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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by 시인 화가 김낙필




오늘도 말 한마디를 안 했다

어제도 말을 한마디도 못 했다

그냥 묵묵히 티브이만 보다가

답답해서 폭염 속으로 나섰다


도서관에서 말없이 책만 읽었다

오늘은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를

어제는 김훈의 "허송세월"을 완독 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말을 할 데가 없다

말을 잃어버릴까 겁이 난다

한 때는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말하는데 지치기도 했었지만

이제 그 시절이 그립다

수강생들과 함께 있고 싶다


내일도 할 말이 없겠다

결국 도서관에서 책이나 보게 될 테니까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못 하는 사물들과 노는 시간이 늘어난다

꽃과도 얘기하고

돌과도 청둥오리와도 구름과도 바람과도 얘기해 봐야겠다


그래야 말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옛날 영화 벙어리 삼룡이가 떠오른다

주인공이 김진규라는 배우였는데

주인 아가씨는 최은희 씨였다

대동아 전쟁 직후 영화였던가


이처럼 허송세월은 살 같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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