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챠 맛이 좋으니 다 가져가!

(배추밭을 보며, 페루의 Salinas)

by 바람마냥

시골 주택엔 모두 합하여 대여섯 평 정도는 될듯한 밭이 각각 한두 평 정도로 나뉘어 있다. 한두 평 정도로 나뉘어 세 뙈기로 되어있는데, 크기도 적당하고 여려가지를 심기가 안성맞춤인 소중한 밭들이다. 올봄, 화단 옆에 있는 작은 밭에는 토마토와 가지를 심고, 그 옆에는 대파를 심어 대파 풍작을 맞이하기도 했다. 작년에 이어 이 년간이나 대파가 풍작(?)이어서 주민들이 대파가 잘되는 집이라고 하며 부러워하기까지도 했다. 가끔은 한 움큼씩 뽑아 이웃집에 선심을 쓰기도 했다.


봄에 심었던 토마토는 그렇듯 하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보는 사람들이 신기해하기도 했다. 물론 신기해하는 사람들은 모두 토마토를 사 먹기만 하고 밭에서 직접 재배하면서 따 먹어 보기는 처음인 사람들이었다. 가지는 심어 놓기만 하면 주렁주렁 달린다는 이웃들의 말이지만, 아무리 잘 보살펴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올해도 여지없이 가지를 심었다. 다섯 그루의 가지를 심어 열개 정도를 따 먹었으니 남들의 말과는 다른 농사를 지은 셈이다. 이렇게 가지와 토마토 그리고 대파를 심었던 밭에서 대단한(?) 결실을 본 후, 밭을 정리해 밭이 휑하게 비게 되었다. 무엇을 심을까 고민을 하다가, 올해는 배추를 심어보기로 했다.


매년 김장을 하느라 고생하던 아내는 어느 날, 올해는 김장을 조금만 하겠단다. 김장을 하는 방법은 절인 배추를 사다 하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라 조금만 하고, 그때그때 조금씩 구입해 먹을 생각인가 보다 했다. 아내 생각을 고려하면 밭에다 배추를 심는 것은 난감한 일이 아닌가? 어쩔까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말을 건네자 배추를 심어보란다. 밭에 퇴비를 주고 삽으로 파 엎은 다음 두둑을 만들어 놓았다. 퇴비가 어느 정도 땅에 스며들 때를 기다려 배추를 사러 시장엘 들렀다.


시골이라 그런지 배추모를 파는 주인이 배추모는 길가에 두고 어디를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돈을 놓고 배추모를 가져갈까도 생각을 했지만, 얼마인지 알 수 없어 그리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할 수 없이 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한참을 지나서 아주머니가 오신다. 물건을 다 가져가면 어떻게 하려고 자리를 비웠냐는 말에, 그럴 리도 없을뿐더러 집에서 일하는 영감님 점심상 차려주고 온다는 것이다. 역시, 시골이라 이런 풍경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배추모를 사려고 값을 물었다. 나는 열댓 포기만 사려고 했는데 한 판을 보이며 3,000원에 다 가져가라는 것이 아닌가? 값이 싸기도 하지만 그 많은 양이 필요 없어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본 할머니는, '배챠 맛이 좋으니 다 가져가!' 하면서 양이 많다고 하는 말에 '나도 언능 팔고 가야 햐!' 한다. 할 수 없이 한판을 사다 미리 정리해 놓은 밭에 가득 심어 놓았다.


미리 준비해둔 밭에 가득 심고, 나머지는 다른 밭에 심어 놓은 것이 족히 40여 포기는 될 것이다. 이렇게 심어 놓은 배추는 수난의 시대가 오고 말았다. 기나긴 장마에 이어 태풍까지 오고 만 것이다. 간신히 뿌리를 자리를 잡고 그럴듯한 배추밭이 되어 갈 무렵부터 장마는 시작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배추 상태를 살피며 어서 장마가 그쳐 주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칠 줄 모르는 장마에 배추는 점점 힘을 잃어 갔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벌레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장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 벌레가 달려들어 배추는 기진맥진하여 녹초가 되었다. 언제 이 배추를 구원해줄까를 고민하다가 장마가 멎기를 기다렸으나 태풍이 오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몰골이 보기 싫었는데 장마가 그 자리를 밟고 지나가 배추는 그 자리에 주저 않고 말았다.


거친 태풍이 몰아치고 간 자리엔 이리 눕고 저리 누운 배추가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누워 있다. 짓궂은 비가 녹여놓고 간 줄기는 녹초가 되어 있고, 남은 것은 벌레가 그냥 두질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처절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배추를 구원해 주기로 했다. 며칠 전, 당근을 구원해 주다 그들의 영역을 침범당한 독충에 혼이 난적이 있어 완전 무장을 하고 밭으로 갔다. 장마와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벌레가 진을 치고 있어 알량한 배추는 기를 펼 수가 없었다. 이러 눕고 저리 누워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모습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배추밭 곳곳에 나 있는 무성한 풀을 뽑아내고, 두둑을 도톰하게 북돋아 주면서 배추밭 형태를 만들어 주었다. 상처가 난 처절한 잎을 제거하고, 뿌리 주변에 흙을 모아 뿌리를 덮어주자 흐느적거리던 배추는 어느덧 중심을 잡고 몸을 세운다. 잎에 뭍은 흙을 닦아내어 땅에 닿을 듯이 누운 잎은 일으켜 세워주고, 장마에 드러난 뿌리는 덮어 주었다. 골을 따라 일렬로 맞추어 일으켜 세운 배추는 그제야 한숨을 쉬며 허리를 편다. 그래도 앙상한 배춧잎은 벌레가 짓밟고 간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치료를 해 줄까를 고민하다, 사람이 먹을 양식인만큼 목초액을 뿌려 주기로 했다. 목초액이 벌레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마와 태풍에 시달린 배추의 벌레로부터 습격은, 내가 심은 배추의 쓰라린 삶이기에 이렇게라도 치료해주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았다. 처절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배추밭을 정리해 배추가 잘 자라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 사이에 태풍이 또 온다는 소식에 걱정스럽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의 힘을 당해낼 수가 있겠는가? 언제 오더라도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지 않은가? 자그마한 배추밭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쉽게 대할 수 있는 배추 한 포기가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밥상에 오르는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작은 채마밭에서 배추 몇 포기 기르는 것이 이렇게도 힘이 들고 어려운지는 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쉽게 대할 수 있는 배추 한 포기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렵게 얻어지는 것이다. 단지 몇 푼의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다. 거기엔 농부들의 힘든 땀이 섞이고 자연이 도와주어야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느끼게 하는 오늘의 아침이다. 배추 몇 포기를 돌보는 것도 힘겨워하는 몸이 조금 야속하기도 하다. 그러니 앞 뜰의 거대한 배추밭을 돌보는 농부의 땀은 어떻겠는가? 땀으로 젖은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서늘한 아침에 일어나 자연과 어우러져 땀에 젖은 얼굴을 뜰 앞에 흐르는 도랑에 내려가 씻어야겠다. 조금은 어렵고도 힘들게 해 주는 나만의 작은 배추밭이지만, 자연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음에 마냥 감사한 시골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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