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파엘라 Oct 22. 2024

공인중개사가 되었어

눈물콧물 약속의 자격증

  아들이 일곱 살이 되던 해,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했다. 양육을 하면서 취업을 하기에는 제한이 많았다. 식당에서도 몸이 약하다고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선배로부터 공인중개사 교재를 선물 받았다. 목차를 훑어보고, 내용을 읽어보는데 굉장히 재미있었다.


  중개업은 아들을 돌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평생 취업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었다. 책이 있으니 독학을 하면 수강료 걱정도 없었다. 시간과 노력은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었다.


  한 번에 자격증을 취득할 각오로 독학을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서 밤낮없이 공부를 해도 모의고사성적은 형편없이 나왔다. 주관식이면 만점도 받을 것 같은데 객관식으로 왜 그렇게 난해하게 출제를 하는지 머리가 아팠다.


  공인중개사시험은 잘 풀기도 해야 하지만 찍기도 잘해야 한다. 아는 문제라도 다 읽고 풀었다가는 시간초과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아는 것을 물어보고 자격증을 주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것도 헷갈리게 해서 불합격을 유도하는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변별력을 높이는 것이 비틀고 꼬는 것이라면 객관식은 쓸데없이 에너지소모를 요하는 그릇된 출제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공법이 가장 어려웠다. 그러나 유명학원 교수들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모두 들은 후에는 가장 쉬운 과목이 되었다. 그렇게 컴퓨터와 책 속에 갇혀 1년여를 보냈다. 꽃이 피고 지는지,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지도 모른 체 시험공부에 몰두했다. 나와는 무관한 세상, 나와는 무관한 자연의 변화, 세월은 책 속에 나를 가두고 저 혼자 흘러갔다.      


  시험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스톱워치를 작동하고 모의고사만 실시했다. 문제지는 그동안 풀었던 기출문제와 모의고사문제들 중 오답문제와 난해한 문제만 모아서 직접 만들었다. 거기에서 틀리는 문제는 다시 모아 풀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성적이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합격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시험을 보름 앞두고 순간에 무너졌다.


  그날, 모의고사를 보는데 갑자기 구토가 일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증상으로 도저히 문제를 풀 수 없었다. 다른 글씨는 멀쩡하게 보이는데 문제지만 보면 멀미가 났다. 합격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이 몰려왔다. 그러한 증상은 무심코 열어본 한 통의 이메일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메일에는 ‘위대한 인간’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들어있었다.


  ‘나는 나무에게 물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겠니? 그러나 나무는 꽃을 피웠다’로 시작되는 영상에는 맨발로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전도를 하는 故최춘선 할아버지의 일상이 담겨있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소유한 인천공항 일대 수 만평의 토지를 실향민들에게 나누어주고 30여 년을 나환자들과 부랑자들을 도왔다고 했다. 초라한 행색과 괴팍한 말투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무언가를 느꼈다. 할아버지는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주무시듯 소천 하셨다. 영상을 보는 내내 눈물이 쏟아졌다. 할아버지가 믿는 신을 비난한 게 부끄럽고 죄송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매년 토정비결을 보고 점집에도 여러 번 갔다. 그런 나를 보고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말했다.

  “붉은 깃발 꽂힌 곳에 멀쩡한 집 하나도 없던데 자기만도 못한 사람한테 뭘 그렇게 물어보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


  나는 성경이 더 허무맹랑하다고 했다. ‘사람을 흙으로 빚어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만들었다’는 것이나 ‘예수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이해불가라고 했다. 그런 신을 믿으라고 사람을 귀찮게 하는 교인들은 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믿는 신이 싫었다.


  나도 잠시지만 교회에 갔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될 상황에서였다. 그때 학교에도 안 가고 새벽마다 교회로 달려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기도했다.


  “하느님, 엄마를 살려주세요. 엄마를 살려주시면 하느님을 평생 은인으로 모시고 살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러나 내가 기도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 또한 돌아가시기 삼 일 전에 교인들을 불러 예배를 드렸다. 기도를 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렇게 어이없이 돌아가셨다. 배신감과 분노로 신을 원망했다.


  그날, 어머니가 내 눈을 마주한 채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막내오빠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제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울다가 밖으로 뛰쳐나가 하늘에 대고 소리쳤다. ‘그렇게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기도도 안 들어주는 신이 무슨 신이냐’고 할 수 있는 못된 말은 다 퍼부어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런 무능한 신은 다시는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십여 년이 지나 거지 몰골을 한 할아버지의 영상을 보고 고꾸라졌다. 오래전 내 기도를 외면했던 신과 할아버지가 믿는 신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느님, 정말 계시는군요?”

  순간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번개처럼 솟구쳐 온몸을 흔드는 천둥 같은 울림의 소리였다.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었다. 나는 네 어미를 죽이지 않았어!”


  이상했다.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는데도 믿어졌다. 어머니 장지에서 보았던 쌍무지개가 떠올랐다. 기도를 하고 못된 말을 하던 순간도 떠올랐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죄송해서 울었고, 부끄러워서 울었고, 주위가 온통 따뜻해서 울었다.


  “지금 네가 힘든 것은 네 잘못이 아니란다. 나를 믿으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 있어. 너는 최선을 다했다. 네가 떨어지면 다 떨어질 거야.”  

  그 또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믿어졌다. 눈물과 콧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구멍이란 구멍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훗날, 다윗이 침상이 떠내려갈 정도로 울었다는 성경구절을 보면서 과장이 아니라고 공감했다. 다시 소리가 들렸다.

  “내가 네 어미를 죽이지 않았지?”


  처음에는 ‘죽이지 않았다!’고 하시더니 나중에는 ‘죽이지 않았지?’하고 물으셨다. 더욱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는데 죽이지 않았다고 하시던 그 말씀 또한 훗날 성경을 보면서 이해했다.      


  그리스도인에게 육신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과정이다. 그때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다는 말씀은, 어머니께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말씀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거듭 말씀하신 것은, 내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이미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이다.


  ‘네가 떨어지면 다 떨어진다.’는 말씀은 공인중개사 시험이 끝난 후 그 의미를 알았다. 당시 내가 응시했던 제15회 공인중개사 시험은 최초 합격률이 0.56%였다. 이는 문제유출과 난이도실패 등으로 논란이 되었던 15문제를 모두 정답 또는 복수정답으로 인정한 후에 나온 합격률이었다.


  소수의 합격자들 또한 문제가 유출된 학원의 수험생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러한 이유로 불학격자 모두는 재시험을 보았고 나도 그때 합격했다. ‘네가 떨어지면 다 떨어진다.’고 하시던 말씀은 사실이었다. 신을 믿지 않는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 분명히 들었다. 강렬하고 단호했던 울림의 소리를!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사람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면 순간에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나를 통해 깨달았다. 사람에 대한 사고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돌덩이나 쇠붙이지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했다. 또한 사람은 사람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존재였다.


  무거웠던 마음이 솜털처럼 가벼워졌다. 시험이 목전이었지만 공부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더 들여다본다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았다. 잘 먹고 푹 쉬다가 시험 하루 전날 모의고사 한 번 보고 시험장에 갔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문제유출과 난이도실패 등으로 응시생 대부분이 떨어지는 바람에 재시험으로 합격했다.


  자격증을 받자마자 중개사무소를 개설했다. 그리고 약속했다.

  “주신 자격증으로 어려운 이웃은 돕고, 돈은 벌 자리에서 벌겠습니다!”     

이전 06화 글쟁이가 되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