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사이

by 시인 화가 김낙필


가을이 무슨 소용이냐

년 내내 겨울인데

겨울이나 빨리 와라

삿포로 눈구경이나 가야겠다


가을엔 커피가 맛나다

색깔도 비슷하고 낙엽 태우는 냄새 닮아 좋다

가을엔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서 덜 외롭다

나는 진즉 헤어졌으니까

봄은 그래서 싫다

다시 만나는 사람들이 늘 테니까


가을이란다

풀벌레들이 울고 철새들이 날아온다

나는 땅만 보고 걷는다

하늘이 너무 푸르고 맑아서 보기 싫다

술 사 먹게 떨군 금가락지라도 주으면 좋고

그래서 고개가 아프다


백석의 겨울이나 동주의 겨울이나 생자 시인의 겨울이나 다를 게 없다

내 겨울도 마찬가지다

북간도의 설국이나 홋카이도의 겨울이나 어디든 똥강아지 날뛰듯 눈부셔서 좋다

이번 겨울에는 흰 수염계곡이나 달항아리 계곡으로 숨어들어 동지섣달을 날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일찍 겨울로 떠날 것이다

그렇게 흔적도 없는 눈사람이 될 것이다

그럼 그대도 눈꽃으로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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