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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Sep 20. 2020

싱글맘이 딸을 키울때(2)

이혼 후 이야기 #. 10

<엄마의 일기>


새로운 근무지의 첫 출근,

아이들 새로운 학교의 첫 등교.


첫날부터 애엄마라며 사무실에 아쉬운 소리 늘어놓지 않으려는 내 욕심에 전학 첫날인데 아이들만 학교에 보냈다.


처음 가는 사무실에서 나 역시 정신없이 인사 다니고 분위기 파악하느라 바빴고, 


가뜩이나 낯선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추운 복도를 혼자 서성인 아이는 엄마가 근심할까 봐 종일 어색한 환경을 꾹 참다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 엄마를 보고는 그제야 눈물을 후드득 흘린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다 좋은데 그냥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고.

그러면서도 엄마가 같이 가주지 않아 속상했다는 볼멘소리도 없다. 넌 이제 5학년이니 혼자 그런 것쯤은 감당해야 한다고 등 떠미는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나라도 힘들었겠다, 우리 딸 심정이 이해되네."

아이를 다독이고 남은 힘을 짜내어 멸치육수를 우려내고 계란지단을 부쳐 냉장고에 남아 있는 떡국을 부랴부랴 끓여냈다.


부은 눈을 해서 뚝딱 두 그릇이나 먹는 큰딸. 

언니가 우는 바람에 명함도 못 내밀고 오물조물 떡국만 먹고 있는 작은 딸.


오늘도 이렇게 살아내는구나.

내일도 이렇게 살아남아보자꾸나.

내 삶의 한 페이지에 이렇게 같이 등장인물로 있어줘서 엄마는 너무너무 고맙단다.





큰 아이가 중3이 되자 작은 아이가 중1이 되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섬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참 어린것 같았는데, 이제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물만 먹고 잠만 자도 쑥쑥 자라는 것 같았다.


"엄마, 동생도 이제 중학생인데 우리 교복 입고 가족사진 찍을까?"


큰 아이가 뜬금없이 가족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어, 그거 좋은 생각인데?"


큰 아이 책상에는 동생이 생후 50일 때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 미니 사이즈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와 아빠가 함께 있는 사진이었다. 

그 한 장 남은 걸 애지중지했었다.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싶었지만, 할머니도 아빠도 없는 우리 셋의 사진을 아이가 좋아할까 싶어 선뜻 말하지 못했었던 것도 있었다. 


사진관을 검색해서 예약했다.

비상금으로 모아둔 돈을 쓰기로 했다. 

지금 아이들의 풋풋한 모습은 몇 년 뒤면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촬영을 예약하면서 사진관 사장님께 따로 문자를 드렸다.


-사장님, 그리고 영정사진도 추가금액이 있을까요? 다른 옷 필요 없이 입은 옷 그대로 저만 찍으면요. 얼굴만 찍으면 될듯해서요-


-영정사진은 '장수사진'이라고 요즘 불러요. 장수사진은 제가 서비스로 촬영해드리긴 하는데 어머님이 찍으신다고요?-


-네. 찍어두고 싶어서 그래요. 애들한테는 말 안 할 거고요, 촬영 마지막에 그냥 자연스럽게 한컷만 찍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근엄하게 말고요, 재미있는 표정으로요-


-네... 젊으신 어머님이 장수사진 찍는 경우는 드물어서요.^^ 메모해두겠습니다~-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내 양옆에 나란히 섰다.

나란히 서고 보니 내가 키가 제일 작다.


사진관 사장님은 이리저리 포즈를 주문하며 즐겁게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가족사진인데 '왜' 아빠가 없는 3인 가족인지 묻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엄마 곁을 떠나서 독립을 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신고식처럼 암이 찾아왔고 결혼생활로부터 또 독립했다.

그렇게 마흔 살을 맞으며 영정사진을(장수사진) 찍었다.


어쩌면 내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산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정해진 순서가 없기에 '지금의 내 삶'과 함께 친구 삼아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사진을 찍은 가장 큰 이유는

혹여나 준비 없이 덜컥 찾아온 이별에 애들이 허겁지겁 엄마 장례식장에서 쓸 사진을 찾느라 핸드폰 갤러리를 뒤적거리다가


운전하는 엄마

식탁 맞은편에 앉은 엄마

갓길에 차를 세우고 피곤한 모습으로 잠깐 눈 붙이는 엄마

설거지하는 엄마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

좋은 배경 앞에서 예쁜 척하는 엄마

그리고 내복 입고 뱃살 나온 웃긴 엄마 사진을 보면서 '오늘부터는 이런 엄마가 없구나.'라는 생각에 울고 서 있을까 봐 그것조차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반명함 사진처럼 진지함은 없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이 엄마 장례식 때 울고만 있을 게 아니라

사진을 보면서라도 빵 하고 속으로 웃게 되길 바래서였다.



사진이 나왔다.

액자에 넣어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다.

편한 날, 아이들에게 말해 줄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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