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살고 싶으면 참아 2
정일은 알아볼 것이 있다고 나가며 참이에게는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고 일렀다.
“나가기만 하면 일이 생기니 오늘부터 수련에만 힘쓰고 한동안은 집에 있어. 알았지?”
참이가 얌전히 대답했다.
“넵! 걱정 말고 갔다 와, 아빠.”
나가면서도 해맑게 웃는 딸이 못 미더워 정일은 자꾸 돌아봤다.
“우와, 해방이다.”
참이는 정일이 나가자마자 기지개를 켜고는 카운터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엄마의 몫까지 하는 정일의 잔소리는 만만치 않았다.
“팔이 너무 내려왔다, 발을 너무 넓게 벌렸다, 손가락 끝까지 힘을 줘라, 시선은 정면을, 허리는 세우고! 우와 하루 만에 나 다 외웠어. 진짜 아빠 잔소리는!”
오늘도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백범에게 검술 훈련을 받는데 나중엔 머리가 더 아팠다.
“차라리 삼촌이랑 둘이 배우는 게 나을지도. 아니다, 아빠 없음 맞을지도.”
참이는 말은 별로 없지만 날카로운 백범의 시선을 생각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검술 수업은 힘들지만 재미있었다.
“나 무술인이 체질이었나 봐. 재미나네.”
참이는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쬐며 아침에 배웠던 동작들을 다시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때 다점 안으로 두 남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손님인 줄 알고 참이가 인사하며 맞았더니, 두 사람 중 키가 더 작고 나이가 더 먹은 남자가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며 인사했다.
“안녕, 학생. 우리는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인데 뭣 좀 물어보려고.”
참이는 그들을 테이블로 안내하고 자신도 앉았다.
“네, 물어보세요. 무슨 일인데요?”
키 큰 형사가 비닐 백에서 종이봉투를 하나 꺼내었다. 그 물건을 본 참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건 저희 다점 봉투인데요. 어디서 나셨어요?”
참이가 바로 알아보자 두 형사가 반가워하며 물었다.
“이거 누가 언제 사간건지 알 수 있을까?”
참이가 봉투를 열어봐도 되냐고 하자 형사들이 개봉해 주었다. 참이가 차를 집어 향을 맡고 대답했다.
“이거 국화차하고 솔잎차네요. 어제 정 여사님이라고 저희 단골분이 사 가신 거예요. 정 여사님께 무슨 일이 있어요?”
단골손님이 사간 차 봉투를 형사가 들고 온 것이 걱정이 되어 참이가 다급히 물었다. 형사들이 망설이다 이야기해 주었다.
“학생, 아직 정확한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주변에는 이야기하면 안 돼. 이걸 사 가신 분이 집에 오시지를 않았어.”
형사의 말에 놀란 참이가 자신이 정 여사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형사에게 전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멀리서 친구 분들이 댁에 놀러 온다고 맛있는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음식장만 하다 말고 나오신 거라서 빨리 가셔야 한다고 했는데.”
형사들이 참이의 말에 확신이 생겼다며 반가워했다.
“그래? 바로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단 말이지? 안 형사님 말씀이 맞네요. 여기서 집에 가는 길 어딘가에서 행방불명된 거네요.”
키 큰 형사의 말에 다른 형사가 참이에게 몇 가지를 더 물었다.
“학생, 그분이 가는 길에 누구를 만난다거나 어디를 들렀다 간다는 말은 없었어?”
참이가 아니라고 확실히 대답했다.
“아니에요. 친구들 줄 음식을 덜 했다고 바로 가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집에 안 가신 거예요?”
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이야기도 전해 주었다.
“이건 사실 말하면 안 되는데 학생이 너무 예쁘게 생겨서 위험할까 봐해 주는 말이야.”
“뭔데요?”
“이 근처에서 자꾸 실종 신고가 들어오고 있어. 어제 그분도 있고 다른 여자들도 몇 명 있어. 그러니 가능하면 밖에 늦게까지 있지 마. 협조 고맙고 혹시 다른 거 생각나면 경찰서로 연락 주고.”
일어나는 형사들에게 참이가 간곡히 부탁했다.
“정 여사님 소식 알게 되시면 꼭 좀 알려주세요. 수고하세요.”
형사들도 알았다고 대답하고 다점을 나갔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에 참이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위층에서 백범이 내려왔다
코앞까지 와도 자신이 온 줄 모르는 참이를 보고 백범이 물었다.
“하룻강아지, 왜 넋을 놓고 있냐?”
참이가 놀라 정신을 차렸다.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이상한 일이 있어서요.”
“이상한 일?”
“네, 어제 단골손님이 차를 사가지고 갔는데 그 손님이 행방불명 됐다고 형사들이 왔다 갔어요.”
“사라졌다고?”
“그렇대요. 거기다 이 근처에서 다른 사람들도 사라지는 사건들이 자꾸 일어난 데요. 이상하죠?”
참이의 이야기를 들은 백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참이의 물음도 못 듣고 창가로 향했다. 밖을 유심히 바라보던 백범이 손짓으로 참이를 불렀다.
“짐 싸라.”
앞뒤 없는 백범의 말에 따지려던 참이는 그의 표정이 심각한 것을 보고 질문을 바꿨다.
“뭘 쌀까요?”
“가능한 간단히.”
참이는 카운터에서 현금과 카드를 챙기고 서둘러 위로 올라가 엄마의 유품과 앨범 한 권을 챙겼다. 그리고 핸드폰. 다 챙긴 참이가 내려와 백범을 불렀다.
“다 챙겼어~읍!”
갑자기 참이의 입을 막은 백범이 조용히 하라고 손짓으로 표시했다. 놀란 참이가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백범이 앞장서 다점 밖으로 나가려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백범이 참이를 자신의 등 뒤로 보내고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소리 내지 말고 위를 봐라.”
백범이 속삭이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드는 참이의 눈에 자신과 백범을 덮어 오는 검은 그림자가 느껴졌다.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절로 고개가 올라갔다.
“꺄악!”
백범에게 경고를 받았는데도 참이의 입에선 절로 비명이 나왔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무서운 와중에도 무언가 어색한 그 모습에 참이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가들을 낳고 싶어. 너를 먹으면 낳을 수 있을 거야.”
여자는 쇠를 긁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참이가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아주 내가 만능 영양제라도 되는 줄 아나 보네. 미치겠다, 진짜!”
“아가들을 낳고 싶어. 먹이가 필요해.”
참이는 여자의 모습이 왜 어색한지 알게 되었다. 여자의 머리가 몸과는 반대로 붙어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백범이 단도에 자신의 피를 한 방울 묻히자 다시 검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검에서 나오는 소리에 반응하는 것처럼 여자의 몸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여자의 몸이 부풀고 등에서 다리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천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크기의 몸체에 검은 바탕에 붉은 반점이 있는 커다란 거미가 되었다.
“으아 저건 또 뭐예요?”
부들부들 떨며 참이가 묻자 백범의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거미잖냐.”
“알지만 뭐가 저리 크냐고요! 또 나를 먹겠다는 건가요?”
“그렇겠지. 눈치는 조금 늘었구나.”
“나 저거 진짜 진짜 싫어요.”
여자라면 북슬거리는 털에 많은 다리를 가진 존재들을 좋아하기는 본능적으로 힘든 법이다.
참이도 정말 저 거미가 싫었다.
얼굴 양쪽에 있는 세 개의 눈동자에 자신과 백범이 비치는 모습이 정말 괴기스러웠다.
“싫기만 하냐? 너 먹고 싶어서 저리 침까지 흘리는데.”
백범의 말에 참이가 자세히 보니 거미가 입을 벌리고 톱니 같은 이빨을 보이며 침까지 흘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순간에도 그리 비꼬고 싶으세요?”
참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거미가 자신의 몸을 돌려 백범과 참이를 향해 거미줄을 쏘기 시작하였다.
참이와 백범은 정신없이 몸을 날리고 굴리며 거미줄을 피했다.
여전히 날다람쥐처럼 이리저리 잘도 뛰며 피하는 참이를 보며 백범도 한마디 했다.
“그런 너는 이와 중에도 그리 말대답이 하고 싶냐?”
“쾅쾅!”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다 결국이 문이 부서졌다. 정일이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백범님! 참이야!”
일을 보고 돌아오니 다점이 하얗고 뿌연 어떤 물질로 칭칭 감겨 있는 것을 보고 겨우겨우 문을 부수고 들어온 정일은 눈앞의 상황에 기가 막혔다.
정말 유치 찬란 치사빤쮸 초딩들의 말싸움이었다.
“진짜 꼰대처럼 잔소리만 할 줄 알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똥강아지 주제에 누구보고!”
“흥, 나이 많은 거밖에 내세울 게 없어요?”
“뭐라고? 실력이 없으면 말이라도 잘 들어야지!”
“저 야단칠 시간에 저 괴물이나 잡으면 어떠세요, 삼촌?”
“딱 한 입 거리인 주제에 정말 입만 살았구나!”
백범과 참이는 다점 안이 온통 거미줄에 뒤덮이도록 계속되는 거미줄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입으로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난리였다.
정일이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그만! 참아, 지금 뭐 하는 거냐? 백범님, 괜찮으십니까?”
백범과 참이가 동시에 외쳤다.
“정일, 태워!”
“아빠, 라이터!”
묘한 데서 박자가 맞는 두 사람이었다.
참이의 외침에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 정일이 백범에게 던졌고, 참이는 그새 어디서 가져왔는지 냅킨을 백범에게 내밀었다.
백범이 냅킨에 불을 붙였고, 그다음은 대보름 쥐불놀이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나가자!”
백범의 외침에 참이와 정일이 부서진 문을 밀고 밖으로 향했다.
가장 뒤에 남아 둘을 내보낸 백범은 거미줄이 불에 타서 끊어지고 그 불길이 거미의 온몸에 들러붙는 것을 지켜보았다.
“크아악! 꺄악!”
끔찍한 비명이 거미의 입에서 새어 나왔고 거미가 마지막 몸부림으로 백범을 공격하였다.
백범은 검으로 거미의 배를 갈랐다. 그다음엔 머리를 몸체와 분리시켰다.
“한 발도 나갈 수 없다. 여기서 소멸하거라.”
백범의 명에 따라 거미의 몸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타오르는 불길에 거미가 완전히 사라지자 백범이 다점 밖으로 나갔다.
“애애앵~! 삐요삐요!”
소방차가 도착해 다점의 불을 껐다. 완전히 불이 꺼지고 소방대원들이 돌아가자 새벽이 다 되었다.
세 사람이 다점에 들어오니 일층에는 남아 있는 물건이 거의 없었다. 참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빠, 다점이 다 타버렸어. 어떻게 하지?”
정일이 그런 참이의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아. 너랑 백범님께 아무 일도 없었으니 됐어.”
참이가 그런 정일에게 어깨에 맨 배낭을 주며 말했다.
“삼촌이 챙기라고 알려줘서 그래도 몇 가지는 챙겼어. 봐봐. 더 챙겼어야 하는데.”
배낭 속의 물건들을 본 정일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아이고 우리 이쁜 딸이 정말 잘 챙겼네. 엄마 유품을 어찌 이리 잘 챙겼을까.”
“아빠랑 엄마랑 같이 찍은 사진도 챙겼어. 우리한테는 그게 제일 소중하잖아.”
“그렇지. 우리 참이 말이 다 맞다.”
떠나보낸 아내의 유품과 앨범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다급한 순간에도 고이 챙겨 나온 참이가 정말 대견한 정일이었다.
백범이 정일을 불렀다.
“위에 상황을 보고 오지?”
감상에서 벗어난 정일이 앞장을 섰다.
“네. 가 봐야죠.”
가만히 서 있는 참이를 향해 백범이 한 마디 툭 던지자 참이가 재빨리 앞장섰다.
“너 혼자 있다가 뭐가 나올지 모르는데 여기 있을래?”
“아으, 싫어요. 가요!”
‘치이, 암튼 이쁘게도 말해요.’
속으로나마 백범에게 투덜댄 참이가 계단을 올랐다.
이층은 많이 그을려 있고 연기 냄새가 지독하게 났지만 삼층은 조금 나았다. 하지만 당장 지낼 수는 없었다.
“아빠, 어떻게 해?”
참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정일도 바닥에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이다. 에휴!”
그런 정일을 향해 백범이 조그마한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쓰게.”
주머니를 열어본 정일이 놀라 벌떡 일어나 주머니를 백범에게 도로 내밀었다.
“백범님! 이건 안 됩니다.”
무표정 그 자체로 백범이 정일을 바라보자 바로 기가 죽은 정일이 겨우 힘을 모아 백범에게 사정했다.
“이건 귀한 인연으로 얻으신 보물이 아닙니까. 간직하시지요.”
아무런 대답도 남기지 않고 심드렁한 얼굴로 만사 귀찮은 티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백범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더니 아래로 향했다. 아니, 대답은 했다. 하지만 그가 중얼거린 소리가 너무 작아 그 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했을 뿐이었다.
“귀한 인연이 무엇인데? 다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야. 먼지처럼…….”
정일이 그런 백범의 뒤를 따라가며 불렀다.
“백범님!”
하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참이가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정일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게 뭔데? 왜 그리 속상해해?”
정일이 가만히 참이를 바라보다 주머니 속을 보여주었다. 금으로 만든 인장이었다.
“우와 이거 뭐야? 설마 국새 같은 거야?”
“국새 맞아. 그것도 아주 오래된.”
“그럼 보물이네. 어느 나라 건데?”
“고려. 아마 백범님이 왕의 목숨을 구해주고 대신 받으신 걸 거야.”
“우와 진짜 오래된 거네. 그래도 삼촌이 아빠한테 선물로 주신 거니까 기쁘게 받아서 쓰면 안 돼?”
이를 바라보며 정일이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알아. 정말 감사하지. 하지만 아빠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한 것 같아.”
“아빠가 왜?”
“원래는 아빠가 백범님을 보필하고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자꾸 폐만 끼치잖아. 에휴!”
너무 속상해하는 정일을 보며 안타까워진 참이가 정일의 옆에 앉으려는데, 아래층에서 백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내려와 보지!”
정일과 참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네!”
나란히 내려가며 참이는 백범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