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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해 Feb 08. 2023

2. 나무랄 데 없는 카페


설거지를 마치고 시계를 보았다. 자정을 지나 새벽 한 시가 되어가니 소파에서 보낸 공상의 시간이 꽤 길었구나 싶었다. 달리 할 일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한량의 시간이다. 그중 새벽 한 시부터 세시까지는 그녀가 가장 아끼는 시간의 구간이다. 몸은 늘어지고 뇌는 긴장이 풀리는 시간이기에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만들어진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 세시를 넘기고 이어진 글들도 수십 편이지만 그것들은 단 하나도 내어 놓지는 못했다. 도통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난무했다. 오로지 감성에만 의지한 단어의 꼬리물기 같아 독립시키지 못하고 품에 끼고 살아야 하는 못난 오리새끼들 같았다.

못난 오리 새끼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꼭 필요한 공정이었다. 해가 들어찬 날 밝은 시간대엔 나올 수 없는 언어들이 새벽 세시가 넘어가면 한전에서 부어주는 넘치는 전기량 덕에 쉼 없이 돌아가는 자동화 기기처럼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거름망을 거치지 않은 극적인 어휘들은 이때만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못난 자식들을 데리고 점심시간이 끝나는 즈음인 낮 1시에 대학 근처의 카페로 출근한다. 돈을 버는 출근도 돈을 받는 출근도 아닌 돈을 쓰는 출근자다. 직장인들처럼 월화수목금 주 5일 동일 시간대에 같은 카페로 들어가 써야 되는 글 작업을 하니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어느 날부터 ‘어서 오세요’ 대신 ‘이제 출근하세요’라며 맞아주었다. 센스 좋은 아르바이트생 덕에 그녀는 소소한 소속감과 함께 늘 앉던 자리에서 진득한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취향 저격의 카페를 발견하기까지 몇 번 다른 곳에서 적응의 시도가 있었다. 나뭇결 테이블이 마음에 들면 음악이 소란스러웠고 오래 머물고자 하는 이를 위한 쿠션감 있는 의자가 마음에 들면 창이 없는 지하 카페 이거나, 테이블 의자 음악까지 그럭저럭 괜찮다 싶으면 커피 맛이 참을 수 없었다. 텁텁 시리고 태운 맛이 나는 커피를 따로 뜨거운 물을 받아 가며 희석해 보는 노력도 해보았는데 소용없었다. 화가 나서 글마저 과격해지는 커피 맛이었다. 그렇게 사는 집에서 밀려내려가다 보니 신림동에 위치한 대학 가까운 이 카페를 알게 되었다.


 


카페 사장은 시간대별로 분위기가 다른 음악을 틀어주었지만 장르는 클래식 하나였다. 점심시간대엔 흥겹게 혈관을 두드려주는 피아노 연주곡이 나왔고 3시가 넘어가면 태양이 힘을 빼듯 음악에서도 힘을 뺏다. 악기도 바뀌었다. 발랄함을 버린 바이올린 연주곡이 흘러나왔는데 주인장이 누군 신지 궁금해질 정도의 물림이 없는 선곡들이었다.


 


카페를 사랑하지만 진한 커피는 넘기지 못하는 그녀였기에 단골의 증명은 묻지 않아도 한 샷의 연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날들도 쓴데 좋아하는 커피까지 쓰게 마시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이처럼 이곳은 그녀에게 나무랄 데 없는 카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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