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4-2
“언니, 이쪽이 아니라 차를 돌려서 왼쪽으로 쭉 가야지”
“아, 그렇구나”
“언니, ‘stop’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이 있는 곳에선 꼭 멈췄다 출발해야 해”
“어, one thousand, two thousand, three thousand”
“언니, 우회전 할 땐 빨리 돌아야 해. 안 그러면 뒤차가 뭐라고 해”
“어”
사거리 가운데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언니, 미국에는 비보호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어.”
“뭐?! 왜?!”
“있는 곳도 있는데 없는 데도 많아. 그래서 눈치껏 가야 돼.”
아, 내가 제일 못하는 게 눈치보는 건데.
“자, 미국에서는 먼저 도착한 차가 먼저 움직여. 만약에 자기 차례인데도 우물쭈물하면 다른 방향에 있던 차가 엑셀을 밟겠지. 또는 뒤차가 빵빵 대거나. 그 때 놀라서 엑셀을 밟으면 맞은 편에서 직진하던 차가 사거리 중간 쯤에서 멈추고, 나도 멈추고. 사거리 가운데서 두 운전자가 니가 잘못했네, 네가 잘못했네 따지기 시작하면 차들이 다 얽혀버리는 거야”
히익, 바짝 정신을 차린 상태로 좌우로 고개를 거의 270도 돌려 차가 오는지 확인했다.
“언니! 양 쪽은 볼 필요 없지. 이미 빨간불이니까. 맞은 편에서 직진으로 오는 차가 있는 지만 확인하면 되잖아.”
“아, 그렇구나”
“지금 빨리가”
“응”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며 무서운 상상을 했다.
‘이러다 옆구리 받히면 어쩌지.’
이 날 이후로 비보호좌회전을 능숙하게 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핸들을 돌릴 때마다
‘이러다 옆구리 받히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낸시와 도로주행 연습중. 내일 일요일에 고모와 간병인을 교회까지 차로 모셔다드려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나는 한국에서 무사고 십 년 경력의 운전자이지만 나라마다 운전 관습도 다르고, 내가 몰고다닐 렉서스 세단도 처음 타보는 차였기에 이에 대해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낸시에게 운전연습을 제안하며 이렇게 이유를 댔지만 제일 큰 불안요소는 따로 있었다.
나는 심한 길치다.
내가 가는 이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있네
-이 쪽으로 가는 게 맞는 거겠지?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이 쪽으로 가는 게 맞는 거겠지?
GOD의 ‘길’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운전할 때 티맵, 걸어갈 때 네이버지도가 없으면 나는 저렇게 된다. 이 노래의 작사가도 나처럼 길을 잘 못찾는 사람이 아닐까. 언젠가 나는 도착지를 15분 남겨 놓은 상태에서 제 때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남은 시간이 1시간으로 늘어난 적도 있었다. 이미 세 시간을 운전하던 중이었기에 지친 나는 목적지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나 혼자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동행이 있었다면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그 사람에게 느낄 미안함까지 얹어져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짧은 거리라고 방심했다가 거리와 예상소요 시간을 몇 배로 늘린 적도 여러 번인지라, 중간에 길을 잘못들어 몸이 불편하신 고모의 마음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구글맵은 믿음직했지만 내 자신은 못미더웠기에 예행연습은 필수였다.
무사히 사거리를 통과했다.
“언니, 저기 교회 보이지.”
11시 방향에 교회정문이 보였다.
“응”
“저기로 꺾어서 들어가야 해”
저기? 저기서? 저기 맞아? 그냥 중앙선이 계속 이어져 있는데?
나는 몹시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조금만 더 가면 중앙선이 끊기고 왼쪽 진입로 표시가 돼있는지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도로 위를 살폈다.
없었다.
없는데?
혼란에 빠진 물음표 살인마는 그 사이에 교회를 지나쳤다.
낸시는 차분한 목소리로 조금만 더 가면 유턴하는 곳이 있으니 앞으로 가라고 말했다.
유턴을 하고 몇미터 못 간 상황에서
“언니 저기 XX불고기집 보이지”
“어”
“저기 끼고 돌아”
얄궂게도 그 전에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하나 있었다.
“여기? 여기? 여기?”
“아니, 좀 더 가서 돌아.”
돌고나서 얼마 안가 교회 뒤쪽에 주차장이 보였다.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까지 하고 잠시 숨을 돌렸다.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교회까지 차타고 오 분이랬는데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했더니 이미 나는 지쳤고요. 근시, 난시, 왼쪽 눈에 백내장, 노안 초기에 야맹증까지, 내 눈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었기에 어둠이 깔리자 불안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속도를 줄였나보다.
“언니! 여기 메인도로라서 이렇게 느리게 달리면 안 돼!”
낸시가 경고했다. 계기판을 보니 거의 운전면허연습장 안에서의 속도로 가고 있었다.
이윽고 집에 도착했다.
“연습을 한 번 더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낸시에게 말했다.
낸시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케이를 했다.
두번째니까 수월…
할리가 있겠냐
나는 낸시가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것에 대해 감사했다. 또한 내가 낸시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 가까스로 언니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낸시는 진작에
“내가 아까 얘기했잖아!” 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을 지도.
낸시는 조수석에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차분히 주의사항들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주었다.
두 번의 도로주행연습을 끝내고 집에 들어서자 데이빗이 어땠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았는데, 왠지 모르게 낸시는 긴장하는 것 같더라고.”
“네가 긴장하는 대신, 네 옆의 사람을 긴장시켰구나!”
데이빗이 맞받아친 말에 데이빗과 나는 하하하 웃었지만 옆에 있던 낸시는 웃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늦어 집에 돌아가기 위해 문밖을 나서면서도 낸시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게 계속 물었다.
“언니, 내일 우리집까지 운전해서 올 수 있겠어? 프리웨이 타야 하는데 괜찮겠어?”
“아, 그럼 당연히 갈 수 있지. 걱정하지마.”
그러나 방금까지 조수석에 앉아 나의 운전을 생생히 체험하고 아직 그 여운이 남아있는데 걱정이 안될리가.
“내일 낮에 우리집에 오는 거 연습으로 한 번 와볼래?”
낸시는 급기에 이렇게까지 말했다. 나는 낸시를 안심시키며 배웅하고 집에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구글맵을 켜서 이 일대 지도를 오프라인에서도 쓸 수 있게 저장했다. 이미지를 로딩하다가 렉이 걸려 위치정보를 제 때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휴대용 배터리의 충전상태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여분의 배터리를 하나 더 챙겼다.
긴장이 풀리면서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