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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엘라 Oct 22. 2024

무보수로 끝난 첫 계약

오지랖이 낳은 계약무효

  중개사무소를 오픈했다. 사무소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왕복 8차선 대로변의 인적 드문 곳이었다. 위치상 전문분야는 토지와 경매로 했다.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했다. 전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고 폐업하는 사무소가 늘어나는 시기에, 초보중개사가 그런 곳에 개업하는 것은 모험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정신 나간 여자’라고 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러나 성공에 대한 나의 믿음은 확고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앞두고 들었던 ‘나를 믿으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 있다’고 하던 그 울림의 소리를 신뢰했다.  


  경기가 호황이거나 조건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이루는 성공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성공하면 자기가 이루었다고 생각해서 교만해지기도 쉽다. 그래서 신은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에 기적을 일으킨다. 한계를 인정하고 신을 찾으며 간절히 구할 때 비로소 들어준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한다.


  기적은, 시기의 빠름과 느림이 있을 뿐 인간이 ‘내가 했다’는 말을 할 수 없도록 명확하게 구별되어 나타난다. ‘그 모든 것은 당신이 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것을 경험한 나에게 상황이나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없었다.

 

  업무를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나 첫 계약을 했다. 개발예정지로 소문이 돌던 지역의 주택과 밭에 대한 일괄매매였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매도인의 아내와 아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계약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


매도인의 아내는 ‘남편이 상습적인 도박으로  이제는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았다’고 하면서 울었다. 함께 온 아들은 ‘집을 팔면 어머니는 갈 데가 없다’면서 계약을 취소해 달라고 사정했다. 받은 계약금은 아버지가 이미 써버려서 위약금을 주고 해약할 형편이 못된다고 했다.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매도인에게 전화를 했다. 매도인은 풀이 죽어 아내와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라고 했다. 일단은 그들을 돌려보냈다. 매수인을 만나 의사를 확인한 후에 결과를 알려줄 생각이었다.


  퇴근길, 매수인을 만나러 가다가 매도인의 아들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먼저 들렀다. 좀 더 상황을 파악한 후에 매수인을 만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세탁소는 재래시장 모퉁이에 있었다. 20평 남짓한 내부에는 살림집도 같이 있었다.


  매도인의 아내가 눈물을 훔치며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한쪽에서 젖먹이를 안고 있는 여인을 며느리라고 소개했다. 나는 매수인이 어떤 결정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그들을 위로했다.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매수인을 만났다. 매수인은 내가 사무소를 오픈할 때부터 투자용 부동산을 사달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에게 매도인의 상황과 가족들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위약금 없이 계약을 취소해 달라는  경우가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그런 부동산 가지고 있어 봤자 마음만 불편할 것 같다’ 원하는대로  겠다고 했다. 대신 더 좋은 것을 사달라고 다짐을 받았다.


  그렇게 계약은 무효처리 되었고, 나의 첫 계약은 오지랖을 넓히며 무보수로 끝났다.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자격증을 취득할 때 했던 약속을 지킨 것에 대한 뿌듯함이 더 컸다.

  ‘그래, 돈은 벌 자리에서 버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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