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여섯 살이 되던 해, 우연히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상을 받았다. 함께 여행을 갔다가 귀가하던 길이었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려고 천안의 한 주유소에 들렀는데, 주변이 시끌벅적해서 물어보니 인근 공원에서 축제를 한다고 했다.
나는 잠시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공원으로 갔다. 그리고 진행 중이던 백일장 시제에 끌려 참가신청을 했다. 입상자는 저녁 무렵에 발표했다. 나는 차상이 호명되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떴다. 아들이 보채기도 했지만 진행 도중 참가해 급박하게 쓴 글이 장원일리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얼마쯤 걸어가는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잠시만 더 계시지요!”
원고지를 받을 때 보았던 남자였다. 주유소에 차를 두고 와서 가야 한다고 하자 남자는 잠깐이면 된다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남자를 따라가다가 장원수상작과 함께 내 이름이 호명되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고, 다음에는 기뻤고, 나중에는 낯선 곳에서의 수상에 감동했다.
나는 문화예술계의 대회와 수상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관련계의 유명인사들이 청출어람이 될 제자를 키우려고 문하생을 둔다고 했지만 그 또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거창한 말은 그들이 주최하거나 주관하고 심사하는 대회, 혹은 그들과 친분 있는 인사들이 수상에 영향을 끼치는 대회에서, 자신의 문하생들에게 청출어람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명분이라고 폄하했다.
그렇게 스승의 유명세를 업고 진출하는 제자들로 인해 그들을 능가할 인재들이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하는 심사평은 꿈보다 해몽이라고 비웃었다. 그런데 연고가 전혀 없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내가 장원을 했다. 비록 지역에서 개최하는 시민백일장이었지만, 주관적이고 편협된 사고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나는 연고가 없는 크고 작은 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았다.
나에게 글쓰기를 처음 가르쳐주신 분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부터 글을 가르치시더니 쓰기에 익숙해지자 편지를 대필하게 하셨다.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어머니는 읽는 것은 문제없지만 쓰는 것은 자신이 없다고 하셨다.
편지는 주로 오빠언니들에게 보내는 안부편지나 생활비를 요청하는 편지였다. 어머니가 내용을 불러주시면, 나는 그것을 편지지에 적었다. 처음에는 불러주시는 대로 적었고 나중에는 내용을 부풀려 적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칭찬하셨다.
어머니의 칭찬으로 나의 쓰기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아니다. 어머니의 표현력이 일취월장했다. 어머니의 표현은 간결하고 명료했으며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 마음속 첫 번째 작가가 되었다.
편지 쓰기가 즐거워지자 보고 느끼는 것들을 글로 적었다. 동강의 설경을 볼 때에도, 검은 물이 흐르는 탄광촌에서도, 멀어져 가는 기차꽁무니를 바라보다가도 글을 썼다. 우리 집 담장을 덮은 오동나무에 빗방울소리가 요란해도, 어머니의 앵두나무에 붉은 열매가 다닥다닥 맺힐 때에도, 분신과도 같았던 친구가 수녀가 되었을 때에도, 엄마가 되고 가장이 되었을 때에도 글을 썼다.
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민들레를 건넬 때에도, 거미줄을 보면서 호기심에 재잘거릴 때에도, 삶이 버거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글을 썼다. 글쓰기는 벗이자 안식처였고, 위로와 용기를 주는 에너지였다.
수필로 신인상을 받은 후에는 출간을 준비하며 글을 썼다. 그러다가 성경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자서전은 물론 시와 수필, 소설과 동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인간이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신비하고 놀라운 것들로 가득했다.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지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성경에는 내가 아무리 알고자 해도 알 수 없었던 삶과 죽음,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궁금증을 탐구하고 해소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해법서가 되어주었다.
성경을 세 번 읽은 후, 나는 출간을 포기했다. 그동안 썼던 글을 모두 합쳐도 성경 한 구절에도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읽느니 성경 몇 구절을 읽는 게 백번 낫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내가 쓰는 글들은 폴더에 담겨 글장에 갇혔다.
몇 해 전, 어떤 분이 ‘글을 쓰는 것도 책을 내는 것도 사명’이라며 책을 내라고 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필력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고개를 저으면 나를 위함이 아니라고 했다.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세상에 보여주라고 했다. 때로는 게으르다고 책망을 하기도 했다. 그 부름을 더는 미룰 수 없어 글장을 열었다. 갇혀있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다시 글쟁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