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선에서 보이는 엄마가 어떤지
딸의 입장에서 썼어요...^^훗날 아이가 글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동의할지는 모르겠네요**
엄마는 회사에서 김 과장이다.
사람들이 김 과장이라고 부른다.
나도 핸드폰에 엄마를 '김 과장'이라고 저장했다.
'김 과장'은 자주 나에게 전화한다.
"딸~ 밥 먹었어?"
"딸~ 학원 끝나가니? 엄마 학원 밑에 있어. 끝나면 내려와."
"딸~ 오늘 외식 뭘로 할까? 동생이랑 메뉴 정해서 말해줘~"
가끔씩 기분이 나쁜 문자도 한다.
-저녁밥 좀 부탁해. 오늘 엄마 조금 늦게 끝날 것 같은데-
-딸. 세탁기에 빨래가 넘쳐서 폭발하겠더라. 빨래 좀 돌려줘-
-따님 핸드폰 그만보고 청소기 좀 돌려놓으시지요-
김 과장 말대로 청소기를 바닥에 빙글빙글 돌리는 동영상을 보냈다가 또 그놈의 잔소리를 들었다.
아씨~ 청소기 돌리라며....
정말 짜증이 난다.
엄마는 아빠와 사이가 안 좋다.
그냥 직장 때문에 떨어져서 지내는 거라고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말했지만 나는 뭔지 모를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다른 집 부모님들과는 약간 다르다는 것.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엄마랑 동생이랑만 살았다.
아빠를 자주 만났지만,
'우리 가족'은 달랑 3명이다.
나는 언젠가는 우리가 다시 4명 가족이 될 거라고 믿었다.
교회에 가기 싫어도 그 소원을 빌러 꼬박꼬박 갔는데
아무리 빌어도 이루어지지 않아서 안 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 소원 따위는 안 들어주셨다.
소원을 들어주시려면 진작에 아빠한테 여자 친구가 생기는 걸 막아주셨어야 했는데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었다. 아빠가 이미 그 못생긴 아줌마를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 소원은 물 건너 가버렸다.
아빠는 아줌마와 같이 살면서 아기까지 낳았고, 이제 그 아기를 돌보느라 아무것도 못한다.
그냥 이렇게 따로따로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엄마가 늘 하는 말이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줬으면 엄만 할 일 다 한 거야. 그 이후로는 너희들이 독립해야 돼."
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스무 살이 되자마자 혼자 살 수가 있겠는가.
혼자 고민하다가
일단 스무 살이 되면 엄마가 나가라고 할 거니까 짐을 싸서 아빠네 집에 가 있기로 혼자 결정했는데 최근에 아빠가 사는 걸 보니, 아빠 집에 가면 내 고생길이 훤할 것 같아서 그 계획은 취소를 했다.
그냥 욕을 좀 먹더라도 엄마 옆에 붙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엄마는 공짜로는 안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하숙비를 받겠다고 했다.
엄마는 딸한테 돈을 받고 싶나!
엄마는 우리가 다 컸는데도
가끔 "아가"라고 부른다.
내가 언니니까 동생을 늘 아껴주라고 한다.
그리고 늘 동생 편만 든다.
우리 가족 중에 동생이 제일 어리고 약하다고 배려해주라는데 얘는 나보다 덩치도 더 크다.
나랑 동생이 떨어져 있으면 난리가 나는 줄 안다.
"엄마 아빠 죽으면 너희 둘이 유일한 가족이니까 늘 아끼고 챙겨줘야 해."
그 말이 제일 듣기 싫다.
그걸 누가 모르나? 사람은 다 죽는다는 거.
그런데 꼭 그렇게 최악으로 이야기해야 속이 풀리나 보다.
내가 생각할 때 엄마나 아빠는 아직 죽으려면 한참 멀었는데도 저런다.
엄마는 독한 여자다.
잠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평일이고 휴일이고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나간다.
갔다 오면 늘 피곤해서 쓰러지면서 왜 가는지 모르겠다.
그냥 인체를 시험하는 것 같다.
엄마는 운전을 잘한다.
옛날부터 잘했다.
마트에서 후진으로 백 미터쯤 가서 한방에 주차하는 건 일도 아니다.
엄마가 잘하는 건 몇 개 안되지만 주차 하나는 보통 아줌마들보다는 잘하는 것 같다.
시골 외할머니 집에 갈 때도
여행 다닐 때도 엄마는 늘 운전을 하는데
담요 덮고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도착해있다.
운전하다가 피곤하면 엄마는 10분만 자겠다고 차를 세운다.
그런데 30분은 자는 것 같다.
그럼 우리는 엄마가 자는 모습을 사진 찍는다.
못생기게 찍어놓고 엄마한테 보여준다.
엄마는 그걸 보고 "야 임마."라고 한다.
엄마 놀리는 건 재미있다.
엄마는 월급 전날이 되면 책상에서 가계부와 계산기를 갖다 놓고 혼자 끙끙댄다.
이번에도 마이너스가 났다면서 우리가 너무 많이 먹어서란다.
우리 한 달 부식비가 60만 원인데 그게 넘을 때가 있단다.
아니 우리 나이에 그럼 새 모이만큼만 먹나?
가계부 정리할 때마다 한숨 쉬는 엄마가 돈을 펑펑 쓰는 순간이 있다.
엄마는 여행 가서 밥 먹을 때는 돈을 아끼지 않고 막 사준다.
"이거 먹으러 다시 여기 오는 기름값이 더 들어. 이왕 여행 온 거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
또 서점 가서 책 살 때다.
만화책이든 소설이든 우리에게 읽고 싶은 책을 고르라는데 동생이랑 나는 읽고 싶은 게 없다.
엄마 책만 잔뜩 사서 온다.
엄마는 중고서점에 가서 필요한 책을 구하다가 없으면 인터넷이나 서점에 가서 책을 산다.
그걸 다 읽는지 모르겠지만 책도 좋은데 맨날 입는 운동복 말고 옷이나 좀 사지.
엄마 패션은 정말 최악이다.
진짜 엄마 나이 사람 중에서 옷을 제일 못 입는 사람일 거다.
엄마는 친구 엄마들처럼 공부하라고 닦달하지 않는다.
학기말 성적표를 보여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학원도 싫으면 안 다녀도 되는데 그 대신 내가 배우고 싶은 걸 배우라고 한다.
학교 다니기 싫다고 했다가 엄마가 고민도 없이
"그래. 그만 다녀. 요즘은 중졸자가 흔치 않으니 그것도 괜찮다."
라고 하는 말에 그냥 다니고 있다.
나는 빡빡하고 의미 없는 학교 생활이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한국 같은 이상한 교육열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
엄마한테 고등학교를 외국에서 다닐 수 있게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공황장애가 다 나으면 가라고 했다. 그전까지 엄마는 돈을 모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사를 많이 다녔다.
엄마 직장 따라 이사할 때마다 나도 동생도 친구를 새로 사귀어야 했다.
처음엔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엄마는 친구가 없다.
학교에서도 꼭 그런 찐따 같은 애들이 있는데
엄마는 어른 찐따 같다.
엄마는 퇴근해서도 가끔 일 때문에 직장 아저씨들하고 통화하기도 하는데
나는 엄마가 남자하고 통화하는 게 싫다.
아빠가 여자 친구 생긴 것처럼 엄마도 그럴까 봐.
그래서 확실히 말했다.
"엄마가 남자 친구 생기면 나는 가출해버릴 거야."
그리고 우리 집에 우리셋 말고 낯선 남자가 들어와 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혼자 있는 엄마가 가끔 심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차라리 이것이 안심이 된다.
외할머니 집에 가면 참 좋다.
특히 외할머니 집 마당에 도착했을 때 콧구멍 안으로 훅 들어오는 풀 냄새, 소똥 냄새, 나무 태우는 냄새들이 정말 좋다.
외할머니는 사투리도 웃기시고 우리를 보는 표정이 재미있다.
우리를 볼 때 웃는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시고 언제나 밥을 맛있게 해 주신다.
갈 때마다 무조건 우리에게 오만 원씩 주셔서 더 좋다.
엄마는 외할머니네 가면 도착한 즉시
죽은 것처럼 잠만 잔다.
사망한 줄 알았다.
집에서는 몇 시간 안 자고 시간이 아깝다며 이것저것 하면서
외할머니네서는 하루 종일 자도 자도 또 잠이 온다고 한다.
눈을 뜨고 있는 순간은 밥 먹을 때와 외할머니와 옛날이야기할 때이다.
엄마는 가끔 혼잣말처럼
"나도 엄마 보고 싶다."
라고 한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만 하지 말고 가. 가면 되잖아?"
엄마는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말든가.
보고 싶다면서 안 가는 건 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엄마는 확실히 찐따가 맞는 것 같다.
엄마는 친구들 엄마보다 말이 잘 통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도 짜증 날 때가 많이 있다.
엄마는 사소한 것에 나를 기분 나쁘게 한다.
예를 들면,
"과자 먹는 건 좋은데 소파에서 먹지 마."
"알아들었니? 대답 안 하니?"
"그건 네 일이니까 알아서 해야지."
엄만 가끔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말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들으면 짜증이 난다.
그리고 엄마가 먼저 그렇게 말해놓고 밖에 나가버린다.
화난 건 나인데, 엄마가 말도 없이 나가버린다.
치사해서 전화도 안 한다.
핸드폰 하면서 놀고 있으면 어느새 엄마가 들어온다.
나는 본체만체한다.
엄마도 본체만체한다.
짜증이 나서
김 과장을 '우리 집 계모'로 다시 저장했다.
우리 엄마는 맞지만, 신데렐라 새엄마나 콩쥐 새엄마처럼 나한테 못되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날이 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야기해야 되니까 조금씩 말을 건다.
엄마는 성격이 이상하니까 내가 너그럽게 먼저 풀어주는 것이다!
엄마가 핸드폰에 내 번호를
'귀한 큰딸'이라고 저장해둔 것을 보았다.
'우리 집 계모'의 '귀한 큰딸'...
뭔가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