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이야기 #. 22
친구의 SNS에 늘 등장하는 앳된 여자가 있었다.
여행이나 부모님의 생일 등 가족 행사에서는 물론이고 운동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외식할 때도 친구의 카메라 프레 임안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친구와 만날 기회가 있어 물어보았다.
그 여인은 다름 아닌 남동생의 아내, 올케였다.
"시대가 바뀌긴 했나 보다, 시누올케가 마치 자매처럼 친구처럼 지내는 걸 보니."^^
가끔도 아니고 거의 모든 일상을 남동생의 아내와 함께 하는 친구를 보며 나만 결혼생활이 불행한가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올케와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는데 친구가 한 말들은 뜻밖이었다.
"이젠 친하게 안 지내. "
친구는 시가와 단절한 지 오래였다.
다행히 그 남편은 아내를 선택하고 또한 자신이 이룬 가족을 버리지 않기 위해 친가와 연을 끊다시피 했고, 그만큼 처갓집과의 왕래가 일상이었다.
친구가 나름의 시집살이를 했다고는 하나 이제 그 기억은 사라진 지 오래일 터이고, 최근 남동생과 결혼한 올케라는 새로운 등장인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가족'이라는 좋은 이유가 있었다.
'시누 짓을 톡톡히 하고 있구먼...'
그 올케의 입장은 들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술자리에서 친구와 대화할수록 내 마음에 드는 생각이었다.
'내가 볼 때 너의 문제점은 말이야, 네가 아주 괜찮은 시누라고 처음부터 깔고 가는 그 부분이야.
그 어린 올케가 혹시 시댁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불편하다는 말은 안 하디?
하긴 시퍼렇고 꼬장꼬장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시누 앞에서 할 수가 없겠다.'
참지 못하고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그리고 친구 앞에서 당시 내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내가 많이 당해서, 많이 겪어놔서 친구 상황이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시가의 작은 부당함에도 발끈하게 되고 이 세상 모든 '올케'에게 빙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역시 그 시작은 '고약한 시누 같지 않고 언니처럼 편안한 남편의 누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댁행사에서만 만나도 될 것을, 친구는 자기 집으로 올케를 자주 불렀다.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너는 누가 해주는 밥 먹고 싶을 거니까
차 한잔 하고 싶을 거니까
내가 너보다 육아도 선배, 인생도 선배니까
뭐 이런 이유들이었다.
시누 집에서 해주는 밥을 얻어먹고 아이를 같이 재우고 커피 얻어마시면서 올케는 얼마나 빚을 지게 된 걸까.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던 올케와 어색해진 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오라고 할 때마다 아기띠를 매고 쪼르르 오던 올케가 이런저런 핑계로 한두 번 오지 않자 마음이 서운했고, 명절날이나 엄마 아빠의 생일날 조금이라도 소홀할라치면 못마땅해지기 시작했단다.
'내가 자기한테 지금껏 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남동생이 자신에게 쌀쌀맞으면 무뚝뚝한 동생 탓을 하지 않고 '올케가 뒤에서 조종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친정엄마가 일상적인 며느리 이야기를 하면 그게 흉이 되어 솜사탕만큼이나 크게 부풀려졌다.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관계'가 아니다.
그냥 거래이다.
내 눈에는 그게 보이는데, '시누이'완장을 차게 된 친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잘해줬는데
우리 집 같은 시댁도 없는데
올케 하나가 그 마음을 모르고 저렇게 속좁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0년 가까이 한방에서 크는 자매도 머리 뜯고 싸우고 그래.
그 올케가 너랑 친하면 얼마나 친해, 집착하지 마 좀."
집착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보기엔 친구는 시댁이라는 무기까지 장착된 무시무시한 상대였다.
그렇게 SNS를 도배하던 올케는 어느새 친구와 불편한 관계가 되어 대한민국에서 흔한 올케+시누 사이가 되어 있었다.
"올케 시집오고 첫 생일이니 선물은 하나 해줘야지.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봐, 집에 놓고 갈게."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시누들이 전화를 했다.
퇴근하고 가니 내 선물은 보이지 않고 시어머니가 까만색 윤이 나는 장지갑을 부리나케 꺼내오셨다.
"이거 어떠냐? 괜찮지? 딸들이 줬다 오늘."
올케 생일 선물을 사 가지고 친정에 놀러 온 시누이들은 엄마가 장지갑을 만지며 곱다고 탐내자 그냥 줬다고 했다.
"올케는 다른 거 다시 사주지 뭐."
내가 들고 다녔어야 할 지갑은 그렇게 어머니 손에 갔다.
자주 쓰지도 않는, 그냥 주민등록증 하나만 달랑 넣은 채 장롱 서랍에 모셔져 있었다.
시어머니도 그 지갑의 원래 주인이 며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 뒤 시누이들이 내 선물이라며 다른 지갑을 사 가지고 왔다.
"올케. 기분 나쁘지 않지? 엄마가 자기도 갖고 싶대잖아, 호호."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다요..."
기분 나빴지만 내가 민감한 건가 싶었다.
'그건 진짜 기분 나쁜 거야. 제정신들이니? 자기 엄마 꺼는 새로 다시 사줘도 되잖아. 이건 올케 거라고 해야 하는 거잖아. 네가 그 집 안에서 얼마나 하찮으면 그러냐?'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나 빼고 그들은 다 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내가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고 뒤늦게라도 느꼈던 순간 가장 먼저 한 것이 지갑을 버리는 것이었다.
결혼예물을 팔아버리는 것이었다.
예물이라고 해봐야 24K 한 세트가 전부였다.
시누들은 신혼초에 나를 앉혀놓고 말했다.
"솔직히 다른 집 다 둘러봐도, 우리같이 잘해주는 시누들은 잘 없어. 안 그래?"
두 번 세 번 결혼하지 않은 다음에야 내가 그 '잘해줌'의 기준을 어떻게 알겠는가.
진정으로 괜찮은 사람들이었다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형님들은 정말 좋으신 분 같아요."
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자동으로 나왔을 것을, 뭐가 그리 조바심이 나서 나이 어린 올케에게 셀프칭찬을 해야 했을까.
좋은 시누가 되려면 끝까지 됐어야지, 가족이라고 할 땐 언제고 <이 집에 들어온 올케>라는 표현을 썼던 것일까.
이 집에 들어온...
이 집에 들어온 사람.
들어온 무엇인가는 반드시 나가기 마련이다.
그들의 말처럼 '이 집에 들어온 나'는
내 발로 스스로 걸어 나갔다.
시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미혼이라면
친정오빠 혹은 남동생 같은 남자와 결혼해서 평생 살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가능하다고?
그럼 이건 어떤가. 과연 내가 애지중지 키운 이쁜 딸을 선뜻 맡길 수 있는 '남자'인가?
내 딸을 그 남자와 결혼시키고, 당신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시누들을 감당하며, 당신의 친정엄마를 모시는 그 집안에서 살라고 적극 추천할 수 있을까?
시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남동생, 오빠와 같이 살겠다고 방긋방긋 웃어가며 꽃다운 자신의 인생을 운명처럼 맡기고,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생판 모르는 늙은 어르신들과
남편과 조금 닮았을 뿐 기질도 장점도 모르겠는 이상한 여자들을 단지 남편의 여동생, 혹은 누나라는 이유로 존대를 꼬박꼬박 해가며 웃어 보이는 사람이 바로
올케라는 사람이다.
결국 올케도 당신과 같은 '여자'이다.
당신이 남편 때문에 힘들 듯
올케도 당신의 오빠 때문에 당신의 남동생 때문에 괴로울지도 모르는 여자이다.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올케한테 그냥 무관심해
그리고 지갑을 열 때만 연락해
그것도 아니꼬워서 싫으면 그냥 각자 인생 살아
올케는 너 감당하려고 돈 들여서 결혼한 거 아니야
너 동생과 살려고 결혼한 낯선 여자일 뿐이야
화목은 그냥 너 가족들이랑만 하길 바래
올케는 너랑 피 한 방울 안 섞인 완벽한 남이야
올케라는 그 낯선 여자가 행복해야
결국
너 남동생도 행복해지는 거야
남편과의 문제로 이혼하는 가정이 대부분인 것 같지만
의외로 시댁 사람들, 혹은 처가 사람들과의 트러블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끔 만나는 형부나 제부에게 혹시 우리 집이 그런 존재가 되진 않는지, 내가 그러고 있는 것은 또 아닌지 늘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이다.
"엄마. 먼저 하늘나라 가버린 남동생한테 가끔 고맙다.
그 녀석 살아있었으면 누가 결혼한다고 왔겠어? 징글징글하지,
시누가 다섯에 내가 봐도 억척스러운 시어머니 있는데.
멀쩡한 남의 집 귀한 딸 고생시킬 뻔했잖아!"
창밖 먼산을 보며 중얼거리는 내 말에 잠시 눈을 흘기는 엄마다.
그리곤 나와 같이 박자를 맞춰 김 빠진 너털웃음을 짓는다.
엄마와 나에게
결혼, 시집살이, 남편, 고부갈등은
공통된 삶의 재료이자
굳이 늘어놓지 않아도 아는 이야기들이다.
어찌하지 못하는 이 땅의 며느리들에게
가슴 치며 우는 올케들에게
가장이 되어버린 엄마들에게
그리고
숨죽이며 살고 있는 싱글맘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말없이 스윽 건네주고 싶다.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묵묵하게 곁에 앉아 있어주고 싶다.
소매로 닦아내는 눈물이든
입으로 꽉 막아보는 울음이든
그 울음이 끝나고
이제 가봐야 한다고
툭툭 털고 일어날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