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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넉넉 Oct 20. 2022

토라지는 재재를 품안에

화요일 에세이

세 돌 전후로 재재는 잘 토라진다. 싫다는 것을 “으으으응”이라 도솔도솔(계이름)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고 표정은 찡그린 채 나를 보며 명확하게 표현한다. “아아!”, “치이”, “싫어!”, “안 해!”, “미워, 엄마 미워.” 종종 고개를 흔들며 무표정으로 나(또는 남편)를 한참동안 바라보기도 한다. 그럴 땐 본능적으로, 아주 짧은 순간 찌릿, 팡, 하고 내 마음에 무언가 뾰족한 게 올라온다.      


무시하고 돌아서고 싶은 마음, 목소리를 크게 해 혼내고 싶은 마음, 같이 얼굴을 찡그리며 더 무서운 표정을 보이고 싶은 마음…     


이것들은 어디서 왔을까.     


기분이 나빠지면 남을 탓하거나 되갚음으로써 나의 존재감을 지키고 싶은 인간의 공격적인 본능일까, 아니면 나의 부모에게서 반복적으로 관찰하고 학습한 자동적인 행동일까. 재재가 토라지거나 소통이 잘 안 될 때 나에게서 보이는 못난 모습과 충동은 어쩌면 둘 다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원인이야 어찌됐든 늘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내 앞에 있는 아이는 내 아들, 작은 아이, 아직 나보다는 발달적으로 생각이나 표현이 미숙한 아이, 그럼에도 분명하게 자신의 욕구와 목적을 표현해 내가 어떻게든 반응할 단서를 주고 있는 아이. 나의 오래된 신경질적이고 과민한 반응이 나온다면 내 아이는 틀림없이 불필요한 상처와 수치심을 이유도 모른 채 몸에 심고 살아갈 것이다. 완벽할 순 없어도 완벽하게 예전으로 돌아가진 말자.”     


내 부모에게서 보아왔던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 부정적인 측면들은 분명 내 안에 있을 것이므로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경계하고 있다. 의식하고 경계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되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잘 모르는 대안을 계속 내 안에 채워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고 있다.     


다시, 

- 재재는 어린 아이로로 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아이답게 토라진다.
- 눈을 감거나, 치켜 올려 나를 쳐다보거나, 싫다고 크게 반복적으로 말한다.
- 그러면 나도 그에 따른 반응으로 나도 모르게 팡, 하고 올라오는 신경질과 짜증을 마주한다. 
- 순간, 이성을 잃을 수 있다. 그렇지만 있는 힘껏 의식을 그러모은다. 
- “재재, 네가 엄마를 화나게 했으니까 엄마가 화를 낼 거야. 어디 엄마 앞에서! 엄마 말 들어!”라고 할 것인가. 내가 숱하게 보아왔던 어른들의 자동적인 반응을 나도 답습할 것인가. 아니, 나는 진정한 어른이고 싶고, 재재 엄마이고, 재재는 재재만의 성향과 방식을 가진 내 아들이니 잘 고려해서 반응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다.
 - 재재를 지그시 바라본다. 재재가 지금 원하는 게 뭘까. 무엇은 넘치게 채워주고 무엇은 과감하게 채우지 말아야 할까. 내가 견딜 수 있는 것은 자존심과는 상관없이 끝까지 견뎌주고, 용납하지 말고 설명해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빨리 생각한다.
- 재재가 원했을 법한 것을 알아주는 말을 한다. “재재가 지금 엄마 관심을 받고 싶었구나.” “재재가 지금 저 장난감이 갖고 싶구나.” “재재가 지금 아이스크림이 정말 먹고 싶구나.” 
- 채워줄 수 있는 것과 온전히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끼지 않는다. “그래, 엄마가 지금 그걸 해줄 수 있으니까 우리 같이 해볼까? 재재가 하고 싶은 거고, 지금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같이 해보자!”
- 당장 채워줄 수 없는 것과 허용이 안 되는 것은 목소리 톤을 낮추고 천천히 이야기한다(이런 경우 내가 어렸을 때는 주변 어른들에게 주로 호통이나 꾸중, 훈계를 받았었다. 그러니 어려운 부분이다). 지금 당장 왜 안 되는지, 언제쯤 채워질 수 있는지, 어떤 것은 앞으로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건 왜 그런지. 
-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재재가 어떤지 물어본다. 살핀다. 그러면 그 즈음에 재재는 주로 괜찮아져 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네” 한다.
- 재재를 껴안는다. 또는 재재에게 물어본다. “엄마가 안아줄까?” 그러면 재재는 주로 나를 껴안아준다. 
- 재재에게 웃긴 소리를 내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잠시라도 같이 애정 어린 시간을 갖는다.


토라지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품안에 끌어안아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의식적인 생각의 흐름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 나를 위한 일이 결국은 내 가정과 자녀를 위한 일로 이어지고, 그것이 좀 더 이어지면 대대손손 나의 후손들에게 귀한 자원으로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수준 높은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날도 있다. 인내심을 발휘해서 재재의 토라짐을 받아주려 해도 재재가 나를 밀어낼 때도 있다. 그러면 재재에게 말한다.   

  

나: (손을 저 멀리로 향하게 가리키며) 재재 엄마 부른 거 아니었어? 엄마가 조금 멀어져 있을까?
재재: (울먹이고 고개를 저으며 두 팔을 나를 향해 뻗는다.) 엄마, 엄마. 
나: (재재에게로 가 재재를 꼬옥 안으며) 응, 재재야. 엄마도 아직은 서툴러서 재재 마음을 완전히 몰라. 그래도 엄마가 잘 들어볼게. 우리 아들 엄마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이렇게 안아줄까? 
재재: (입술을 뾰로통 앞으로 내밀며) 웅. 안아줘.     


이렇게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내 품에서 재재가 웃으면서 꼼지락꼼지락한다. 내 품에서 저항하지 않고 조금 있으면 자기의 작고 보드라운 두 팔로 내목을 감싼다. 그게, 보이는 것 같지만 잘 보이지 않는 보상이다. 발견하지 못하면 “그래 그래야지”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발견하게 되면 “우리 아들이 결국 엄마에게 와주어, 엄마를 받아주어 고맙다. 나도 잘했다”가 된다. 그것만큼 보람된 것이 있을까. 순간적이지만 이런 순간이 반복되면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아이에 대한 확신도 커져간다.      


어린 아이의 뇌, 정서지능, 기억력, 독립성 발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다. 독립하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무력하고 연약해서 엄마[아빠]에게 의존해야만 한다는 어린아이의 본능. 배워서 익히 알고 있지만, 이론이 내 몸에 체화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재재를 양육하며 직접 경험하니 머리에만 있던 것을 몸과 마음까지 가져올 수 있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경험을 반복하는 건 나에게 이로운 것 같다.      


어른끼리도 싸우지 않나. 싸우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싸우고 제대로 자기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풀 줄 모르기 때문에 나쁘게 끝나는 것이다. 아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이들도 사람인데 어떻게 늘 엄마, 아빠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할 수 있을까. 토라지고, 일부러 엄마, 아빠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무조건 울어대기만 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니다. 이런 모습을 보일 때 부모가 아이 눈높이에서 진지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않아서 아이 안에 생기는 오랜 상처가 안타까운 것이다. 사람끼리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 화해하는 과정에 잘 참여하고 견디면 좋은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얼마든지 토라지고 말 안 들을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목소리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 그 자리에서 함께 화해할 때까지 머물러주기만 한다면 좋은 것이다.     


재재가 토라질 때마다 내가 반응하는 것, 내 반응에 재재가 또 반응하는 것 하나 하나 모여, 우리가 훗날 테이블에 꺼내 놓고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추억’, ‘소중한 기록’이 될 수 있도록 매일, 매일 이성과 감성을 두루 갖춘 엄마이자 어른으로 재재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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