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꼬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 (카리브 Oil on canvas 20F)
이제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다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 타러 공항으로 간다
이제 우린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므로 각자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맹그로브 원숭이와 물 독수리의 놀이터를 뒤로하고 나는 서울 집으로, 그녀는 나고야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붉은 노을과 일출과 여러 날 한낮의 더위는 그녀와 함께여서 야자수처럼 시원했고
나를 충분히 행복하게 했다
이름 없는 해변의 나른한 오후는 망고처럼 달콤했고
산을 오르내리고 거리를 활보하고 우리를 데려간 도시는 늘 활기에 차 있었다
비행기로 날아다니는 일정은 틈새 없이 빡빡했지만
8박 9일 계획한 일정들을 모두 즐거워서 아프지 않게 소화했다
극기훈련 같은 강행군이었지만 꿈같은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양 날개 엔진 소리를 들으며 우린 서로의 머리를 기대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깨어나면 내가 있던 그 자리가 나를 마중 나와 있을 것이고
그녀와는 기약 없이 헤어릴 것이다
예전에는 늘 떠나기를 갈망해서 빈자리는 자꾸 늘어나고
비우다 비우다 한 톨도 없이 사라지면 그것이 내 生의 마지막 이려니 했었다
돌아온 내 방은
적막한 바람 냄새뿐이지만 나 '정시완'은 행복했다
그녀의 이름은 '성연수'.. 그 '아츠코'도 행복했었으면 좋겠다
둘은 깊고 먼 꿈에서 깨어난다
룸 뒤창 밖으로 망고나무를 처음 봤다
호텔 뒤편에는 커다란 그린 망고나무가 서 있었다
녹색 열매가 주렁주렁 물결치듯 달려있다
지금이 제철인데 노란 빛깔이 아니고 초록이다
그린 망고는 처음 본다
그늘 아래 원숭이 한 마리가 망중한을 즐기며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랫동안 창가에 기대어 망고 향기에 취해서 원숭이를 바라봤다
망고나무가 작은 게 아녔네ᆢ두물머리 당산나무처럼 커 보였다
어제는 야시장에서 두리안과 애플망고를 실컷 사 먹었다
두리안도 잘 익은 것은 냄새가 별로 안 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내일은 귀국하는 날 쿠알라룸푸르로 다시 U턴하여 창이공항을 경유하여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망고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린 정원을 바라봅니다
여기는 여행지의 낯선 곳
오후의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마치 마네 모네의 정원처럼 풍경이 호사스러워 마음이 즐겁습니다
망고의 향기는 여름 닮아서 달콤합니다
여기는 남지나해 어느 해변가 마을 리조트 입니다
마법에 걸린 오후처럼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야자수 나무 아래 누워 저무는 하루와 밀려오는
잔물결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마치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기분입니다
그 푸른 망고를 동네 시장에서 사 왔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한입 베어 물자 풍경이 떠 오릅니다
망고의 향기에 눈을 감고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여정의 막바지 종점이 가까워 간다
여행 5일 차 되던 날 센토사섬 케이블카 안에서 아츠코가 속마음을 말해서 알게 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실 우리가 함께하던 강릉에서
그녀는 동해로 갈 예정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다고 했다
나와 함께 더 같이 있고 싶어서 붙잡아주길 은근히 바랬었다고
인천 공항에서부터 강릉이나 동해로 갈 예정도 아니었고 동대문에 예약되어 있는 도요코 인 서울 호텔에 여장을 풀려고 했었는데
나를 만난 후 갑자기 나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 예정에도 없던 동해로 가야 한다고 둘러댔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동해시에 사는 언니네 방문도 전혀 예정되어 있질 않았다고 했다
함께 더 있고 싶었는데 내가 마치 동해로 등 떠밀듯 떠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해행 버스를 탈수밖에 없었다고
그런 내가 원망스럽고 많이 섭섭했었다고 말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동해로 떠내 보낸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나는 뒤늦은 후회 같은 것을 했다
그 마음을 몰라준 내가 바보 멍청이라고 얼마나 원망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끝은 아니었다
시작일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를 그리워하는 일은 꿈길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없이 혼자 울더라도...
나를 밟고 지나가던 나를 품고 지나가던
나를 지나간 사람들은 내겐 은혜로운 사람들이다
세상천지 철부지인 나를 만나준 그들이 부처가 아니고 누구인가
나뭇가지에 바람 불고 폭우가 지나간다
나는 누워서 바람같이 흔들린다
나를 지나서 어딘가에 머무는 사람아 부디 안녕하시라
오늘도 방파제 끝을 때리는 파도는 시퍼렇게 멍들어 울고
난리다
우리가 스친 모든 인연을 사랑하라
나를 밟든, 안 든, 밀치든 코뚜레를 꿰어 끌고 다니고
귓바퀴를 뚫어 귀고리를 걸어준
나를 지나간 사람 모두를 사랑한다
내 가슴 한복판 과녁으로 뛰어든 화살을 사랑하듯 말이다
나는 그대들이 있음으로 존재했다
나를 죽인 사람까지도 귀한 인연인 것이다
삶의 비애 끝으로 오는 것 그건 추락의 저 밑 죽음이다
초겨울 추위 속으로 뜻 모를 매캐한 상처 냄새가 난다
마치 눈물 속에 유영하던 최루탄 냄새와도 흡사하다
한 여름 그 가운데
화살처럼 꽂히는 불볕 속에서 목 잠긴 쉰 소리로
세상을 바로 세우고 싶어 했던 '젊음'
지금 그건 두고 온 시간의 노을빛 강가에
혼자 외로이 서있다
그렇게 청춘을 아프게 소모하던 슬픈 시대는
그날 버려진 눈빛들과 상처들로
떠도는 영혼들의 슬픈 시간으로만 남겨져 있다
오늘 우리가 사는 가난한 이 자리가
덧없이 져버린 그 시절의 꽃잎들로
덧나고 딱정이가 되어 떨어져 빨갛게 돋아난 새살 위에서
아리한 통증으로 살아 있건만
<단테>의 아름다운 시성으로 우리는 진정
<신생> 속의 애절한 <베아트리체> 였는가
그러나 그곳 캠퍼스 어린 은행나무는
눈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 않은가
한 세월이 그렇게 지나고 소낙비처럼 쓸고 간 자리엔
새로운 거름이 잎을 피우고
이젠 메마르고 비 폐해진 우리는 낙엽 같은 모습으로
그 기억들이 떠나는 길목에 서서 힘없이
그날들을 쳐다보고 있다
우리 젊은 날 들은 정녕 義(의)로 웠는가
이렇게 덧 없이
흘러가고 마는 젊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