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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엘라 Oct 22. 2024

무모한 홀로서기

가장이 되었어


  ‘비바람 속에서도 향기를 품고 만개하는 꽃과,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사람은 닮은꼴이다.’  


  서른다섯 가을, 남편과 헤어지고 가장이 되었다. 위자료와 양육비 대신 친권과 양육권을 가져왔다. 주변에서는 귀책사유 없는 배우자가 그런 조건으로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했다. 안정적으로 살 때까지 가끔 만나기만 하다가 나중에 함께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곳으로 보내면 어떻게 성장할지 불을 보듯 훤했기에, 그런 환경에 아들을 보내는 것은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아들과 떨어져서는 살 이유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선택한 홀로서기가 얼마나 힘든 삶을 초래할지 그때는 몰랐다. 엄마 혼자 아들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일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는 나의 첫사랑이다. 우리는 청소년기에 잠시 만났고, 그는 헤어지면서 나중에 만나면 결혼하자고 했다. 그리고 10년이 훨씬 지난 뒤 찾아와 청혼을 했을 때, 나는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냉큼 결혼을 했다. 아이가 둘이나 있다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 것들보다 그가 하는 말과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우리가 아직 소년소녀였을 때에도, 나는 그의 말을 마법처럼 믿었다.


  결혼 후, 그가 했던 말과 약속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생활방식은 가정을 꾸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변화를 바라며 인내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교만’이라는 것을! 사람은 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고꾸라지기 전에는 스스로 변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의 일탈 날이 갈수록 더했고, 나는 살기위해 이혼을 단행했다.     


  남편 없는 세상은 더없이 평온했다. 쏟아지는 햇살에도, 뺨을 스치는 바람에도 자유를 만끽했다. 중단했던 글쓰기를 다시 하고 아들과 여행도 다녔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도 결혼생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현실에 조바심이 날 때면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인내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도 힘들면 ‘나는 엄마니까 견뎌야 한다!’며 주먹을 쥐었다. 그것이 선택권 없이 태어나 아빠마저 박탈당한 아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성에 대한 강박증이 생겼다. 남자는 모두 위선자로 보였다.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웠고, 다가온다고 느껴지면 얼음 칼처럼 날을 세웠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남자가 들어갈 자리는 바늘구멍만큼도 없다고 했다. 그것은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성차단 블라인드가 자동생성이 되어 방어기제로 작동했다.


  계절이 바뀔 무렵,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던 아들이 뛰었다. 비틀대며 걷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뛰어와 안겼다. 아들은 아빠가 없어도 밝고 씩씩하게 자랐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당신 아들 이렇게 잘 키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한 남자의 환상에 갇혀 소개팅 한 번 못해보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실망해 사랑 한 번 못해보고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그런 그가 미워질 때면 미워해서는 안 될 이유를 찾으며 애써 미움을 쫓는다.

  ‘스스로 선택했잖아, 아이의 아빠잖아, 덕분에 엄마가 되었어, 그래서 이렇게 철이 들었고, 그래서 이렇게 씩씩해졌고, 그래서 이렇게......’

  그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다스리기 위함이다. 그는 나에게 미움조차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꽃은 비바람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고 핀다. 하물며 사람이야, 하물며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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