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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Oct 10. 2020

엄마 힘든 건 알겠어. 그런데 어쩌라고

이혼 후 이야기 #. 24

"엄마가 힘들었던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왜 엄마 힘들었던 걸 내가 알아야 하는데?

엄마가 고모때문에 힘들었고 아빠 때문에 힘들었다고 해서 내가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건 엄마 옛날 일들이잖아."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이들도 내가 원해서 데리고 나왔고

지키려고 애썼고

힘들어도 아이들을 붙들고 삶을 이어나갔다.


그렇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부모의 선택으로 인해 모든 환경을 받아들이고 살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엄마의 힘들었던 결혼생활과 아빠와 시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 말처럼 그건 '엄마의 옛날 일들'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시간들을 견디며 여기까지 온 것이었고 나쁘든 좋든 그 기억이 마음에 사무치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나뿐이었다.


식탁에서 일상에서 잠깐씩 농담 삼아 한 마디씩 했던 고모와 아빠에 대한 말이 사춘기 아이에게는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엄마가 평소에 하지 않았던 아빠네 이야기를 하니 어색했을까.

아이는 주변의 한마디 한마디에도 예민해지는 시기였다.



엄마에게 듣는 말과 고모네 가서 마주하는 고모의 모습은 차이가 있었겠지.

이제는 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일 거라 생각해서 편하게 했던 말에 아이는 어느 순간 정색을 했다.



바위에 맞아 으스러지는 파도가 한차례 마음에 지나갔다.


아이 앞에서 입을 닫기 시작했다.

아이를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엄마처럼 나도 아이에게 내 썩은 감정을 쏟아붓지 않는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설령 그것이 사춘기의 욱하는 심정이었다고 해도 내 말문을 닫게 했다.



내 감정이 얼마나 유리처럼 얇고 여린지 나는 미처 몰랐다.

이혼소송을 펼칠 때, 직장에서 누구보다 악바리처럼 일해나갈 때도 몰랐다.






너를 위해 어른인 내가 이해하고 입을 닫았다고 여겼으나 사실 나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를 이해해달라고 엄마 편을 들어달라고 그래서 아빠와 고모를 욕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그땐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랬었어."
그게 내 마음이었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겪는 심리적 외면은 나를 더욱 춥게 했다.


그래, 그저 내 인생이지. 그냥 내 과거였을 뿐이야.



며칠밤을 곱씹으며 마음 구석진 곳에 그 서운함을 꽁꽁 묶었다.

위로받지 못한 만큼 아프니까 꺼내보기도 힘들게 아주 구석진 곳에 숨겨두었다.


내가 힘들었던 건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딸조차도 이해 못하는 부분이야.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돼.

또 상처 받을 거야 누구나 다 그렇게 아프고 누구나 다 힘들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그걸 바보같이 드러내 보였으니 그런 말을 듣지.

이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티 내지 마.

철저하게 너 혼자야 아무도 믿지 마.
아무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지 마.


2중 3중 4중....

철통 같은 갑옷을 마음에 입혔다.

주문을 외웠다.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면 할수록, 외로웠지만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사실은

강하게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이 방학 때 아빠네 가겠다고 했다.

직장일로 데려다줄 수 없어 대중교통편으로 아이들을 보냈다.

돌아올 때가 되자 아이가 차표를 예매해 달라고 연락을 했다.


"아빠는? 아빠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아이는 머뭇머뭇하며 그냥 엄마가 해달라고 했다.
누가 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가 집에 머물다가 돌아가는데 데려다주지 못할 거면 차편을 알아봐 주고 티켓을 예매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아빠는 못한대? 예매만 하면 되는데 그걸 왜 못해?"


"그럼 내가 예매할 테니까 엄마가 결재만 해."


"아니 아빠는 대체 뭐 하는 거냐고! 왜 네가 하고 있냐고!"


아이 아빠에게 내야 할 화를 아이에게 내고 있었다.

아이는 중간에서 곤란해했다.


"그런 말 할 거면 그냥 내가 예매한다고! 결재나 해달라고!"


아이의 짜증에

직장에서 일하던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마음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서운한 감정들이 같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유치하게 그때의 일까지 꺼낼 필요는 없지만 아이에게 서운했던 것, 그리고 병신같이 예매도 나 몰라라 하는 인간을 보고 있자니 내색하지 못할 화가 뒷목을 타고 올라왔다.



"엄마는


네가 하라면 하고.
떼쓰면 그거 다 받아주고
뒤처리해주고
안 되는 거 수습하고
할 거다 하고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하면
이런 소리 나 듣니?

그냥 입 닥치고 할 것만 해야 돼?

엄마는 그런 사람으로만 보여?"


"엄마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아빠 흉볼 거면 결재나 하라며!

너 힘든 거 안다고 엄마가 티 내지 말아야 해?

그러는 너는 왜 엄마는 다 부정적이고 아빠는 다 이해하니?"


".... 아니
나는 아빠에 대해서 엄마가 너무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무조건 엄마는 참아야 하고
아빠는 괜찮고
그런 식으로 말한 건 아냐..."


"뭐가 부정적이냐고.
아빠가 예매하나 못해서 엄마한테 하라는데 그게 부정적이야?"



전남편이 듣고 있어야 할 소리를 아이가 듣고 있었다.



알았다고, 조용히 결재나 해주겠다며 문자를 끝냈다.

아빠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할라치면 정색을 하는 아이를 이해하면서도 내심 서운했다.


아빠가 아이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나는 전남편에게 문자로 꼬박꼬박 지적을 했다.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조금의 빈틈만 보아도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고, 다 큰 내 아이들을 이용하려고만 하고, 여전히 우유부단한 그 성격을 그냥 넘기면 점점 더 아이들과 나를 우습게 볼 것 같았다.

나를 귀찮게 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이제는 그놈의 신물 나는 뒤치다꺼리나 일처리는 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지적을 받은 날이면 아이들에게 그대로 말했는지 어쨌는지 아이들은 아빠에게만큼은 전혀 관대하지 않은 엄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빠한테도 뭐라고 하지 마.
엄마가 안 그러는 건 아는데, 혹시나 그럴까 봐 얘기해.
제발 아빠한테 말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
내가 다 들을 테니까.
신경 쓰여도 상관없어.
그냥 나한테 다 얘기해줘.'


아직 어린아이들이 자기들보다 몇 곱절은 더 나이를 먹은 아빠를 감싸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피는 어쩔 수 없다'는 조선시대 명언 같은 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전남편 집안이 그 점을 아주 효율적으로 써먹는다는 생각까지 했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알았어. 무슨 말인지.
하지만 분명한 건
낳았다고 다 존경받고 부모 소리 듣는 거 아냐.
책임지고 어떻게든 키워야 도리를 다한 거야.
아니면 최소한 양육에 방해는 되지 말아야 그게 사람이다.
넌 엄마가 이런 소리할수록 아빠가 불쌍해 보이겠지, 너 나이니까 당연해.
하지만 너도 컸으니 상대방 생각도 해.
엄마도 사람이고,
내 새끼들 지키는 일에 지장을 주는 대상들에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속상한 마음을 꾹꾹 담아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닫았다.

보내고 나니 이건 등신 같은 애들 아빠한테나 했어야 할 말이었다.


아이는 속절없이 내가 던지는 돌멩이를 아프게 맞고 있었다.

여지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와 이런 대화를 한다는 것도 속상했고, 여전히 애들 아빠가 내 인생에 던지는 돌멩이에 속상했다.




안다.

나는 안다.

아이가 왜 저럴 수밖에 없는지.


아는데

나도 나약한 인간이라 순간순간 이렇게 모진 말을 뱉지 않고는 속에서 불이 올라와 어쩔 수가 없다.



아이는 아빠 가족과 엄마가 서로 싫은 내색을 하는 현실과 마주하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고 고모도 너무 좋은데

세 그룹이 그렇게 철저하게 담을 치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불편하고 싫었을까...


보호장구도 없는 맨몸의 여린 아이가 고래들 사이에서 등이 터지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다 컸으니 네가 할 말 다해.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애들도 알아야지.
아빠가 한 짓, 고모들이 한 짓, 그대로 싹 다 이야기해.
아빠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좋아하고만 있을 게 아니잖아?


사람들은 나에게 충고한다. 아이도 알건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 일들은 나에게 일어난 일일 뿐이다.


아빠가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했으니 너희들도 좀 미워해주렴,

아빠를 비난해주렴.

이런 말을 할 순 없다.


아기가 태어나 정체성과 사회성이 만들어지고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기 전까지 자신을 돌봐준 부모나 양육자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신이나 다름없다.


그 신들이 천둥소리를 내며 전쟁을 할 때 나약한 아이들의 공포는 얼마나 클까.

그저 내 어릴 적 생각만 해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햇살이 되고 공기가 되고 배경이 되어주기 위해 나름 애를 쓴다고 쓰지만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엄마인 나와 부딪혀갈 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의 적정한 선이 어디쯤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대중교통을 타고 온 아이들을 마중하러 나갔다.

아이들이 도착할 시간이 되자 반가움에 가슴이 뛴다.


저만치

익숙한 여전히 아기 같은 내 새끼들이 보인다.


나보다 더 큰 아이들의 팔짱을 끼며

"잘 있다 왔어? 더 뚱뚱해졌네?"

하고 농담을 시작한다.


우리는 또다시 차에서부터

식탁에서, 밥 먹으면서, 잠들기 전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많은 시간들을 도배한다.



아이들은 그저 내 삶에 잠깐 등장하는

배우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나의 말들은

어쩌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해바라기처럼 미련스럽게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다.

항상 그곳을 향해 서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넋두리할까 봐

이만큼 키웠으니 좀 알아달라고 할까 봐

내가 아빠보다 낫지? 이런 유치한 질문을 할까 봐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단속하고 경계한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답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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