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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May 07. 2020

예쁘기보다 강한 사람이 되기를

written by 강 세화



사람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아름다운 사람을 꽃에 비유해오곤 했다. 자연에서 피워내는 알록달록한 그 빛깔은 경이롭고, 흙더미에서 움트고 무럭무럭 자라나 피어난 꽃은 대단하다. 그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날붙이로 꽃을 베고 가시에 찔리지 않게 다듬고, 때로는 염료를 입히고 바싹 말려 전시해놓기도 한다. 오늘은 이들 중 ‘관상용 꽃’에 사람을 비유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여기는 꽃밭이네˼

 

여자들끼리 모여있는 광경만 보면 수도 없이 듣던 말이다. “한 떨기 꽃 같은 여자”, “여자는 그저 꽃처럼 참하게, 예쁘게”. ‘꽃’에 비유되는 사람은 아주 높은 비율로 여성이어왔다. 그리고 나도 그 여성이다.

 

나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꽃 자체를 싫어하기보다는, 꽃을 내가 가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벌레가 많이 꼬이고, 금방 시들어서 관리하기가 힘든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꽃향기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 꽃다발을 받을 때야 ‘축하받을 때’이기 때문에 기쁘고, 후에 꽃이 시들어서 알록달록했던 빛깔이 죽어가는 걸 보면 잔뜩 아쉬워진다. 버릴 생각을 하니 또 착잡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꽃 선물을 받게 되면 물병에 꽂아주고 생화일 때 많이 봐두었다가 꽃잎 하나만 똑 떼어 두꺼운 책 사이에 꽂아두곤 한다. 선물할 때도 웬만하면 잘 시들지 않는 꽃을 사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꼭 드는 생각이, 꽃은 원래 피어있던 그 자리에서 살아있을 때 가장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지금까지 ‘꽃’으로 불려왔을 때에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여있으면 보기에 좋은 꽃다발 속 한 송이였을까? 여자들이 꽃이라면 남자들은 무엇이었을까? 내 됨됨이가 꽃처럼 아름다운 것이라면 꽃 말고 다른 살아 숨 쉬는 것은 될 수 없었을까? 그 꽃이 시들면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난 관상화가 아니야!˼

 

수많은 매체에서 여자는 꾸미는 것에 대한 의무가 있음을 배워왔다. 어릴 적에는 인형 같은-마르고 머리가 길고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외모에 가까워질수록 칭찬받았고, 나이가 늘어갈수록 더해지는 ‘성숙함’에는 ‘정갈함’, ‘점잖음’ ‘능숙해진 화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항상 어려 보이고 시들지 않도록 가꿔야 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암묵적으로 정해진 이 의무에서 벗어나면 뭔가 이상한 것처럼, 그리고 곧 본인들이 아주 큰 아량을 베푸는 것 마냥 “외모가 뭐가 중요해~ 건강하면 됐지!”와 같은 말들을 덧붙이곤 한다. 잘 꾸미지 못하면 그것에 대한 합리화를 한다. 정작 그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미’를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더 예쁘고 멋진 것을 좇는 것을 누군가는 본능이라 말하기도 하니까. 다만 아름다움을 표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는 그저 비유에서 그쳐야 하는데, 마치 우리가 가져야 하는 최우선 순위가 변함없는 아름다운 뿐인 듯한 시선이 꼭 따라온다. 그 어떤 곳에서 어떻게 쓰일지, 어떤 꽃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언젠가는 시들어 사라질 겉모습만이 나의 존재 의의인 양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숨이 막힌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됐었던 [내 ID는 강남미인]이라는 웹툰이 있다. 등장인물 중 본인의 향수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살아온 한 여자는 본인에게 첫눈에 반한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예뻐해주고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그저 복인 줄 알고, 아이도 낳고 살고 있었던 그는 ‘외모’로 본인과 결혼해 먹고 사는 것 아니냐는 남편에게 통제되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본인의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자 “나는 관상화가 아니야!!”라며 소리친다. 그렇게 항변하던 그는 남편과의 싸움으로 후각을 잃어 본인의 꿈도 잃게 된다.

 

나의 시간과 돈을 할애해 때로는 스스로 몸을 해치는 것을 사용하기도 해서 얻은 ‘꽃 같은’ 아름다움. 그것으로 사랑받고, 관계를 형성하고, 누군가의 트로피가 되는 사람에게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꺾여져 다듬어진 꽃은 시들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저 자리를 장식하기 위한 액세서리이자 도구였던 자는 그 기능을 다 했으니 버려지게 되나? 그럼 그 액세서리를 가지게 되는 자는 누구이며,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르길래 우리는 우리 삶 그 자체로서의 주인이 아닌 껍데기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일까? 이 껍데기를 벗어나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까.

 

 

 

 

 

˹난 져버릴 꽃이 되기 싫어 I’m the tree˼

 

 

얇은 꽃대가 바람에 날아갈까 소중히 다뤄지고 혹여나 밟으면 꽃잎이 다칠까 조심스러워 하다가도 본인이 원한다면 스스럼없이 꺾어가는 것처럼, 우리를 ‘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우리를 마냥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내 능력과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대로 ‘꽃’이라 한정 짓고 예쁨 받다 씨를 남기고 스러져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얘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들이 멋대로 심어 당신네들의 정원 안에서 자라나는 꽃으로 살아가지 않겠다. 나는 언제 시들지 몰라 두려워하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될 것이다. 미관의 목적으로 자라나 양분을 먹을 뿌리가 없어진 채 단명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꽃으로 생각했을 너희들이 나를 움켜쥐어도 나는 스스로 나를 가꾸고, 내게 필요한 양분과 능력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자라날 것이다. 바람이 불면 뽑혀갈까 걱정하지 않을 만큼 단단히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매번 맞이하는 혹한을 견뎌내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끝없이 자라나 열매를 맺어 누군가에게는 양분이, 누군가에게 쉼터이자 집이 될 튼튼한 나무가 될 것이다. 그렇게 자라난 우리는 숲을 이루고 숨을 내쉬며 잎을 떨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성장해 크나큰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그런 사람으로 살아나갈 것이다.   



____ 강세화 glorysehw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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