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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Sep 21. 2020

이혼했지만 때론 가족이긴 합니다

이혼 후 이야기 #. 11

둘째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이 다가왔다.

"아빠 오실 수 있대? 오시라고 해, 시간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선생님 면담과 공개수업은 최대한 연차를 빼서 다녀오려고 했다. 직장 다니며 두 아이의 학교 행사를 챙기다가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담임선생님들은 우리 아이의 가정사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과 엄마인 나보다 아이를 훨씬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해주신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즐겁고 편하다고 했다. 

평소에도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하는 학생인 것 같다고, 공감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하셨다.



입학식은 몰라도 졸업식만큼은 사진을 아니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전남편에게 문자를 했다.

'00월 00일이 둘째 졸업식이야. 올 수 있으면 와.'


전남편은 휴가를 냈는지 졸업식에 왔다.

학급 공개수업처럼 각자 반에서 담임선생님과 단출하게 졸업식을 하고 있었다.

큰아이를 데리고 6학년 교실로 올라갔다. 

애들 아빠가 미리 와서 복도에 서 있었다.


셋은 어색하게 교실로 들어갔다.

우리 가족이 언제 오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을 아이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빠. 엄마. 언니.


세명이 나란히 교실 뒤에 서 있었다.


찰나지만 아이의 동공이 멈칫했다. 낯설어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아이의 기억에 한 번도 없었을 풍경이었다.

아이 뒷모습을 보며 입술에 침을 연신 발라도 입가가 하얗게 말라가는 것 같았다.


큰 아이는 말이 없었다.

전남편은 부산하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댔고 나는 명랑한 척 큰아이에게 말을 걸고 작은 아이에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가 봐도 우리는 가족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학교를 나가기 전 포토존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뭐해, 빨리 이리 와.

쭈뼛쭈뼛 서 있는 전남편을 불렀다. 


졸업 꽃다발을 든 작은 아이를 중간에 앉히고 세 명이서 사진을 남겼다. 

큰아이가 찍어주었다.


"아빠 그냥 가시면 서운하니까 여기까지 오셨으니 같이 밥 먹고 와. 엄마는 동생 책가방 집에 갖다 놓을게."

"엄마 밥은?"

"엄마는 더 맛있는 거 먹으면 되지~"


아이들을 전남편에 차에 태워서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인데 아빠가 밥 한 끼는 사줘야지.

아이 입학식에 함께 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때 우린 섬에 있었었다.






2년 뒤 이번에는 큰아이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왔다.

아이는 한층 더 예민해져 있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가진 않았지만 스트레스가 많아 보였다.

아이를 안다고 생각할수록 기싸움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내 입에서 아이를 향해 나쁜 말이 나갈 것 같으면 조용히 집을 나왔다. 물리적인 거리를 둔 다음, 마음이 고요해지면 집에 들어갔다.


전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음 주가 큰애 중학교 졸업식이야. 들었지? 그날 괜찮으면 와.'


이번엔 작은 아이를 데리고 언니가 있는 중학교로 향했다.

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난데, 지난번처럼 꽃다발 사 올 거야? 나도 살 건데, 굳이 2개 살 필요 있을까? 내가 그냥 사갈께."

"어, 이미 샀는데."

"그래? 에이 그럼 됐어. 꽃다발 2개 받고 좋지 뭐. 잘했어, 금방 갈게."



밤에는 양육비 입금에 대해 문자로 싸우고 있었지만, 아이 앞에서는 날을 세우고 싶지 않았다.

십여 년 전처럼 편하게 말을 걸었고, 전남편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강당에 먼저 도착해서 작은 아이와 의자 하나를 비우고 앉았다.

"아빠 자리 맡아놓자."

꽃다발을 든 작은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졸업식이 끝이 났다. 

혼잡한 강당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건물 밖 학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고 하며 나왔다.


큰아이를 주인공으로 세워두고 전남편과 내가 교대로 사진을 찍었다.

가족은 4명인데 교대로 찍으니 꼭 한 사람씩 빠졌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저희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아이 둘을 중간에 두고, 전남편과 내가 양쪽 끝에 섰다.

"애들아 웃어 웃어~ 사진 평생 간다^^"

내 호들갑에 아이들이 피식 웃었다.


정지된 시간인 듯 카메라 렌즈 앞에서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호흡을 멈췄다.




-찰칵!-




딸의 초청으로 어색하게 꽃다발을 들고 온 재혼한 아빠.

어제도 본 사이처럼 웃으며 아빠를 반기는 엄마.

누가 보면 참으로 단란한 평범스러운 부부.


그 사이에서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

딸의 졸업식, 평범한 4인 가족의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미쳤지, 너 혼자만 아메리칸 스타일이냐?




친구도 언니도 나더러 '속없는 년'이라고 했다.


괜찮다.

서너 살 때 아빠랑 다 같이 찍은 가족사진을 지금도 붙들고 있는 아이를 보니 좀 더 자라서 찍은 업그레이드 버전도 하나 남겨주고 싶었다.




뭐라 하지도 않았건만 아빠와의 일들에 대해 말을 아끼던 아이들이 가감 없이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식탁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같이 흉도 보고 깔깔거렸다.


가끔은 엄마를 놀리듯이 말했다.

"아빠는 진짜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자 보는 눈이 그렇게 없나!"

"뭐? 엄마가 어때서!"

"엄마도 이쁜 건 아닌데, 그 아줌마는 더 더 못생겼어~"


칭찬인지 욕인지.

의문의 1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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