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1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영화를 보던 그 때와 똑같은 감정을 다시 느낀다.
그리고 묻혀있던 기억을 순식간에 끌어내는 음악의 능력에 신기해 하기도 한다.
빰-빠밤빠— 빠-바밤—.
인디아나 존스를 본 사람 중에서 이 인트로를 들으면
석영을 등지고 힘차게 말달리는 인디아나 존스 일행이 떠오르고
빰— 빰— 바바바 밤— 빰- 바바바 밤— 빰.
귓가에 울리면 It was a period of civil war.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오프닝 스크롤이 눈 앞에서 자동재생된다.
존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내가 드는 감정은 좋아한다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좋아하고 말고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걸.
이렇게 관객을 타임워프시키는 놀라운 힘 앞에선 그저 소름만 돋을 수 밖에.
“언니, 존 윌리엄스 알지? 영화음악 하는 사람.
언니 미국에 있을 때 헐리웃볼에서 콘서트 하는데 보러갈래?”
5월 중순 어느 날, 낸시와 관광일정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낸시가 물었다.
“존 윌리엄스?! 당연하지. 갈래! 갈래!”
“오케이, 그럼 표 예매할게.”
아, 통화하던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때처럼 소름돋는다.
그 스타워즈 테마곡을 라이브로 듣는 거야?
그 인디아나 존스 엔딩곡도?
참고로 말하자면, 1972년에 개봉한 스타워즈와, 1981년 작 인디아나 존스-
이 둘의 주제곡이 너무 닮아서 노래만 듣고는 이 곡이 스타워즈 오프닝곡인지,
아니면 인디아나 존스 메인테마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한 번 주의깊게 들어보시길.
여기까지 5월 이야기이고, 이 글도 타임워프해서 이제부터 다시 7월로 돌아간다.
7월 12일, 13일, 14일에 열리기로 한 공연 중 우리는 마지막날인 14일에 가기로 했다.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존 윌리엄스의 건강상의 이유로
지휘자가 데이빗 뉴먼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긴 그의 나이 92세.
삼 일 연속 두 시간 넘게 서서 지휘하기가 버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집보다 낸시네가 헐리웃볼과 가까워서 내가 낸시네로 가서 차를 놓고, 모두 한 차로 이동했다.
헐리웃볼 근처 주차장은 이미 만차라 데이빗은 우리를 공연장 근처에 내려주고
조금 멀지만 이십분 정도만 걸으면 되는 한 쇼핑몰로 차를 몰고 떠났다.
그 곳에서 저녁거리를 사고 주차비를 정산받을 거라고 낸시가 말해주었다.
낸시는 일라이자와 선율이가 갖고 놀 광선검도 두 개 가져왔다.
그 중 하나는 친구에게 빌려온 것이었다.
9살 동갑내기 둘 중 한 명만 광선검을 휘두르면 다른 한 명이 자신의 엄마를 간절히 올려다보며
엄마, 나도 저거. 라고 작지만 같이 온 사람들 모두에게 들리기엔 충분한 데시벨로 조르는 경우가
다반사라 불필요한 지출을 막기 위해 낸시가 마련한 대비책이었다.
어린이와 함께 외출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출발 전에 양육자들은 일정 당일을 시간별, 장소별로 나누어 돌발상황사태까지 염두에 두고, 각각의 경우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다 보면 짐이 금세 두세배로 늘어나 있다. 나도 선율이를 키우면서 자주 했던 일이라, 낸시와 데이빗이 했을 수고가 상상이 되어 고맙고 미안했다.
한 손엔 광선검, 다른 한 손엔 각자의 엄마손을 잡은 아이들과 공연장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기에, 우리도 그 행렬에 섞여들어갔다.
길을 따라 서있는 가로등마다 오늘 콘서트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길가에는 노점상들이 있었다. 시원한 음료나 간단히 배를 채울 음식을 파는 곳도 많았지만 당연하게도 광선검 가게가 제일 많았다.
공연장 정문에선 안전요원들이 관객들의 짐을 검사하고 있었다.
나중에 갈 디즈니랜드, 씨월드 등에서도 들어가기 전에 항상 가방검사를 받았어야 했다.
아무래도 총기소지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리라.
한참 오르막길을 걷다가 숨이 차서 언제 공연장이 나오는 거지? 의문이 들 때 쯤 관객석이 보였다.
공연장은 말 그대로 보울 bowl, 우리 말로는 뭐라고 해야할까, 큰 대접? 양푼? 바가지?
아무튼 산등성이를 아주 큰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깊게 한 번 퍼낸 것처럼 오목하게 파여있었다.
우리는 무대와 관객석 전체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 위 좌석에 앉아
데이빗이 포장해온 피자를 맛있게 먹으며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하나 둘 오케스트라 단원이 들어오고, 각자 자신의 악기를 튜닝하기 시작했다.
내 가슴도 두근대기 시작했다.
악기소리들이 켜켜이 쌓일 때마다 기대감도 서서히 커져서 심장까지 차오르나보다.
우리도 자리를 정리하고 공연을 감상할 마음의 준비도 마쳤다.
이윽고 지휘자가 무대 중앙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