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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Jan 25. 2023

풍요로운 명절? 싸움 나는 명절?

명절 전야, 조용한 가운데 윗집인지 아랫집에서 큰 소리가 났다. 소리나는 쪽으로 가까이 가보니 울분을 쏟아내는 남자 말소리였다. 곧이어 나이 지긋한 여자가 말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아도 어떤 말들을 주고받고 있을지 예상되었다. 그 목소리는 20여 분 이어지다 곧 잠잠해졌다.


다음 날 아침 라디오에서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로 시작하는 동요가 흘렀다. 음악이 끝나고 시사 프로그램 패널로 나온 변호사가 "일년 중 가족 간 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날이 명절입니다."하고 말을 열었다.


멀리 사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행복해야만할 것 같은 풍요로운 명절이지만, 명절을 진정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까치까치 설날보다 전날 이웃집에서 들려온 성난 목소리가 현실에서 내가 더 익숙한  명절의 모습이다. 사는 모습이 개별화되고 다양해지는 요즘, 멀리 사는 가족과의 만남은 반가움보다 불편이 더 크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라면 묻지 않을 질문을 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사촌들 중 나는 제일 맏이. 뭐든지 첫 타자였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진학, 취업까지. 때마다 번쩍번쩍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곤란한 질문을 받기 시작하며 명절은 피하고 싶은 날이 되었다.


코로나 기간동안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이 명절에 모이지 못하며 2년 정도 흘렀다. 친척 동생들 중 삼수, 사수까지 하는 이. 졸업 후 취직 못하는 이가 생겼다. 그동안 두 세대 간에 날선 말과 서툰 이해가 많이 오갔을 것이다. 취업난을 이해했을수도 있고, 이해를 못했더라도 자식이 싫어하니까 말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제 연세가 지긋해지며 관심을 쏟을 에너지가 없어졌을 수도 있고. 어떤 변화 때문인지 몇 년만에 만난 친척들은 대부분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 와중 한 분은 '니가 하는 일이 비전이 있니?' '요즘 자주 앉아있나 보구나. 살이 많이 쪘네' 말씀하셨다. 네. 네 하며 애매한 답을 하고 부엌으로 도망쳤다.


숙모가 만보를 걸으면 온라인 캐시를 적립해주는 어플을 소개하며 '이게 몇 개월 하면 치킨 하나 사먹을 수 있다' 하고 친구 추천 영업하시는 통에 한참 웃었다. 50대 여성들의 취미활동도 엿보고, 노릇하게 예쁜 색 보는 맛으로 전도 부치고. 재미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부엌에서는 또 다른 이유로 마음이 불편하다. 숙모들은 5시간을 도로 위에 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부엌에 들어간다. 특별히 부엌 일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의리는 있어서 억지로 일을 돕는다. 음식을 사와서 제사 지내면 안되냐고 의견도 제시해보았으나 내 의견은 뭣모르는 젊은이의 기타 건의사항으로 분류되어 무시되었다. '아버지도 좀 도우세요' 하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자기 일이 아니다 생각하고 누워있는 사람에게는 소용없을 것 같았다. 집안일을 잘 하는 제부를 칭찬하는 대화에서 '요즘 남자들은 다 그 정도 하는데'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그럼 아버지는 옛날 남자에요?'라고 뼈있는 농담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는 게 최선이었다.


아버지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음식 장만 많이 하지 마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한다. 할머니는 가족들먹을 게 부족하면 안되서 조금씩 보태다 보면 양이 늘어나는 건데, 알지도 못하면서 잔소리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돕지 못하니 음식 양이라도 줄여서 고생을 덜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에는 '자신이 돕지 못하니'라는 전제에서 먼저 기분이 상했는데, 이제는 아버지가 미안해하니까 다행이다 싶다. 우리 아버지는 그래도 일관성이 있다. 여자들은 무거운 걸 들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기계 고치는 일 같은 건 남자가 해야한다 생각하고. 어쨌든 자기 일이라 생각한 건 열심히 한다. 유리할 땐 가부장 논리. 불리할 땐 남녀 평등 카드를 꺼내는 것보다는 덜 약오른다.


어른들이 젊은 세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냥 내버려두는 것 뿐이다. 젊은이들도 그렇게 하면 된다. 우리 아부지 너무 옛날사람이라서 어쩌나'하고 놀리면서 아버지 심부름 해드리고. 다리 아프실 숙모들에게 의자를 가져다 드리고. 나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좋았다. 여자 일, 남자 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우리 세대가 앞으로 천천히 하면된다. 하기 싫은 사람은 내버려두고, 각자 다른 생각들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몇 번씩 다함께 웃을 수 있는 때도 있을 것이다. 이번 설을 지내보니 다음 명절은 좀 더 기쁘게 기다릴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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