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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Nov 15. 2016

담담하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 (14)

나를 위해 살아보기로 다짐한다


우리는 서로의 모든 순간을 알지 못한다. 일정 부분 이상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민폐라고 생각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끔은 아주 고요하고 강렬한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가령 늦은 밤 용건없이 걸려온 친구의 전화 목소리가 대책없이 다정할 때. 빛나는 껍데기로 몇 겹이나 감싸놓은 글 한조각에서 용케도 쓸쓸함을 발견하여 위로를 건네는 이를 만났을 때. 문득 생각나서 연락했다며 언제든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 나누자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는 진심을 받아버렸을 때. 애써 담담한 척 하는 내게 말없이 많은 것들을 묻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을 때. 아주 독한 술을 한 입에 털어넣은 것처럼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며 나는 그와 서로 '아는' 사이가 되고 싶다는 욕심에 흔들린다. 있는그대로 표현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찾아라. 채워라. (버려라.) 만나라.



S님은 진실하다. 후르츠칵테일에 들어 있는 투명한 젤리 같은 느낌.



나의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고 나의 미래는 현재의 결과일 것이라는 말로 시작된 열네번째 모임. S님이 나눠준 종이가 물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며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냐고. 슥슥 종이를 채워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척 난감했다. '지금은 그냥 16시간쯤 푹 잔 후에 방에서 혼자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거나 하늘이 변해가는 모양을 바라보고 싶어.' 굳이 틀에 맞추자면 '아무것도 안'하고 싶고 '아무도 안'만나고 싶은거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뭐라도 그럴듯한 답을 내놓으라고 머리가 마음을 다그쳤고 그럴수록 마음은 움츠러들기만 할 뿐이었다.



슥슥. 각자의 방식대로 적어나간다.



한동안 선택을 할 권리가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사는데 익숙해져서일까. 실패가 두려워서일까. 지쳤기 때문일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일까. 무책임한걸까.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어서일까. 나 자신을 속이고 또 속여서일까. 무엇이 되었든 나는 나에게 신뢰를 잃었다. 어려움을 호소하고 필요한걸 요청했는데 아무런 반응도 해주지 못한 적이 많았다. 희망을 잃어갔겠지. 그 어떤 바람도 소용없다고 생각했을거고. 이제와서 원하는게 뭐냐고 물어본들 준비된 대답이 없는게 당연했다.


그런 상념을 잊으려 다른 분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호기심이 삶의 원동력이고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러 할리우드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AD님, 자기만의 색깔을 찾고 싶다는 KC님 (결국 본인이 카멜레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지만 삶을 즐기는 법을 자꾸만 잊어버린다는 LB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적막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KJ님, 흥미를 갖게 된 새로운 분야에 완전히 꽂힌 S님과 "그렇게 걷다 보니 길이 보이더라구요."라며 묵묵히 자신의 전문성을 쌓고 있는 J님.



호기심 공장장 AD님에게 많은 에너지를 받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요소들이 넘쳐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많이들 아프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감각을 무디게 하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사용한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스스로를 속인다. 진실을 외면하고 마음의 소리를 무시한다. 멈추고 잠든다. 반응하지 않는다. 그건 정말로 '살아가고' 있는 상태일까. 그런 하루 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 미래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분명 후회스러울거야.


아픔을 감내하고서라도 깨어있기를 선택한 많은 사람들 옆에서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보기로 결심한다. 피하든 맞서든 똑같이 괴롭다면. 남의 시선 속에 갇히든 나의 의지로 나아가든 똑같이 힘이 드는거라면. 내가 정말로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단 한사람, 나를 위해 살아보기로 다짐한다. 세상에서 나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해주는 단 한사람, 나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지내기로 약속해본다. 그건 쉬운 일도 편한 일도 아니지만 그러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고 느껴진다면 계속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른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정확히 알고 있다. 오늘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따뜻한 원두커피에 계피향 만쥬. 사치스럽다.



소중한 사람과 산책을 하였다. 수북히 쌓인 낙엽은 크기에 따라서 밟힐 때의 소리가 다르다. 밤의 공기는 양갱 같고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느리게 걸었다. 선명히 기억될, 감각적인 순간이었다.








본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모임은 '노아 Know-我'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2016년 초 꽃향기 가득한 강남의 한 카페에서 독서모임의 형태로 시작되었구요. 현재는 월 2~3회 다양한 장소에서 독서모임, 자기분석 워크샵, 골목탐방, 낭독과 글쓰기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답게 사는건 무엇인지, 나를 사랑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누구나 궁금할거에요. 지금의 선택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도 알고 싶을거구요.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나만의 기준을 하나 하나 세워나가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아낼거라고 저는 믿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고 격려하는 사람들과 함께 삶의 작은 목표들을 이루며 나가며 나만의 길을 만들어나갈 수도 있을거라구요.


한 테마에 10명이내의 소규모로 모집하고 있어요. 진솔한 대화가 오갈 수 있게요. 누구든지 오실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부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분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저희 모임의 가치는 '자기를 말로 표현해보는'데 있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내 말에 귀기울여 주었기에 가능합니다. 그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러니 경청과 존중으로 보답할 수 있는 분들만 참여해주세요.


함께하실 분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문의 또는 참가신청은 저의 페이스북메세지로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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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16. 럭큐레이터. 1일 1책 1글을 행하며 나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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