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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숙이 Nov 19. 2024

호미다점虎眉茶店

소설- 살고 싶으면 참아 1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입구를 바라본 참이는 단짝 현이가 보이자 냉큼 달려 나와 손을 내밀었다.


“왔어? 줘!”


뒤따라 주방에서 나오던 정일은 딸의 뻔뻔한 행동에 입이 딱 벌어졌다.


“으이그, 저 저!”


하지만 막상 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보따리를 풀었다.


“내가 너 이럴 줄 알고 준비했지.”


현이가 배낭 안에서 줄줄이 챙겨 온 물건들을 꺼냈다.


“베네치아 곤돌라에서 쓰는 방석, 밀라노에서 산 스카프, 로마에서 산 가죽 팔찌, 스위스 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모형, 영국에서 산 비틀스 CD, 네덜란드 풍차 모형! 어때?”


현이는 이 정도면 아무 말도 못 하겠지 하는 표정으로 참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참이는 금방이라도 현이를 때릴 듯이 째려보며 말했다.


“너어~! 내가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건 왜 안 사 왔어?”


당황한 현이가 재빨리 짱구를 굴렸지만 알 수가 없었다.


“뭔데? 나 다 가지고 왔는데…….”


참이가 대차게 따졌다.


“야, 너 하나밖에 없는 단짝이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재수 옴 붙었으니 바티칸 가서 성수든 부적이든 사 오라고 했어 안 했어?”


현이가 참이를 달래며 못 사온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게 참이야, 바티칸에서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성수를 팔거나 하지는 않더라고. 미사를 보는 곳에 가도 특별한 의식에만 사용한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부적은 당연히 없고.”


참이가 단 칼에 현이의 변명을 잘랐다.


“야, 그럼 성수가 기념품 가게에 진열이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냐? 구해와야지. 아님 최소한 묵주나 십자가 목걸이라도 사 오던지!”


“미안해 참이야. 나는…….”


참이에게 싹싹 비는 현이를 정일이 말리며 참이의 입을 막았다.


“으이그 참아 참아 정참아! 크리스트교 신자도 아닌 주제에 무슨 성수냐! 현이 너도 이렇게 이 녀석 응석을 다 받아주면 어쩌냐?”


참이가 아빠의 손을 피하며 마저 현이에게 질렀다.


“너랑 안 놀아!”

“참아!”

“참아!”


유치 찬란 참이를 향해 현이와 정일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참이는 현이랑 아빠랑 이리 웃고 떠드니 오전에 있었던 일은 다 꿈같았다. 

하지만, 정일의 한마디에 그런 기분은 한 번에 깨졌다.


“참아, 그만하고 올라가서 백범님이나 모시고 오너라. 진지 드시게.”


참이가 기운 없이 대답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네에~!”


그런 참이를 향해 현이가 물었다.


“백범? 참아 그게 누구야?”


참이가 선뜻 대답을 못하고 정일에게 뭐라고 하냐고 눈으로 물었다.


“아 어, 먼 친척분인데 참이에겐 삼촌이 되신단다. 현이도 인사시켜 주마.”


참이도 얼른 정일의 말에 보탰다.


“어어, 나한테 삼촌 되시는 분이야.”


현이는 자신이 모르는 친척도 있었나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현이는 정일과 함께 음식을 차리며 물었다.


“아저씨, 참이 요새도 사고가 나요?”


정일은 참이를 걱정하는 현이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래서 살짝 알려주었다.


“그래, 큰일은 없었지만 자질구레하게 사고가 끊이질 않는구나. 그래서 백범님을 모셔온 거란다. 앞으로 참이를 지켜주실 거란다. 유단자거든.”


현이는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일의 이야기 중 어딘가가 거슬렸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왜 끼니를 굶어요?”


“너 같은 애송이들이나 수시로 배가 고프지. 어른들은 한 끼쯤 건너뛰어도 되거든.”


투닥투닥 거리며 참이와 내려오는 남자를 본 현이는 순간 혈압이 확 올라가는 것 같았다.


‘뭐야? 삼촌이라더니 엄청 젊잖아! 거기다 생긴 건 왜 저래? 저거 실화야? 으아, 가뜩이나 참이가 인기가 많아 신경 쓰이는데 저런 남자가 옆에 붙어 있는다고?’


백범은 잠에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밥 먹으라며 깨우는 참이 때문에 열이 받아 내려오다 정일 옆에 있는 소년 아니 남자를 보곤 절로 눈썹이 올라갔다.


‘저 어린놈은 또 뭐야? 왜 나를 꼴아 봐?’


자신에 대한 적개심을 느낀 백범은 본능적으로 이 어린놈이 맘에 들지 않았다. 

백범의 눈에서 자연스레 기가 실린 눈빛이 나오자 현이는 자신도 모르게 기가 죽어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흠, 그래야지. 어디서 어린놈의 강아지가 이를 들어 내!’


현이는 온몸이 무겁고 무언가에 눌리는 기분이 들고 백범을 보기가 꺼려졌다.

순간 흐르는 어색한 기류에 정일이 조심스레 끼어들려 하는 찰나, 아무것도 모르는 참이의 한 마디로 긴장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빠, 내 국수 어디 있어? 나 곱빼기!”


“하하하, 그래. 여기 있다. 우리 돼지 딸 많이 먹어라~! 백범님도 앉으시고 현이도 어서 먹어라!”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수고했네.”


각각 다른 네 명의 인사가 오고 가고 다들 눈앞의 잔치국수에 집중했다.

정일은 제대로 수면을 못하고 깨어난 백범의 상태가 걱정이 되었다.


“백범님, 입에 맞으십니까? 저녁에는 제대로 진지를 올리겠습니다.”


백범은 그런 정일의 마음을 다 아는지라 간단히 물렸다.


“됐네. 내가 언제 먹을 거에 상관하던가. 신경 쓰지 말게.”


자신의 곱빼기 국수를 거의 다 처리해 가던 참이는 문득 떠오른 메뉴를 정일에게 추천했다.


“아빠, 삼촌이 묵밥 좋아하시지 않았어? 묵밥 먹자!”


참이의 말에 백범은 놀랐고, 정일은 표정이 환해졌다.


“맞다. 백범님이 유일하게 찾아드시던 음식인데. 아이고, 우리 딸 그걸 기억했어?”


정일의 칭찬에 참이가 으스대며 대답했다.


“내가 한 머리 하잖아. 후후. 사실 나도 묵밥 엄청 좋아하고.”


백범은 자신과 있던 지난 시절을 어렸던 참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저 어린것이 그때의 시간을 기억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에 관해서?’


너무 오랜 시간을, 너무 많은 사람을 보내며 살아오다 보니 백범은 지난 일을 일절 돌아보지 않았다. 남겨진 자는 항상 자신이었으므로. 누군가와 지난 추억을 공유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다.


‘훗, 희한하군. 같이 보낸 시간에서 같은 기분을 누군가와 공유하다니. 어린것이 입맛은 늙은이구만.’


세 명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먹고 있던 현이가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해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저 뭐 하나 여쭈어도 돼요?”


정일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저분이랑 아저씨랑 무슨 사이신데 존대를 하세요? 참이가 삼촌이라 부르는 걸 보면 아저씨랑은 사촌 사이인 거 같은데.”


정일은 먹고 있던 국수가 목에 걸려 컥컥거렸다. 생각하지 못했던 구멍이었다.


“컥컥, 아 아니 그게 말이지…….”


백범이 아무렇지 않게 현이에게 답해 주었다.


“실제로 피가 섞인 사이가 아니다. 정 씨 집안이 우리 집안에 은혜를 입은 오랜 인연으로 가까이 지내다 보니 그런 것이지.”


백범이 정일을 향해 부탁했다.


“편하게 대하지. 나도 존대를 하고 싶으나 워낙 오래된 습관이라 바로 되지는 않을 듯하니.”


정일이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어찌 감히! 몇 백 년이나 내려온 가문의 규율입니다. 참이 너도 백범님께 깍듯이 대해야 한다.”


중년의 정일이 젊은 청년에게 극존대를 하는 것이 어색해 물었던 현이는 자신에게 불똥이 튀자 휙 째려보는 참이의 시선에 천장만 바라봤다.


“삼촌이 편하게 대하라고 하시잖아, 아빠. 그리고 밖에 나가 그리 존대를 하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걸.”


정일이 참이에게 뭐라고 하려는데, 백범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정일, 자네는 하던 대로 하게. 그게 편하면. 단 여기 참이는 나와 밖에도 나가야 하니 참이 편한 대로 하게 하지. 나도 사람들의 시선은 불편하니. 잘 먹었네.”


정일이 일어나는 백범을 따라 일어나며 잠시 할 말이 있다 따라 올라갔다. 덩그러니 둘만 남자 현이가 얼른 참이에게 물었다.


“참아, 너 저 아저씨 전에도 만났었어?”

“왜?”


참이는 자기 국수는 홀랑 해치우고 정일이 남긴 국수 그릇을 집어 들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니, 네가 아까 그 아저씨가 묵밥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그럼 어렸을 때도 봤다는 건데 나는 저 아저씨가 기억에 없거든.”


거짓말에 영 서툰 참이가 빨리 대답을 못 하고 버벅거렸다.


“그게 말이지, 엄마가 살아계실 때 우리 집에 잠깐 있었어.”


그러나 현이의 질문은 계속 됐다. 왠지 저 남자가 참이 옆에 있는 것이 싫었다. 그러니 정체를 더 알고 싶었다.


“저 아저씨 도대체 몇 살이야?”


“응? 몇 살이냐면……나도 잘 몰라. 엄청 동안이라는 것 밖에. 저래 보여도 나이 많다고 그랬어, 아빠가.”


의심쩍게 묻는 현이를 입 다물게 하기 위해 참이는 공격에 들어갔다.


“야 오현! 너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 보자. 내 선물 말이야.”


일단 꽂히면 집요한 참이의 성격을 잘 아는 현이는 앞으로 얼마나 시달릴지 모른다는 사실에 등이 서늘했다.


“참이야, 아저씨가 너희 집안은 선도를 닦는 집안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십자가를 안 사 온 거야.”


물론 참이도 믿음이 없는데 십자가가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래도 아쉬웠던 것이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십자가 하나만 있으면 웬만한 괴물은 다 무찌르던데……쩝. 알았어. 그런데 너 학교 안 가?”


참이가 수긍하자 급 안도한 현이는 참이의 말에 시계를 봤다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


“으아, 수강 신청해야 하는데! 나 간다. 아저씨께 인사 전해줘!”

“그래. 잘 가!”


참이는 뛰어가는 현이의 뒷모습을 보며 살짝 부러웠다.


“에이, 나도 작년 사고만 아니면 지금 신나게 놀텐데. 아으 재수생이 웬 말이냐, 정참아!”


놀기 좋아하는 참이는 재수를 하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하며 고3 시절을 보냈었다. 남들은 좋은 대학 가려고 공부하는데 참이는 아니었다.

“내가 댄스 학원도 그만두고 게임 아이디도 다 지우고 고이 모셔 놨던 만화책들도 왜 다 팔았는데! 아으 열받아!”

참이는 일어나 식사한 자리를 치우다 위층을 바라보았다.

‘아빠랑 삼촌은 무슨 이야기를 하시나? 아까 보니 잘 싸우던데. 나도 얼른 배워서 먹이 신세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아, 스무 살이 정말 파란만장하다.’     




“백범님, 따로 필요하시거나 알아보실 일이 있으면 알려주시지요.”


정일은 새로이 전투를 앞두고 있는 백범과 딸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묻고 있었다.


“실전에서야 이제 능력이 없어 큰 힘이 안 될지 모르나 자네에게는 정보가 있잖나. 각 신수 집안의 상황과 후계자들의 면목을 알아오게.”


백범은 애 닳아하는 정일의 마음을 알기에 어려울 수도 있는 임무이나 정일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아마 기존의 상황과는 달라서 의심을 할 수도 있네. 또 저번 세대에서는 여러 문제도 많았으니 협조를 안 해줄 수도 있고. 쉽지 않을 것이야.”


정일은 자신을 걱정해 주는 백범에게 감사하며 바로 알아보겠노라 대답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백범님, 감사합니다.”


“그런 소리 그만하고 나가보게. 저 이화의 딸이 아닌 가 너무 걱정 말고. 그 누구에게도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야. 또 내가 있고!”


걱정으로 속이 타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백범의 농담에 정일의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그렇지요. 이화의 딸이지요. 네, 다녀오겠습니다.”


정일이 방을 나가고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며 백범은 이화가 생전에 정일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여보, 제발 뛰지 마! 위험해!"

“아유, 맨주먹으로 바위도 깨면서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요! 웃어요! 그래야 복이 온다고요!”    

 

“웃게나, 정일!”

백범이 이화의 잔소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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