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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숙이 4시간전

호미다점虎眉茶店

소설- 살고 싶으면 참아 3



일층에 내려오자 백범이 구석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거미줄이 시작된 것 같아. 이 뒤에는 무엇이 있지?”


“작은 놀이터가 있는 공원이 있습니다.”


정일의 설명에 백범이 참이에게 일렀다.


“지금부터 보게 될 장면이 얼마나 끔찍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더한 일도 겪게 될 터이니 마음 단단히 먹고 따라와라.”


여전히 뚝뚝 거리며 말하는 백범의 말에 참이가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심쩍었던 백범은 한 마디 더 못을 박았다.


“아까처럼 꽥꽥거리면 아예 입마개를 채워 놓을 것이야!”


참이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


“벌레니까 그랬죠. 이젠 안 그럴 거예요. 치이.”


그런 참이를 쓱 지나쳐 백범이 공원으로 향했다. 

정일도 간단히 가방을 챙겨 백범의 뒤를 따랐다. 

정일이 손전등을 비추자 놀이터의 놀이기구들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데요.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새벽 시간의 놀이터는 한적함을 넘어 적막하고 쓸쓸했다. 낮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었기에 더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참이의 말에 백범이 손짓으로 정일에게 한 곳을 가리키며 비춰보라고 했다.


“헉!”


정일과 참이는 눈앞의 광경에 경악했다. 

나오는 비명을 겨우 참아냈다. 

백범이 경고한 이유를 이제는 참이도 알 수 있었다.


하얀 거미줄 뭉치들이 나무 위에 여러 개 붙어있었는데 모두 사람이 들어있었다.


“거미는 먹이를 잡아 거미줄로 묵어 놓고 여러 날에 걸쳐 그 몸속의 진액을 빨아먹는다. 이미 죽은 사람도 있을 수 있어. 조심해라.”


백범이 조용하게 두 사람에게 일렀다. 그 뜻을 파악한 참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죽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거야? 그럼 나도 잡혔으면 저렇게?’


우선 백범이 나무 위로 올라가 거미줄을 끊어 거미줄 뭉치를 내리면 밑에서 정일과 참이가 받아 찢었다. 처음 찢은 뭉치에는 젊은 여자가 누워있었다.


“아빠, 잠든 것 같아.”


참이의 말처럼 하얀 얼굴로 누워 있는 여자는 마치 잠든 것 같았다.

정일이 맥박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목에 손을 대자 그 부분이 유리 깨지듯 부서져 내렸다.


“파삭!”

“아악!”


그 광경에 참이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고 말았다. 

목과 얼굴을 시작으로 여자의 전신이 부서져 먼지처럼 날아갔다. 

백범이 위에서 으르렁 거렸다.


“낑낑 대면 입 막아 놓는다고 했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싶으면 서둘러야 한다.”


참이가 눈물이 가득한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무심한 표정이지만 불타는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백범이 참이를 바라보았다. 

참이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정일이 받아 내려놓은 다음 뭉치를 찢었다.


“찌익. 쭈우욱.”


안에는 젊은 청년이 누워있었다. 참이가 정일이 했던 것처럼 그의 목에 손을 대보자 맥박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생명의 기운을 느끼자 참이의 눈에서 또 눈물이 났다.


“고마워요. 살아줘서.”


쓱 눈물을 닦아낸 참이가 남자를 둘러싼 거미줄을 벗겨 냈다. 

그리곤 다음 뭉치로 향했다. 

찢으려고 하는데 뭉치 자체가 부서져 내렸다. 이미 늦은 것이었다. 이제는 울지 않았다. 참이 바로 다음 뭉치를 찢었다.


‘저렇게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더 빨리 꺼내는 수밖에 없어.’


그 안에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아빠, 정 여사님이야! 살아계셔.”


참이가 부르는 소리에 정일도 백범도 달려왔다. 그나마 정 여사는 잡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사했다. 

참이가 백범에게 물었다.


“아직 많이 남았어요?”


백범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 공원에서는 마지막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감춰뒀을 수도 있는데 그걸 찾기는 힘들 거다.”


정일이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

“거미는 여기저기 거미줄을 쳐 놓고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리거든. 그 거미줄이 다른 곳에 더 있을 수도 있어. 너를 잡으러 와서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으니.”


정일의 말에 참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이 사람들은 나 때문에 잡힌 거네요? 내가 있어서.”


백범이 단검으로 참이의 머리를 툭 치며 한마디 했다.


“헛소리! 거미가 이전에는 굶었을 것 같으냐? 그나마 너에 대한 욕심에 정체를 드러냈으니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백범의 일갈에 참이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정일도 참이의 머리를 쓰담해 주고는 사람들을 챙겼다. 

주저앉아 있던 참이도 일어나며 저 앞에 우뚝 서 있는 백범의 등을 바라보았다.


‘씨이, 지금 나 위로해 준 거임? 그런 거임?’


백범의 존재가 새삼 든든했다.


‘나도 사람들을 구하는 힘을 갖겠어. 이리 뒤에서 질질 짜는 얼간이는 내 캐릭터가 아니니까!’     




새벽 편의점 테이블에 사발면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정일이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참이와 백범을 바라봤다.


“삼촌, 그거 진짜 맛없다고요. 제 말을 좀 들으세요.”


“꼬맹이, 너는 네 거나 골라. 나는 내 맘대로 고를 거야.”


“아니, 태어나서 처음 와 본 거라면서요, 편의점에. 경험자 말을 들어야죠.”


“처음이래도 나한테는 너보다 천배는 나은 직감이 있거든. 난 이거 먹을 거야.”

“아이 진짜, 그거 말고 이거 먹어요. 이게 훨씬 맛있다고요.”


못 마땅하게 둘을 지켜보는 편의점 직원의 시선에 홀로 부끄러웠던 정일이 두 사람에게 소리를 질렀다.


“사발면 다 됐어요! 이제 그만 오세요. 참아!!!!”


자리에 앉은 백범의 손에는 곰돌이 모양 젤리 봉지가, 참이의 손에는 지렁이 모양의 젤리 봉지가 들려 있었다. 

정일이 백범에게 기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백범님, 그런 것도 드십니까?”


무상한 어조로 백범이 대답했다.


“당보충 해야 해서.”


옆에 앉은 참이가 백범의 대답을 듣고 까르르 웃었다.


“후훗, 삼촌 그새 텔레비전 보셨죠? 크크 당보충!”


참이의 격의 없는 말투에 정일이 당황하며 말렸다.


“참이야, 백범님께 그리 버릇없이 굴면 안 된다니까!”


백범은 참이가 사발면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 따라 하며 정일에게 한마디 던졌다.


“그만 먹게. 개 되면 저절로 고쳐질 거니까.”


“아, 네. 어서 드십시오.”


이번엔 참이가 백범에게 물었다.


“개 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처음 들어요.”


백범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답해 주었다.


“강아지가 크면?”


참이가 냉큼 대답했다.


“개가 돼요.”


몇 초간 싸한 느낌이 지나가고 참이의 얼굴이 벌게졌다.


“또 나보고 강아지라고 그런 거예요? 왜 자꾸 그렇게 불러요?”


따지는 참이에게 백범이 아무렇지 않게 또 약을 올렸다.


“머리 나쁜 거로는 새인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새로 불러주랴?”


“새? 웬 새? 어, 새대가리! 으아 진짜 이 삼촌이!”


참이가 거품을 물었으나 백범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사발면에만 집중했다. 

정일도 똑같았다.     


다점으로 돌아가는 길. 정일은 이대로 가도 집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나자 백범에게 물었다.


“백범님, 오랜만에 사우나 갈까요? 지금 집에 가도 씻을 수도 없는데.”


“사우나? 그게 뭔가?”


처음 듣는 단어에 백범이 반문했다.


“아, 공중목욕탕이요. 예전 목욕탕 보다 더 큽니다.”


참이도 반가워하며 가자고 졸랐다.


“가요. 가뜩이나 연기 그을음에 흙투성이인데.”


정일이 백범이 혹할 만한 정보 하나를 더 제공했다.


“커다란 노천탕도 있어 맘에 드실 겁니다.”


어떤 일이나 물건, 사람에 특별한 애착이 전혀 없는 백범이 그나마 좀 여유가 있으면 찾는 것이 목욕이었다.

 오랜만에 큰 탕에서 씻는다는 생각을 하니 백범도 끌렸다.


“가지.”


셋은 나란히 사우나로 향했다.    


 



“푸하하, 삼촌 잘 어울려요.”


참이는 자기가 만들어 씌워준 양머리 수건이 백범에게 딱 맞자 웃음이 절로 났다. 너무 귀엽고 잘 어울렸다. 정일도 웃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거 꼭 써야 하는 거 맞는 거냐? 저기 안 쓴 사람들도 있잖느냐?”


무뚝뚝하게 백범이 따졌다. 자신을 놀리는 느낌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똑같이 쓴 인간들도 많아서 꼭 써야 한다는 참이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였다. 

시치미를 뗀 참이가 자기 머리에도 양머리 수건을 쓰며 잡아 땠다.


“그 사람들은 아까 썼었는데 젖어서 벗은 거고요. 다시 쓸 거예요. 아빠랑 저도 다 썼잖아요.”


백범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수정 가마 안으로 들어가는 정일을 따라갔다. 셋은 목침을 베고 나란히 누웠다. 뜨끈한 바닥에 등을 대니 잠이 절로 왔다. 참이는 바로 잠이 들었다.


“정일, 아이를 잘 키웠구나.”


정일은 백범이 건넨 말에 또 눈물이 흘렀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천방지축이라 죄송합니다.”


다른 말은 더 이상 없었다. 정일과 백범도 잠이 들었다.  

   

백범은 오랜만에 신시로 돌아갔다. 

환웅은 하늘로 돌아갔으나 검은 곰이 웅녀가 되었고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백범이 웅녀를 찾았다.


“잘 있었나?”


누워 있던 웅녀가 힘겹게 눈을 떴다.


“왜 이리 오랜만에 왔어? 보고 싶었는데.”


자상한 성격은 여전했다. 백범의 손을 잡은 웅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백범을 불렀다.


“하얀 호랑이, 마지막으로 보러 와줘서 고마워.”


백범도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거칠고 앙상하고 주름지고 검버섯이 핀 할머니의 손이었다. 백범이 웅녀에게 말했다.


“가지 마.”


웅녀가 주름진 눈으로 미소 지으며 건장하고 아름다운 청년의 손인 백범의 손을 쓰다듬었다.


“안 되는 거 알잖아. 우리 하얀 호랑이를 어쩌누. 심술도 정도 외로움도 많은 이 친구를!”


웅녀의 말에 백범의 눈에도 이슬이 잡혔다. 

세상천지에 백범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유일한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려는 순간이었다. 

웅녀가 힘겹게 팔을 올려 백범을 안아 주었다. 

백범도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안겼다.


“기다리고 있을게. 천천히 와. 고운 사람이랑 살다가. 알았지?”


대답은 못 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백범의 어깨에서 웅녀의 팔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흐흐흑. 흐흑!”     


백범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웅녀가 다시 살아났나 했던 백범은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그의 눈이 떠졌다.


“어, 삼촌 일어났어요? 우리 식혜 먹으러 가요! 시원하게, 네?”


둘러보니 자신만 누워 있고 정일은 어디 갔는지 없었다. 아마 참이가 자신을 깨운 순간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범이 조용히 일어났다.


“가요. 매점에서 파는데 진짜 맛있어요.”


쫑알거리며 앞장서는 참이를 보며 백범은 손을 올려 눈가를 쓸었다. 축축했다. 꿈을 꾼 것이 맞았다. 


‘그럼 내 머리를 쓰다듬은 것이 이 아이? 그것도 꿈이겠지.’


매점을 향하는 참이는 자신의 손가락에 남은 물기를 살짝 옷에 닦았다.

백범의 볼에 흐르던 것이다. 

소리도 없이 서럽게 흐르는 눈물에 자신도 모르게 백범을 달랬다. 

야수들을 잠재우는 저 강한 존재가 흘리는 눈물에 참이는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여깁니다. 이리로 오세요.”


정일이 두 사람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식혜를 백범에게 건네며 정일이 의자를 권했다.


“여기 식혜가 제법 맛이 있습니다. 어서 앉으세요.”


“아빠, 이게 내 거야?”


참이도 자리를 잡고 자신의 몫을 챙겼다.


“아으, 시원해. 맛있다. 역시 땀 흘리고 먹는 식혜가 최고야. 어때요?”


참이가 백범에게 맛을 물었다. 백범이 천천히 대답했다.


“나쁘진 않군. 그런데 정일, 물은 어디 있지?”


“땀을 흘렸으니 이것만 마시고는 탕으로 갈 겁니다. 참아, 시간을 정할까?”


정일이 참이에게 입구에서 만날 시간을 묻자 참이가 고민했다.


“아빠, 조금 느긋하게 해도 돼? 그럼 나 한 시간 반은 걸릴 텐데. 괜찮아?”


백범을 기다리게 하면 눈치가 보이니 고민이 된 것이다. 정일이 전에 백범과 목욕탕에 갔던 일을 떠올려보니 괜찮을 듯싶었다.


“괜찮아. 목욕을 좋아하시거든. 그럼 6시에 입구에서 만나자.”


“오키. 그럼 들어가요.”


백범과 정일은 남탕으로 참이는 여탕으로 향하는 입구 앞에서 손까지 흔들며 헤어졌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에 얼른 옷을 벗은 참이가 탕 안으로 들어섰다. 시선들이 따라왔다.


‘어머 그 아가씨 진짜 미인이네.’

‘그르게. 젊음이 좋구나.’

‘아유, 탱탱하기도 하다.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무슨 소리야, 자기랑 나는 젊을 때도 저 몸매는 아니었어. 호호호.’

‘그른가? 맞다. 크크크. 울 신랑이 나 처음 보고 드럼통이라 했었으니까.’

‘나도. 난 울 엄마가 이쑤시개를 키웠다고 목욕탕에서 볼 때마다 잔소리했었거든.’

‘암튼 저 집 엄마는 딸 데리고 목욕탕 올 맛 좀 나겠네. 딸이 저리 예쁘니.’

‘그르게. 건강해 보이고 늘씬하고, 부럽네. 부러워.’


자신이 아줌마들의 품평회에 올라간지도 모르고 참이는 의자처럼 되어있는 안마탕에서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백범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우 시원타. 이거지. 삭신이 쑤셨는데 너무 좋구나. 아아! 그런데 삼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무슨 꿈을 꾼 거지?’


물속으로 조금씩 몸을 담그며 조금씩 백범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는 참이었다. 

    

“이건 뭔가?”


정일은 백범이 잠든 사이에 엄청나게 좋아진 목욕 문화를 전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 그건요 거기 서 보십시오. 이 줄을 당기면 머리 위에서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정일의 설명에 백범이 줄을 당겼다.


“촤악!”


머리로 쏟아지는 센 물살에 놀랐지만 백범은 이것이 맘에 쏙 들었다. 오래전 산에서 놀 때 맞았던 폭포수 같았다.


“좋군!”


백범의 반응에 정일도 흐뭇했다.


“저는 저쪽에 있는 안마탕에 있을 테니 편하게 하십시오.”


“그러지.”


정일이 가고 백범은 한참을 더 물살을 맞았다. 그 물살에 자꾸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과 감정들이 씻겨 나기를 바랐다.


‘덜 자고 일어난 후유증인가. 왜 자꾸 되지도 않는 생각들이 떠오르는 건지. 필부의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뼈에 새기지 않았느냐, 범아.’


그리 서 있는 백범의 모습에서 살이 저며지는 것 같은 고독을 읽은 사람은 정일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백범의 모습을 보고 괜한 경쟁심에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열받고 있었다.


‘뭐야, 자기가 모델이야? 왜 저렇게 서서 난리야?’

‘남자가 머리는 치렁치렁 길어가지고. 눈썹은 또 왜 저래?’

‘염색인가? 희한하네. 연예인이면 저리 당당히 서서 물 맞는 건가? 자랑질도 아니고.’

‘그 인간 뭐하는지 몰라도 기럭지 하나는 끝내주네.’

‘몸이 좋긴 하네. 그래도 너무 자랑하듯 서 있는 거 아니야.’


백범은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이 자신을 향한 말인 줄 몰랐으나 점점 시끄러워져 아까 정일이 알려준 노천탕으로 나갔다.


“남자들이 말이 많군. 흠, 여기는 다행히 조용하군.”


머리까지 탕 속에 푹 담그자 완전한 정적이 그를 감쌌다. 점차 평안해지는 몸과 마음에 그는 한동안 물에 몸을 맡겼다.


“푸하!”


시원한 공기가 달았다. 백범의 고요한 평화는 어떤 소리로 인해 바로 깨져버렸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흐으응 흐응~ 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흐으응~!”


노랫소리였다. 평화로웠던 정적을 깨는 것이 반갑지 않아 처음엔 인상을 썼던 백범도 점차 노래가 들려오며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요새 창가는 모르지만 목소리가 좋군. 맑고 힘이 있고. 흐으응~!’


느긋이 노래를 즐기는데 정일이 노천탕으로 나왔다.


“어떠십니까? 어? 아이고 저 가시내가 또. 참이야, 시끄럽다.”


정일이 벽 반대편으로 냅다 소리를 지르자 참이의 대답이 들려왔다.


“에이, 아빠는. 알았어.”

“찰방찰방!”


사방이 조용해졌다. 정일이 백범에게 미안해하며 말했다.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시끄러우셨죠?”

“이만 나가지.”


휙 일어나 나가는 백범을 보며 정일은 그리 많이 시끄러웠나 생각하며 따라갔다.


‘듣기 괜찮았는데, 놔두지. 그 사람 참!’


겨우 42년을 산 정일이 4천 년을 산 백범의 속을 어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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