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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28. 2020

가을 아침의 뜰

(가을이 주는 선물, 노르웨이에서 만난 아침)

창문을 연 앞 산은 오늘도 뿌연 안개를 쓰고 있다. 뿌연 안갯속에 쏟아지는 햇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멋진 그림이다. 밝은 햇살을 받은 녹음은 어느새 가을 색으로 갈아입었다. 녹음 속에 있는 소나무도 여름 내내 푸르던 솔잎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뜰 앞에 솔잎이 누렇게 되어 걱정을 했는데, 이웃에게 물었더니 가을임을 알려주는 신호란다. 가을 내내 이웃들을 불러 모았던 밤나무도 가을 속으로 접어들었다. 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준 밤나무는 허전한 줄기에 누런 잎만 달고 있다. 여름 내내 그늘을 주고, 가을을 기다렸던 알밤이 떠난 밤나무는 아무런 미련 없이 계절을 즐기고 있다.


초봄에 하얀 꽃을 피워 사람을 사로잡았던 벚나무도 가을색이 뚜렷하다. 벌써 누런 색으로 물이 든 잎은 가지를 떠난 것도 상당하다. 아침저녁으로 아내는 낙엽을 쓸어내느라 오늘도 분주하다. 그냥 두고 보자는 말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집 같다며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푸르른 소나무에 드문드문 누런 잎이 섞인 밑으로 누런 잎이 묻은 벚나무가 가지를 늘어트리고 서있다. 어울릴 듯 말듯한 산 그림이 그런대로 어우러짐이 좋아 보인다. 이제 일 년 내내 옹알 거기던 작은 도랑은 점점 조용해진다. 기나긴 장마로 넘치던 물줄기가 다소 쇠잔해진 까닭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내려오는 물줄기는 그칠 날이 없어 좋다. 봄이면 봄대로 속삭이고, 여름이면 여름대로 콸콸거리며, 가을이면 나름대로 옹알거림이 좋다. 겨울이 오면 하얀 얼음 밑을 오가며 다가오는 봄을 재촉하리라.

공작단풍의 위용

뜰에도 가을이 듬뿍 와 있다. 여름내 즐거움을 주었던 시골집 식구들이다. 앞 뜰 구석구석에 심어진 영산홍이 제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초봄에 붉은 꽃으로 집을 감싸주던 영산홍이다. 초여름까지 꽃을 피우던 영산홍은 꽃이 지고 푸름만 안고 있었다. 가을에 접어들어 푸르던 잎이 붉은빛을 띠고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새 붉은빛으로 물이 들어 집을 밝게 밝혀 주고 있다. 붉은색에 주황색이 가미된 색깔은 올 가을 따라 유난히 밝게 빛난다. 집을 둘러싸고 앉아 가을임을 열렬이 알려 주고 있다.


여기에 뒤질세라 코스모스도 한몫을 한다. 껑충한 키를 못 이기듯이 바람에 일렁이던 코스모스였다. 어느 날 아침에 만난 코스모스는 진빨강으로 입술을 치장했다. 붉은색으로 가득한 코스모스는 언제나 손을 흔들며 오는 손님을 맞이한다. 대부분의 코스모스가 고개를 숙였는데 아직도 싱싱함에 대견스럽다. 여기에 메리골드도 한몫을 한다. 진빨강에 주황색이 곁들여진 꽃이 아름답다. 올 가을엔 색깔이 진하게 물이 들어 지난해보다 훨씬 풍성해졌다. 기나긴 장마에 끄떡없이 버티어낸 승리의 기쁨 이리라. 거기에 화려한 국화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국화꽃 피우는 것을 보지 못해 서운했었다. 국화꽃을 맞이하려 준비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동네에서 구입한 국화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이다. 우리 동네에는 국화꽃이 가득한 국화 부자동네이다. 가을이면 국화꽃을 마냥 구경할 수도 있고, 국화를 구입해서 꽃을 즐길 수도 있다.


시골집이 들어선 우리 동네는 '자연생태마을'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축사나 공장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길 옆으로 국화가 사열하듯이 심어져 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오른쪽 언덕 밭엔 국화가 가득 피어 꽃으로 가득한 동네이다. 거기에 동네 어르신들이 국화를 손수 재배해 판매를 하고 있어 좋다. 지난해에는 국화꽃을 보려고 몇 개를 구입해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국화에 꽃이 피지 않고 병이 들어 꽃을 만나지 못했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관리에 미숙해 병이 낫다며 미안해하니 어쩔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줄기를 잘라내고 뿌리를 화단 구석에 심어 놓은 것이 올해는 제 값을 한다. 서서히 싹이 올라오고 드디어 주황색의 꽃망울을 맺게 된 것이다.


올해도 새로운 꽃을 보고자 국화를 구입해 계단에 놓았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화단을 가을색에 맞추어 붉게 물들이고 싶어 붉은 꽃을 구입하려 했었다. 동네 어르신이 붉은 꽃이라고 건네준 국화를 심어 뜰앞에 놓고 꽃을 기다렸다. 그런데 붉은 꽃이 아니라 하얀 꽃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동네 어르신들이 또 잘 못 보고 꽃을 건네 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꽃을 기다리자 하얀 꽃이 그럴듯하게 피어올랐다. 이것도 어르신들의 실수로 맞게 된 꽃이지만 그런대로 가을을 장식해 주어 고맙기만 하다. 가을의 나의 화단은 또 다른 가을의 선물로 가득하다. 하지만 올 가을에 보고 싶었던 구절초는 아직 소식이 없다. 봄부터 부지런히 물을 주고 보살폈지만, 아직 자라는데 힘을 쏟는지 작은 꽃몽우리만 보여주고 있다. 더 가을이 깊어지면 꽃을 보여주려는지 참고 기다리는 중이다.

집 둘레에도 가을의 흔적이 가득 왔다. 집을 감싸고 있는 영산홍잎이 붉게 물들자 군데군데 개미취가 보랏빛으로 장단을 맞춘다. 거기에 몇 포기의 구절초가 하얗게 꽃을 피웠다. 울타리 쪽으로는 자그마한 남천도 붉게 잎이 물들었다. 울타리를 삼으려 심었던 남천이 추위를 이기지 못해 고전했었다. 하지만 뿌리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웃거리더니 키를 불렸다. 가을로 접어들자 남천은 잎을 붉게 물들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웃에서 만든 울타리 쪽으로는 화살나무가 한몫을 한다. 초 봄에 나물을 내어 주고 남은 잎이 붉게 물들어 가을을 한껏 즐기고 있다. 내년에는 화살나무와 남천을 많은 심어 볼까도 생각 중인데, 심을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속에서 단연 빛나는 것은 단풍나무이다. 자잘한 단풍나무를 구해 심어놓고 간간히 물을 주었다. 자그마한 단풍나무가 키를 불리고, 가지가 자라나 아름다운 색으로 보답을 한다.  


단풍나무 중에도 키가 껑충한 공작단풍이 단연 으뜸이다. 뜰에는 두 그루의 공작단풍이 있다. 한 그루는 집 쪽으로 있고, 다른 한 그루는 잔디밭 가에 자리하고 있다. 집 쪽으로 자리한 공작단풍은 언제나 점잖은 자태로 거만하게 서 있다.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며 '바람아 불어라'하며 기세가 등등하다. 대신 잔디밭에 자리한 공작단풍은 야리야리한 몸짓으로 작은 바람에도 하늘 거린다. 작은 바람에도 잎을 나폴 대며 푸름을 안고 살았었다. 가을에 접어들자 두 공작단풍은 소리 없이 진빨강 물이 들었다.


공작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여름 내내 그늘을 만들어 주던 날개는 붉은빛으로 둔갑을 하고, 우아한 날개를 가득 펼치며 밝게 자리하고 있다. 아침나절 이슬을 이고 햇살에 빛나는가 하면 어느새 이슬을 털고 방긋 웃는다. 마주하며 서 있는 두 공작단풍은 찾아오는 햇살을 되받으며 누렇게 익은 잔디밭을 환하게 밝혀준다. 환하게 비추는 햇살 따라 잎새에 머물던 붉은 물감이 가을 속으로 떨어진다. 오늘따라 작은 바람이 찾아와 가냘픈 가지를 간질이고 있다. 덩달아 붉은 잎이 춤을 추면 가을은 어느덧 잔디밭에 내려앉는다. 이렇게 가을은 조그만 시골집에 가득 메우며 빛나는 아침을 소리 없이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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