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때에도 정신병이 있었대. 그들도 그것을 현대인의 늘어나는 병이라며 심각하게 생각하고 연구했대. 그때를 살았던 그들에게도,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것은 현대인의 정신병이래. 힘들 땐 눈을 감고 세상너머 세상을 그려봐.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마주할지 떠올려봐.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 그것이 습관 되면 삶이 한결 가벼워질 거야. 푯대도 분명해질 거야. 그래도 오늘을 포기할 수 있겠니?”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혼쭐이 난 후, 몸에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지하철을 기다리다가도, 강연장에 앉아 있다가도 불시에 호흡곤란이 왔다. 갑자기 목에 작은 알갱이가 걸리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기침이 쏟아졌다. 그 기침은 호흡정지 상태가 되어야 멈추었고, 그러한 과정이 끝나면 나는 초주검이 되었다.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호흡이 정지되면 사람이 죽을 때 내는 소리를 안으로만 꺽꺽대다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뒷걸음질을 쳤다.
숨이 멎어도 잠시 동안은 볼 수도,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사람들이 왜 도망가지, 구급차를 불러도 도착하기 전에 죽겠구나, 아들은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하면서 기도도 했다.
그때의 기도는 평소 마음속으로 하던 기도와는 달랐다. 소리가 없다는 점은 같았지만 분명 달랐다. 평소에는 마음이나 생각을 저기 계신 하느님께 청하는 형태의 기도였다면, 호흡이 멈춘 상태에서의 기도는 공중에 떠서 예수님의 발을 잡고 매달리는 형태였다. 마음이나 생각이 아닌 접촉이 전부인 기도였다. 그러다가 ‘컥’하고 호흡이 돌아오면 기침 같은 구토가 나왔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사람들, 장소, 알갱이, 기침, 호흡정지, 생각, 기도, 호흡재개, 구토, 회복. 이들은 나를 잠시 죽였다가 살리는 요소들이다. 아주 잠깐 사이에 순서를 지키며 나를 휘어잡아 휘두르고 회복시키는 각각의 재료들이다. 그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역할을 담당했다.
하나는 ‘침투->제압->파괴->사망’을 주도했고, 다른 하나는 ‘간청->치유->회복->살림’을 주도했다. 그 두 군단의 싸움은 언제나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수면 위에서 시작하여 심해에 머물다가 바다를 통째로 헤집고 뒤집은 후에야 끝나는 싸움에서, 나는 초주검이 되었다가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외출이 두려웠다. 낮이면 베란다에서 바깥풍경을 마주하고, 밤이면 사람들을 피해 아파트 둘레를 돌았다. 나는 그런 증세를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공황장애라는 것은 어느 정도 증상이 완화된 후에 알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약물에 의존했을 것이고, 정신이 베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면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3년 정도 지나자 증세가 완화되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고 없이 재발했다. 누군가는 나를 빼앗고, 누군가는 나를 찾아오는 현상이 사람과 장소를 선별하여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그런 과정을 겪은 후 예민함이 극에 달하면 짜증을 내는 것도 여전했다.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어 결근을 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기도로 무릎을 꿇었다.
“하느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이러다가 수렁에 빠지고 이러다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잡은 손 놓지 마세요. 잠시도 품에서 내려놓지 마시고 보살펴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시켜 주세요.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을 영상으로 만들어 낭독했다. 그것은 사람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걱정을 잊게 해 주었다. 성경에는 고난을 기도로 극복한 사람들과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킨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을 만나면 나는 아주 작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면 한 점 먼지가 되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그리스도,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그리스도의 눈빛을 마주하면 고통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죽음과 죄를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예수그리스도, 항상 함께 한다고 울림의 소리로 오셨던 그분의 위로가 전해지면 따뜻함과 평강이 나를 감쌌다.
나는 그때의 후유증으로 물심양면 타격을 받았다. 양육과 생계, 10년의 만학으로 줄어든 살림은 출마로 쪼그라들다가 공황장애로 거덜이 났다. 만약 그때 캠프에 합류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면 계획했던 일을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정신을 베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심신과 물질에 국한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진리와 사랑의 가르침은 더욱 깊어졌고, 푯대는 더욱 굳건해졌다. 나는 요즘, 불변의 양식으로 평안을 누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때의 고난은 오늘의 유익을 위함이었다고.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