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 아무도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당신만은 읽었으면 좋겠어. 책장 구석 아무리 깊이 숨겨져 있어도, 당신만은 찾아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어. 내 삶의 온통이었다가 우리를 팽개친 당신이, 이제는 기억에서라도 우리의 가족이면 좋겠어. 그래서 당신과 나의 아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는 지금, 당신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당신도 알았으면 좋겠어. 비록 우리의 사랑이 현재진행형은 아니지만 이어달리기를 하는 당신과 나의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의 아이들과 아이들이 끊임없이 이어달리기를 할 테니 우리의 인연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거야. 그러니 당신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기억해 주기를 바라. 당신은 그거라도 하면 되는 거야.”
삶이 꿈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존재가 참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사는 게 고통스러울 때에는 경험하지도 못한 에덴동산을 그리워하고 태초의 아담과 하와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인간이라는 공통된 이름으로 같은 하늘, 같은 땅 위에서 사는데 무엇이 인간을 이처럼 여러 종류로 분류해 놓았는지 못마땅할 때가 많았다. 약육강식으로 차별화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속이고, 빼앗고, 짓밟아야 생존하는 먹이사슬이 통용되는 세상은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세상은 외롭다. 초라한 몰골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더욱 외롭다. 그럴 때면 빛을 따라 걷는다. 거기에는 위로가 있고, 치유가 있고, 희망이 있다. 거기에는 생기를 채우는 에너지, 고통을 벗어날 비상구가 있다.
들추고 싶지 않은 내면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은 오장육부를 열어 보이는 것과 같다. 벌거숭이가 되는 것을 각오하는 것이고, 도마 위에 올라가 눕는 생선을 자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보내는 것은, 소명에 대한 사명이다.
누군가 나의 고난을 위안 삼아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나의 외로움을 위안 삼아 홀로서기를 굳건히 하고, 그것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특별히 아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지면을 통한 엄마의 고백으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지 기억하기를 바란다. 출간의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