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고마운 어머니가
밑동만한 아이와 손을 꼭 잡고
따스한 흙길을 지나고 있다.
사랑스런 아이가
민들레 한 송이 손에 들고
백화처럼 웃으며 어머니를 본다.
세월의 무게에 등이 눌린 노인 몇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고 있다
그곳에는 지금도 모든 게 그대로다
- 2011년 作
15세 최상의 레시피
먼저 가지고 있는 재료를 모으세요.
요리를 못해도 괜찮습니다.
따라만 하면 최고의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냄비에 재료를 넣고 요리책(성경)을 가져오세요.
국자(생각)로 휘휘 젓습니다(실천)
아무리 국자가 좋아도 하라는 대로 하지 않거나
젓는 게 귀찮아 대충 저으면 안 됩니다
이제 불을 켜세요(의욕과 열정)
양념(깨달음)을 한 후 정성껏 요리를 합니다(성품)
최고의 요리가 될 것이라고 믿으세요(자신감)
최선을 다했으면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요리를 다시 해주실 주방장이 계시니까요
요리가 끝났습니다.
소홀히 한 것은 없나요?
허가받지 않은 재료(성경에 없는 것들)를 썼나요?
그렇지 않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손님의 입맛을 모두 맞출 수는 없어도
주방장은 당신을 최고의 레스토랑(천국)으로 옮길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맛있고 향기로운 음식을 만드는 비법이었습니다.
- 2011. 2. 28. 02:38 (캐나다 시간)
옥토
한 줌의 흙에서 피어
거리를 휘저을 불빛 아래
홀로 선 나무가 되고 싶다
벽을 사이에 두고
틈을 다투는 작은 풀들과
떠날데 없는 어린 새들을
쉬게 할 나무가 되리라
궂은비를 견디어 가며
옥토 위에 뿌리 내리고
회색의 낡은 벽 너머
손 끝 가지를 내밀어 잡는
화해의 악수
- 2013년 作
떨림의 기도
태초의 영을 부으셔서 맑은 시를 쓰게 하소서
간절한 떨림으로 소망의 시를 쓰게 하소서
부끄럼 없는 시를 쓰도록 정의와 공의로 채우시고
영광의 시를 쓰도록 전신갑주를 입히소서.
구름기둥 불기둥 저에게도 주셔서
강하고 담대하게 승리하게 하소서
- 2014년 作
십자가
가장 아프고 뜨거운 것으로
생명을 버리고 생명을 틔운
그날의 고통과 뜨거움을 잰다
우리를 저울질 하는 것 무엇인가
너와 나를 갈라놓는 것 무엇인가
십자가라서 붉은지
붉어서 십자가인지
말해주는 이 없어 언덕을 오른다
- 2015년 作
이브의 뜰
창 밖 여인의 손짓
석류 같은 홍조로 미소 짓거든
그대여 들판에 숨어라
하늘 길 오르는 제단
어여쁜 그림자 따라오거든
그대여 고개를 저어라
무지개 폭포 아래
꽃물 건네는 여인 있거든
그대여 흰옷을 입어라
죽은 이브의 뜰에서는
그대여 먹지도 눕지도 말아라
- 2017년 作
고백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신은 비를 내린다.
견딜 만큼의 고난, 견딜 만큼의 슬픔
견딜 만큼의 유혹, 견딜 만금의 혼란
일용할 양식과 그것을 넘어선 욕심과
견디지 못할 행복감은 유지불가다
변화는 곧 신이며 신은 유일하다
흐르지만 결코 모이지 않는
스스로 존재하는 물이다
수면 위에 계시고 시온에 계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외면하는 것은 정신적 빈사상태
승리감과 자아도취와 비너스적인 것
거짓명제와 정언명령
보지 않고도 믿느냐 아멘.
교회를 허물고 성전을 짓는 어리석음
향유와 백합은 가장 먼저 사라지는데
보지 않고도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견딜 만큼의 불신과 동시에
견딜 만큼의 믿음도 너에게 있음을 믿느냐 아멘.
- 2018년 作
동행
시체들이 방문을 두드린다. 열어주지 않아도 열릴 것이 분명하다. 문을 열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비극을 즐기는 고객들이 낯설다. 치사량의 독극물을 앞에 둔 자의 심정을 아는가.
저항의 춤, 낡은 볼셰비키의 추억, 붉은 군대의 행진곡을 본 적이 있는가. 상품화된 소비에트의 동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는가. 외면했는가. 마르크스, 막스 베버, 체 게바라, 헤르만헤세, 데미안, 라이너 마리아 릴케, 윤동주, 그리고 그리스도예수. 겟세마네의 아침은 그렇게 또 밝아오는데 너는 골방에서 필사에 여념이 없다
감람나무 끝에 비둘기 한 마리 가지를 의지한 채 영원을 약속한다.
- 2019년 作
콜키지 프리
제철이 지난 방어를 녹슨 방식으로 먹는다. 40분 남짓의 지루함을 지불하고 나온 방어 한 접시, 귀가조치 된 활어들은 바다를 그리워할까? 아가미가 달려 활어라고 불리는 녀석은, 기름지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상태로 한 끼 식사가 되어 우리의 눈앞에 있다. 녀석은 오늘을 모른 채 바다를 헤엄쳤을 것이다.
모든 게 제멋대로다. 제철에 맞지 않을 고민을 부르고, 아가미가 달린 녀석들을 접시에 부르고 종업원을 불러 ‘왜 이 식당은 콜키지 프리가 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종업원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고장나버린 게 시계인지 시계를 만든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 법이다. 아니다 고장이 난 것은 시계를 차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난데없이 방어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가 본전은 뽑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우리는 아가미가 달린 사람들을 도마에 올려 기름을 바르고, 그들을 활어라 부르면서 혀를 찼다. 어쩌면 이곳이 온통 거대한 수족관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콜키지 프리가 허용될 리 없다. 고장 난 것이 미각인지 식욕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달리는 것도 달아나는 것도 유동적인 것은 언제나 파도, 손에 잡히는 것은 죽은 파도, 활어는 늘 죽은 활어, 비린내가 펄떡 거린다
- 2020년 作
액체의 완성
소설가는 자신이 마무리 짓지 못한 페이지를 붙잡고 있다
분명 결말을 정해두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시인은 진정성을 확인할 방법이 필요했다
액체로 된 것은 액체일 때 가장 아름답기에
물기 없는 에필로그의 주성분은 언제나 수분을 제외한 나머지.
출처가 불분명한 핏자국, 이유 모를 땀 냄새
언젠가 액체였던 것들과 도망치지 못한 말들을
꾹꾹 눌러 담은 하나의 점
생략된 의문부호들을 추모할 시간조차 없이
벌써 마침표를 찍기 직전이다.
목이 마르지 않은데도 물을 마셔야 하는 걸까
더는 액체가 아닌 것을 액체라고 부를까
미련해서일까. 미련이 남아서일까
증발하는 중인데도 비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도서관에 올 일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을 땐 다른 감각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노래를 틀어놓고 대화하는 사람들이
독백을 주고받는 중이었다는 걸 깜빡해도 된다.
잔만 홀짝거렸다. 분명 목은 마르지 않았는데.
네가 이 곳을 들르지 않게 된다면 문이 좁아서일까
내가 협소해서일까. 신경이 쓰이긴 할까
용서받지 못할 문장을 써야 한다.
도망치지 못한 말들을 꾹꾹 눌러 담은 하나의 점.
마침표를 찍기 직전이면 언제나 난기류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기분이 들었다
용서받지 못할 문장 하나를 지운다.
피할 수 있는 운명이었음에도 이유가 없었다.
떨어지는 이에게 날개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상 무.
사랑과 이상 그리고 어리석음에 대해 쓰기로 했다
용서받지 못할 문장을 써야 한다.
물기 없는 눈을 마주보면서 낯선 선들을 조우하며
익숙한 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였을까
수학적이지 않아 미분 불가능이야
있잖아 나는 문과지만 말이야 우아함을 알아
도망치지 못한 이들을 꾹꾹 눌러 담은 하나의 점.
- 2020년 作
Ladies&Gentleman
Ladies&Gentleman 만나서 반가워요
맞았어요.
그대 마음은 반만 줘요
아직은 그의 손을 잡아줘요
가끔 안아 줘요
무슨 생각 하는지 알지만 아직은 참아줘요
꺼내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맘속에 담아둬요
왜냐면 넌 아직 아마추어여-서
프로페셔널 한 이들이 너에게 건넨 말
진짠지 가짠지 구분해야지 너도 언젠가
내가 하는 말이 머릿속으로 이해 될 때쯤
신산지 악만지 보게 되겠지 이게 game의 룰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 거북선 아닌 잠수함에
너희를 구원해 New world order
가짜 만족을 지워 오늘까지
화창한 오늘이 어쩌면 죽기 딱 좋은 날씨
우울한 기분이 들 땐 엄마 몰래 담배 한 모금 하지
신사답게
양복입고 음악 해
underground
니들이 현실에 안주할 때
난 더 큰 곳을 바라보며 이상과 술 한 잔 할게
참 빨리 했어 인사
왜 변하지 못했지 진작
표현하지 못했지
이제는 양아치에서 신사
- 2020년 作
rain for the pain
Uh Doto 1st single yeah
밤 새워 연습하던 12월의 2시
내 두 눈을 가리던 가슴 안의 못이
노래를 멈추고 뜻을 꺾어도
한 때 바람처럼 흔들려 꺼지진 않던 초심
나이 갓 스물 숨을 헐떡이며 불안해 잠 오지 않던 밤
돈 대신 꿈을 꾸며 흘린 땀에 풀린 삶
누구는 Benz 누구는 whips
승리의 상징처럼 몸에 달고 다니면서 과시
잘난 거 없던 나 받던 기준 없는 무시 혹은 괄시
독 품고 목이 갈 때까지 미뤄두던 휴식 내가 했던 결심
기필코 내 손으로 이뤄내고 말겠다고
판을 뒤집진 못해도 scene에 획을 긋고 오겠다고
힘들면 전화하라 했던 친구 번호 지웠어
잠들면 맞을 내일이 무서워서 그렇게 살다 후회하긴 싫어서
접은 종잇조각 펼쳐 다시 하루의 반을 얻곤 해
새벽에도 늘 깨어 두들기던 snear
밖으로 나가 소리치던 beat
mix rare I got a little dare prepare to where should I dream nightmare
빛바랜 네온사인 옆에 스러져 잠들곤 했던 날들 흘려듣던 말들
나 달빛에 반쯤 취해 쓰던 가사 조각들
차가웠던 도시의 끝에 서서 방황했지
당황한 날 일으켜 주던 음악 옆에 섰지
가슴 속에 맺힌 말들 그림을 그렸지
장황한 시 보다는 단순하길 바랬지
Rolex and the slax 그 밖의 모든 것
그리고 힙합에 눈이 멀어 mic를 잡고
흔들거리던 무대 위 들썩이는 관객과의 호흡
살아 숨 쉬는 게 뭔지 깨달아 가는 오늘
그래 늘 끄덕이던 작은 고개와
그를 마주하는 작은 불빛 뒤얽혀 만들어내는 노래가
그대 빈자리를 메꿀 때 빛바랜 글자들을 적을게
올해가 가기 전에 오래 못해왔던 고백
너에게 들려주려 만들었던 노래
지금은 뻔한 이별보다 감정 없는 두 볼에
너와 나 새겼던 가식 없는 밤들
슬퍼하지 말길 그러길 나 바래
아마 내일 모레쯤에 사라져 버릴
한 순간의 rain for the pain.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우리 둘이
슬슬 멀어져가 아까웠던 고리들이
술을 들이켜고 물을 한 컵 적실 때
한 뼘 내리는 빗물이 슬프진 않은데 왜 내겐 눈물이
- 2021년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