장 첫머리 3字’를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사설시조를 연구한 이태극의 논의를 정리하면, 사설시조는 음악 장르에 연원을 두고 있으나 시 장르로 구분하기 위해 ‘장시조(長時調)’라 칭하고, ① 한 장(章) 이상이 평시조 기준 마디보다 길어지지만, ② ‘三章’을 유지하며, ③ ‘종장 첫머리 3字’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을 마련해 여타의 장르와 구분 지었다.

   이러한 이태극의 사설시조 형태론은 이후로도 크게 변함없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이태극의 사설시조론에 대한 다른 논의도 없었다. 나 역시 한 연구에서, <현대사설시조포럼 앤솔로지> 1권부터 10권까지 살펴본 결과, 초장이나 종장만 길어진 경우는 아예 없고, 중장만 길어진 경우가 전체 938편 중 748편으로 약 79.7%를 차지했음을 밝혀냈다. 초장과 중장이 함께 길어진 경우가 14.3%로 그다음을 차지했는데, 이는 이태극의 장시조 기준을 모두 지키면서 대체로 초, 중, 종장 중에 중장이 평시조 기준 마디에서 길어진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설시조와 엇시조의 경계


   그러나 한 장(章) 이상이 평시조 기준 마디보다 연장될 경우를 사설시조라고 할 때, ‘엇시조’와의 경계 혹은 기준이 또한 필요하다! 엇시조 역시 한 장 이상이 평시조 기준 마디보다 길어진 형태로서 사설시조와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엇시조의 개념 정의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한 글은 정철의 <엇시조의 정체>(1956)였으며, 뒤이어 안승덕은 <엇시조 연구>(1970)에서 엇시조를 본격적으로 연구했는데, 그들에 따르면 엇시조는 3장 중 어느 한 장이 파격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파격된 장의 음절수는 18~25자, 엇시조 한 수의 총 음절수는 49~59자까지로 한정지었다.

   이후 현재까지 이어진 엇시조에 관한 논의를 정리하면, 엇시조는 한 장이 평시조의 기준형보다 길어진 것인데, 문제는 어느 정도 이상 길어지면 사설시조의 형식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몇몇 논자는 음절수와 음보로 최대한 늘어날 수 있는 한 장의 길이를 규정하였으나, 일반적으로 엇시조의 기준을 “평시조의 기본틀인 3장 6구 12음보를 기준으로 할 때, 초장, 중장, 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의 음보수가 7음보까지 길어진 형식”을 엇시조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따라서 한 장(章)이 8음보 이상으로 길어지면 4음보를 한 장으로 하는 평시조 기준에서 2장이 되기 때문에 사설시조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2장에 1음보 못 미치는 7음보는 엇시조로 볼 수 있다. 물론 문제는 이때 분절하는 ‘음보’ 혹은 ‘마디’의 개념인데, 이를 ‘3/ 4/ 3/ 4’의 음절수를 기준으로 하는 음수율(이광수, 조윤제)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3음절을 ‘小음보’로 하는 음보율(김기동, 정병욱) 또는 호흡률(성기옥, 김학성)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이 모두를 아우르는 통사적 배분으로 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 더욱이 초장과 종장이 엇시조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면 엇시조임을 확연하게 알 수 있지만, 중장에서 엇시조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면 8음보 이상의 경계를 따져보아야 한다.

   정리하자면, 사설시조의 ‘일반형’을 정의한다면, 하나의 장이 길어지되, 엇시조와 구분되기 위해 반드시 8음보 이상으로 길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대체로 중장이 길어진다!!


현대사설시조는 서사시인가?


   ‘現代사설시조’의 여러 속성 중 ‘서사성’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 시 장르 또는 시조와 다른 사설시조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서사성’은 ‘서사시’, ‘서사(적인 것)’, ‘담시(譚詩)’, ‘장시(長詩)’, ‘서술시’ 등의 개념을 짚고 넘어가면서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

   이제, 다들 알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문학 장르를 3분법 혹은 4분법으로 보면서 문학의 갈래를 서정, 서사, 희극, 교술(조동일)로 나누었지만, 서정적인 것, 서사적인 것, 희극적인 것, 교술적인 것이라는 속성이 있는 것이지, ‘서정시’, ‘서사시’, ‘교술시’ 등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문학사에서 ‘에픽(epic)’의 번역어로서 ‘서사시’라는 어휘 또는 개념은 김동환이 시집 <국경의 밤>(1925.3.)을 발간하면서 표지에 ‘장편 서사시’라고 표기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1930년대 임화의 ‘단편 서사시’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신동엽의 <금강>을 두고 김종길에 의해 ‘서사시론’이 보다 다양하게 논의되었지만, 그동안 서구의 서사시와 ‘같은 것’이 한국문학에 부재하다는 열등의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 서정시와 서사시의 경계 역시 마찬가지인데, 서정시와 서사시를 무리하게 분절하려고 했던 시도는 결국, 서사시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특히 서사시를 형식상으로 영웅시체의 운문을 지니고, 내용상으로 신이나 영웅을 통한 보편적 진리를 제시하고 민족 혹은 집단의 운명을 표현한다는 규정이 기존의 일반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現代사설시조’를 ‘서사시’로 보기보다는 ‘서사성’이 강한 장르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서사시의 아버지 호메로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세계 3대 작품 중 하나로 꼽는다. 나머지 2가지는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희곡. (그림은 앵그르의 <호메로스의 신격화>)


   더욱이 서정시 외에도 ‘장시(長詩)’와 같은 다양한 시가 있다는 김기림의 비판(<시인으로서 현실에서의 적극 관심>,1931) 이후, 장시를 200행에서 3,000행 사이의 길이를 지녀야 한다는 김종길의 논의에서 시작해, 장시의 핵심 개념으로 ‘이야기’와 ‘관념’을 제시하여 장시를 ‘서정시의 서사화’로 규정짓는 등 여러 논의를 통해 완결되고 통일된 합일체로서의 ‘장시(長詩)’가 한국문학사에 등장했다. 그러나 역시, ‘現代사설시조’은 ‘장시(長詩)’로 보기에 분량이 너무 작다!

   이에 따라 나는 김준오의 ‘서술시(narrative poem)’라는 개념이 ‘現代사설시조’에 적합하지 않을까 하고 연구해보았다. 김준오는 인간의 행위나 생생한 삶의 모습에 따른 감정을 표현하는 서술시가 한국시가의 한 전통이면서 70~80년대에는 ‘민중시’로 등장하였으며, 서술시의 미학적 장점을 산문소설에 등가되는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았다. 김준오에 따르면 시인의 전기적 체험에 근거한 ‘주관적 현실성’과 정치적, 사회적 동기에 근거한 ‘객관적 현실성’으로서 시의 리얼리즘이 ‘서술시’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이러한 김준오의 논의를 토대로, 나는 한 연구에서 ‘現代사설시조’를 ‘객관적 서술시’, ‘주관적 서술시’, ‘구비 서술시’로 나눠 살펴보았지만, ‘現代사설시조’를 어떤 서사 양식으로 특정하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럽고, 또한 앞으로도 다양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사설시조는 ‘서민’의 장르인가?


   그동안 ‘古사설시조’는 조선 후기 때 본격적으로 창작되면서 서민의식의 성장을 보여주며 중세적 질서를 극복하면서 근대적 징후를 보여주는 것으로 논의되었다. 사설시조의 향유층 혹은 담당층에 평민(중인) 계층이 참여하면서 ‘평민의식(서민의식)’이 보다 전면에 드러났다는 것인데, 이러한 관점은 사설시조가 양반사대부 중심의 봉건적, 중세적 질서에서 이탈하여 ‘근대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 ‘근대문학 18세기 기점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가운데 김학성의 논의는 특히 주목할 만한데, 그는 ‘근대문학 18세기 기점설’과 더불어 사설시조가 18세기에 서민 계층의 향유로 문학사의 전면에 부상했다거나 사대부층의 평시조에 대립하는 장르로서 근대시의 단초를 열었다는 것은 부정확한 논의로 보았다.

   그동안 사회 체제의 모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거나 현실을 부정하면서 해학과 풍자를 보여주는 사설시조는 손쉽게 지배계층에 반발하는 ‘저항의식’으로 연결되었다. 물론, 한국의 시대사와 맞물려 ‘민중시(성)’라는 개념이 한동안 한국문학사에서 강조되면서 사설시조의 해학과 풍자 역시 주목받았던 것은 사실이나, 사설시조의 향유층이 서민이기 때문에 사설시조가 ‘서민의식(민중의식)’을 내재하고 있다는 관점은 충분한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여전히 사설시조의 향유층에 대한 논의는 진행 중이며, 양반이 아닌 평민(소위 ‘근대적 주체’) 위주로 사설시조가 향유되었다는 담론 역시 수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사설시조의 주제를 서민의 저항의식으로 보던 기존의 연구와 담론은 수정 중에 있다. (영화 <군도>)


   그러나 ‘現代사설시조’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최근에 비판받고 있는 사설시조 초기 연구 경향에서 비롯된 ‘서민의식(저항의식)’을 강조하면서 ‘現代사설시조’의 한 속성으로 ‘현실비판’을 중요한 속성으로 꼽고 있다! 지배층 담론의 허위를 비판하는 서민의 저항의식이 골계미(滑稽美)라는 미학적 실천으로 해학과 풍자로 발현되는 것을 ‘現代사설시조’의 속성 혹은 전략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古사설시조’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자 한 것인데, 문제는 ‘古사설시조’의 향유층이 서민이었다는 논의가 현재 명확하지 않으며, ‘古사설시조’가 주로 비판해왔던 양반과 같은 상위 계급이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나는 한 연구에서 <현대사설시조포럼 앤솔로지> 전체 1,042편 중 ‘현실비판’이 267편으로 25.8%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결국 ‘現代사설시조’의 다양한 유형(내용) 중 ‘古사설시조’처럼 현실비판이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서민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다! 여기서 ‘古사설시조’와 ‘現代사설시조’의 공통 속성인 ‘서민의식’은 지배담론과 고급담론에 대항하는 하위담론 또는 대항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現代사설시조’는 명시된 계급이 없는 현 상황에서 시대를 향한 비판으로 풍자(해학)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요즘, 사설시조가  랩 같다는 생각이 든다. 랩이든 사설시조든 현실 비판 쩐다!! (영화 <8Mile>)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고 개선하려는 의도에서 ‘現代사설시조’는 ‘古사설시조’와 같이 통속성에 머물지 않고 현실비판이라는 사회적 기능 역시 견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現代사설시조’가 가진 두드러진 특성이라 할 수 있으며, ‘古사설시조’의 향유층이 서민이 아니었다는 전제하에서는 ‘現代사설시조’가 획득한 현대성이자 고유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現代사설시조’가 1970~80년대 민중시의 계보를 잇는 작업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도 해본다.

   요컨대, ‘古사설시조’로부터 계승, 발전된 ‘現代사설시조’는 단시조 혹은 연시조로 재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갈등과 이야기를 비교적 자유로운 중장의 리듬으로 서술하되, 개인의 서정과 함께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비판 또한 미적 전략으로 삼고 있는 특별한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


 

ps : <오늘부터 쓰시조>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본 글은 그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https://search.daum.net/search?w=bookpage&bookId=5907786&tab=introduction&DA=LB2&q=%EC%98%A4%EB%8A%98%EB%B6%80%ED%84%B0%20%EC%93%B0%EC%8B%9C%EC%A1%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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