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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5. 2020

수상한 집 - 광보네

2 - 가 본 놈도 7년, 안 가 본 놈도 7년


‘수상한집’ 전시관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서재:상실의 시대, 광보의 서재’방이 있다. 그곳 맨 안쪽에는 광보 할배가 쓰던 책상이 있고, 그 책상 위에는 광보 할배가 보안대에서 수사받았던 기록과 재판기록이 있고, 재심재판에서 주장했던 기록들이 놓여있다. 그리고 맨 왼쪽에는 그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받았던 편지들이 있다. 편지의 수신인을 보니 그는 제주교도소에서 재판을 받고 광주교도소에 있다가 89년경 전주교도소로 이감되어 91년 출소때 까지 그곳에서 재소자 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전주교도소라면 신영복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수감되었던 곳이라 혹시 신영복 교수님과 함께 생활했었나 하는 궁금증이 동하여 선생님 방으로 들어갔다. 일본 방송에서 ‘엔까’가수들이 나오는 방송을 보고 계시던 중이었다. 


“뭐 보고 계세요?”


“아, 일본 노래 나오는 방송. 나 일본 있을 때 활동했던 가수들이 가끔 나오더라고. 그때 다들 젊었는데 지금은 다들 노인들이 되어버렸어.”


“선생님도 나이 드시니 저 가수들도 나이 드는게 당연하잖아요.”


“늙었어도 아는 가수 나오 때는 반가워. 옛날 생각도 나고.”


텔레비전에서 눈을 못 떼는 할배에게 눈치를 보며 물었다. 


“선생님, 혹시 전주교도소 갔을 때 신영복 교수님하고 함께 계셨어요?”


“아, 신영복 교수, 같이 있었던 건 아니고, 내가 전주교도소 갔을 때는 막 사회로 나갔더라고.”


이분들은 감옥 밖의 세상을 사회라고 한다. 사회시찰, 사회영화, 사회사람........

여하튼 광보 할배는 신영복 교수와 전주교도소에서 엇갈렸다고 한다. 전주교도소로 막 이감을 가니까 신영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광주교도소 있을 때는 보안수가 엄청 많아서 방도 비좁고 대우도 별로 안 좋았어. 그러다가 전주교도소로 이감 오니까 보안수가 12명인가 밖에 안되더라고. 사동 하나를 다 우리(보안수)가 썼는데 방이 막 남으니까 한방에 한명씩 썼지. 광주교도소 있다가 전주교도소 오니까 호텔이더라고.”


전주교도소가 사동 하나를 통째로 비워서 보안수만을 관리한 것은 보안사범을 특별대우했다기 보다는 보안수 관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한 곳으로 모아둔 것이다. 넓은 사동에 보안수 몇 명이 들어가 있으면 비어있는 감방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새로 들어온 재소자가 임시로 머물다가 간다고 했다. 어느 감방으로 가는지 결정되기 전까지 임시로 머물다 가는 곳....뭐 어차피 감옥이야 모두 임시로 머물다 가는 곳이기는 하지만...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는 출역(교도소에서 징역기간 동안 일을 하는 것)으로 인쇄소에 나갔거든. 요즘 같은 인쇄가 아니라 옛날 구식방식이라. 활자로 된 금속 글자 하나하나 찾아서 맞추는 거야. 주로 관보나 공보기관지 뭐 이런거 만들었지. 그래서 사회 인쇄소 마냥 바쁘지는 않았어. 일 있을 때만 좀 바쁘고 한가하지. 그러다가 전주교도소로 이감오고 나니까 거기 전주교도소에서 원래 인쇄하던 사람들이 있잖아. 광주교도소에서 10여명 갔는데 그 중에 인쇄소 사람이 3명이었다고. 그러니 다 인쇄소에 들어갈 수 없잖아. 그래서 다른데 어디가고 싶으냐고 해서 세탁에 들어가겠다고 했지. 안에 세탁은 사회 세탁이랑은 완전히 달라. 뭐 빨래가 막 들어오고 이런게 아니라. 형기를 다 채우고 가거나 사람이 비워지면 그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이나 이불 같은걸 세탁하는 거지. 빨래하는 것은 그것뿐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법무부 같은데서 비품이 나오면 그걸 교도소마다 다 나눠주거든. 옷이든, 수건이든, 비누든 막 나눠주는데 특별한 건 그때가 되면 우리가 여옥사를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여옥사도 비품이 필요하니까 우리가 들고 들어가거든. 그럼 여옥사에서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나는 거야. 남자들 왔다고 막 소리 지르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지. 아 우리 입장에서도 좋지. 그래도 대화는 일절 금지. 말을 하거나 하면 징벌을 받아야 해. 그러니 조심해야지. 또 겨울에는 우리 세탁들이 따뜻한 물을 나눠줘. 고무로 된 주머니가 있는데 거기에 물을 가득 채워서 방마다 주면 난방 안 되는 겨울에 홑이불 하나에 의지해서 자는 재소자들에게는 발아래로는 따뜻한 아랫목 같단 말이지. 발만 따뜻해도 온몸이 따뜻한 것 같아서 엄동설한 얼음장 같은 감방에서도 잠이 오더라고. 아침에는 그 물이 식지 않아서 세수를 하거나 샤워를 하기도 해.”


광보 할배가 세탁 일을 하고 얼마 안 되서 신입 재소자가 들어왔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보안간수에게 물어보니 거물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거물이라면 사회에서 꽤나 시끌벅적한 사건을 저지르고 들어온 재소자라는 말이다. 그게 누구냐고 물으니 간수 하는 말이 ‘당신처럼 북한에 다녀온 사람’하더라는 것이다.

보안사범이 한명 들어 오나보다 했단다. 그 사람이 바로 문익환 목사였다.


“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 그 사람 임수경이하고 같이 북한에 다녀온 사람이잖아. 세상이 시끄러웠는데 모를 리가 있나. 물품 지급하려고 가보니 웬 머리가 하얀 남자가 웃통을 모두 벗고는 작은 방에서 막 왔다 갔다 하면서 땀을 뻘뻘흘리며 운동하고 있더라고. 그게 문익환 목사야. 근데 참 이상하잖아. 일부러 북한에 갔다가 김일성을 두 번이나 만나고 온갖 북한행사와 기념관을 둘러보고는 휴전선 넘어서 당당히 걸어온 문익환 목사도 징역 7년, 북한 근처도 안 가 보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나도 징역 7년 이거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가본 놈도 7년, 가보지 못한 놈도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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