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그 섬 11

by 시인 화가 김낙필





"광저우"에서 트랜짓한 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 23시 45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10분쯤 연착했다
한산한 검색대를 통과하고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긴장이 풀려 온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가는 듯했다
꿈같던 여정 8박 9일이 마치 1년쯤 지난 듯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츠코의 나고야행 탑승 예약시간은 내일 12시 30분이라고 했다
다음날 공항으로 움직이기 편리한 곳으로 이동 해야헸다

적합한 곳을 물색하다가 영등포 근방에서 에서 일박하기로 했다
자정이 막 지난 심야라서 택시로 이동했다
그녀가 귀국할 때면 가끔 이용한다는
롯데백화점 건너편 자그마한 호텔 <INN>에 여장을 풀었다
바로 30여 미터 인근에 공항 가는 리무진 정류장이 있어서 공항으로 이동하기가 수월하고 편하다고 했다
짐을 들여놓고 속이 헛헛했는지 그녀가 이별주를 해야 한다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근처에 먹자골목이 있어서 허름한 포장마차를 찾아 들어갔다
자정이 훨씬 지났는데도 밤손님이 두세 팀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미 많이 마셨는지 그들의 말투는 이미 술에 젖어 어눌하고 한 박자 느린

어쩐지 애환 같은 짠함이 서려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레 구석편으로 자리를 잡고 어묵 가락국수와 고사리 감투가 섞인 순대 한 접시를 시켰다
소주는 순도 높은 빨간딱지를 시켰다
어묵 가락국수는 꽃게를 넣어 밤새 끓여서 국물이 찐하고 깊었다
우선 뜨거운 가락국수로 허기진 속을 풀었다
소주잔을 두 손으로 받치며 공손히 따라주는 그녀의 술잔을 감사히 받았다
나도 정중히 두 손으로 그녀의 잔을 채웠다

헤어지는 시각이 오니 원래 여행 전의 모습과 태도로 돌아가는 듯싶어서 괜히 어색해졌다
그녀가 물기 어린 눈으로 자기 잔을 쳐다보며 공허하게 말을 이어갔다
왜 나를 쳐다보지 못하는지 그 의미는 알 수가 없었다
"샘ᆢ고마웠어요"
"저를 위해 기꺼이 동행해 주신 것도 고맙고 저를 믿어주신 것도 고맙고
저를 안아주신 것도 고마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젖은 듯 잠시 흔들리고 있었다
"저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오늘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감사했습니다ᆢ"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라 답변할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이 여자를 어떻게 슬프지 않게 떠나보내야 할 수 있을까 순간 막막했다
웃을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
사람이니까 지우려 해도 기억나겠지
운명처럼 다가와 운명처럼 헤어지는 일이 힘든다는 것을
우리 가슴은 알고 있겠지
감출 수 없는 애욕의 끝이 이리 허무하고 애절하다는 것을
"아치코ᆢ잊지말고 연락해요"
"서로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위로가 될 말을 기어이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술잔에 눈물을 떨구고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차마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가슴이 저리고 아렸다
우리는 그동안의 여정 속에서 기억나는 풍경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못 먹는 술을 애쓰며 각 일병 씩을 했다
그녀는 양이 좀 모자라는 듯도 했지만 내가 취한 듯싶자 자신이 애써 자제하는 듯했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누가 먼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욕실 부스에서 함께 샤워를 했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나의 몸 구석구석을 비누 거품을 내어 정성스럽게 씻어 주었다
지나온 시간들이 어쩌면 이 비누 거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서로의 뜨거운 몸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나는 가슴에 묻은 그녀의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느끼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게 그녀의 머리를 꼭 감싸 안았다
이렇게 섧게 우는 그녀의 심경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는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가슴에서 그녀의 얼굴을 꺼내 들고 젖은 눈을 바라봤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도리질을 치며 다시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정들어 헤어지는 일은 이처럼 힘들고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잠을 설친 늦은 아침 창밖으로는 속절없이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갈 길은 먼데 사공 없는 거룻배 같은 인생들이여
우리는 떠돌고 떠돌다 어느 포구에 닻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린 말없는 뱃사공처럼 하염없이 짐을 만지고 또 만지며 짐을 꾸렸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편의점에서 비닐우산 두 개를 샀다
그녀는 캐리어를 양손으로 끌자니 우산을 쓸 수 없었다
내가 왼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머리 위에 우산을 받치며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짐 때문에 우산 하나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그녀가 말했다
"샘ᆢ이제 우리 여기서 헤어져요"
"나는 잠시 후 도착하는 공항버스 탈게요"
"왜요? 버스 타는 거 보고 갈게요"
"아녜요ᆢ 오히려 그러는 게 더 힘들 것 같아요"
"떠나는 모습 보이기 싫어서 그래요"
그녀의 얼굴이 울컥 울렁이는 듯했다
그래 그게 편하다면 들어주자ᆢ
"알았어요 그래요 조심히 잘 가요ᆢ보이스 톡 해요"
나는 애써 돌아섰다
비 오는 영등포 역사 쪽이 안개 낀 듯 뿌옇게 풍견이 흐려졌다
터벅터벅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줄 알면서도 절대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갔다
돌아보면 발이 장승처럼 땅에 얼어붙을 것 같았다
전동차 안에서 어두운 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아닌 타인처럼 생소하고 낯설어 보였다
내가 여태까지 무슨 짓을 한거지...
비 오던 영등포에서 그렇게 쓸쓸히 헤어진 후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그녀에게서는 톡이나 전언이 오지 않았다
자존감이 강한 독한 사람이었다
"성ᆢ연수".....




내가 사는 일에 이유가 없어진지는 오래됐다
성공이랄 것도 없는 세월 뒤엔 회한이 쓸쓸히 자리 잡고
떨어진 동백 꽃잎이나 그러모아
아이처럼 꽃집을 지을 나이라니 무슨 할 말이 남았겠는가
한 서린 마차가 덜컹거리며 길 떠나는 동구밖에는 복숭아꽃 피고
누군가 "봄이에요" 하는 속삭임에 뒤돌아보니
아지랑이가 살랑살랑 걸어오네
내가 이쯤 살아낸 것도 축복이려니
이젠 잊어가는 일이 내 소임이려니 한다



머리맡 창가로 비가 내립니다

가을비는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잔망스럽기도 하지만

왠지 슬픕니다

가만히 창문을 열어봅니다

스산한 비의 잔해들이 침대 맡으로 스며듭니다

빗소리 쪽으로 귀를 가만히 기울입니다

잔잔한 비의 숨소리를 느낍니다

견고 했던 생의 아픔

정녕 이 밤 마지막 잎새로 떨궈야 하는지

빗소리가 처연합니다

어떤 生이든 그리워하라

어느 님의 일갈처럼

파랑을 넘어오는 바다새처럼 처절했다고

젖은 바람결 하나 어두운 창가에 두고 나는 젖어듭니다

가을비 오는 밤엔

창문을 열어두고 빗소리의 신음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홀로 자멸합니다


사람은 늘 외로운 존재니까
외로워하지
허기지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강가로 나가 함께 흘러간다
흐르다 어느 포구에 닿으면
그곳에 닻을 내리고‥
다 지나가는 거니까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니까
사랑하는 계절엔 눈도 오고 비도 오고 천둥도 치는 거니까
그렇게 잊혀져가는 거니까
나도 아프도록 흘러가서
슬픈 강이 되련다
안개 낀 새벽에 목놓아 울던
양수리 강가에서
젊음을 소진하던 한 시절이
그렇게 흘러가서 어느 포구에
닻을 내렸을까
강은 말이 없는데
강물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독주에 취해 신음하던
강의 노래는 아직도 귓전을 때리는데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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