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를 캐다, 앞산의 야광나무꽃)
길가엔 냉이가 수두룩했다. 먹는 것인지도 몰랐다. 얼마 지나면 하얀 꽃이 바람에 나부낀다. 사람 발에 밟혀 옆으로 누운 냉이도 있었다. 옆에는 노란 민들레가 지천으로 꽃을 피웠다. 토끼가 좋아하는 민들레를 뜯으러 아이들은 들을 누비고 다녔다. 꽃대를 자르면 하얀 액이 흘러 신기하기도 했다. 질경이도 밭을 이루고 있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얼마 되지 않아 허연 꽃이 피어오른다. 오가는 사람에 밟혀 넙죽이 엎드려 있다.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만났던 좁다란 길의 풍경이다.
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 나서는 것은 그중에 냉이이다. 달래, 냉이, 씀바귀 하는 중에 냉이가 가장 인기품목이다. 지금도 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냉이를 캐러 다니곤 한다. 제(薺)·제채(薺菜)라 표기하며, 나생이라 불르기도 했다. 여기서 薺(제)는 냉이를 나타내는 냉이 '제'자이다. 오래전에도 봄철에 즐겨 찾던 냉이였다. 세월이 흘렀다. 세상도 많이 변했다.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서 오래 전의 추억이 되살아 났다. 냉이가 그리워지고, 씀바귀가 귀해졌다. 건강에 좋다고 하니 너도 나도 몸부림이다.
초겨울, 양지바른 곳에 푸르른 냉이가 자라고 있다. 잎은 조금 누렇게 변했지만 뿌리는 깊숙이 박혀있다. 겨울을 나기 위한 나름대로의 수단일 게다. 잎은 포기하더라도 뿌리라도 살아야 하는 절박함이 있으리라.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깊숙이 뿌리내린 냉이엔 특유의 얄싸한 냄새가 진하다. 냄새에 반해 들로 산으로 발걸음이 바쁘다. 웰빙 식품이란다. 건강에 무지 좋다고 한다. 어서 들로 산으로 나서 냉이를 뜯어야 한다.
산과 들에서 얻을 수 있는 냉이에는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 그리고 무기질이 많아 기력 회복에 도움을 준다 하니 포기할 수 없다. 혈관 건강에 좋고 항암효과까지 있단다. 비타민A가 많아 눈 건강에도 좋고, 춘곤증과 피로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니 환장할 봄나물이다. 봄이 오면 따스한 봄바람도 맞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운이 좋으면 댕기머리 소녀도 만날 수 있다. 곳곳에 번듯한 자가용이 대기하고 있다. 온 가족이 나온 것이다. 모처럼 온 가족이 화기애애하다. 논두렁을 절단 낼 기세이고, 밭고랑에 밭을 매듯 냉이를 찾고 있다.
추위가 거의 물러갈 즈음, 뒷산에 걸쳐있는 비탈밭을 찾았다. 따스함이 내려앉은 밭엔 냉이가 잎을 내밀었다. 벌써 푸르름을 과시한다. 잘 생긴 냉이를 골라 뿌리째 캐낸다. 아주 실한 뿌리가 향긋한 향을 뿜어낸다. 떨쳐낼 수 없는 향이다. 사람들이 찾아 나서는 이유가 있다. 짙은 향이 밴 냉이는 반찬거리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맑은 도랑물에 깨끗이 씻었다.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은 봄을 한껏 품었다. 아직도 차갑지만 넉넉한 봄바람에 씻을만하다. 덩달아 도랑에 내린 봄도 맞이했다. 냉이를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어릴 적 기억이다.
하얀 뿌리로 멋을 부린 냉이를 무쳐낸다. 갖은양념에 달래로 멋을 낸 간장에 무쳐낸 냉이는 입안에 한참 머무른다. 얄싸한 냉이 냄새와 어울린 간장, 파릇한 달래가 풍기는 맛은 떨쳐낼 수가 없다. 가끔은 매콤한 청양고추가 입안을 놀래 준다. 고소한 깨도 한몫 거들었다. 젓가락이 쉬지 못하는 맛이다. 된장이 곁들인 냉잇국도 빼놓을 수 없다. 하얀 콩가루가 묻은 냉이를 된장과 함께 끓인 된장 냉잇국이다. 밥 한 그릇은 문제없다. 어느새 국그릇은 바닥을 보인다. 국그릇을 들고 목이 하늘을 향했다. 봄 입맛을 돋워주는 시골밥상이었다. 서서히 봄이 익어간다.
뜰에 자란 냉이는 꽃을 피웠다. 하얀 냉이 꽃이 하늘을 향했다. 가느다란 바람에 몸서리친다. 어느새 벌과 나비가 냄새를 맡았다. 나비에 놀란 벌이 소리치며 날아가다. 하얀 나비가 냉이 꽃에 앉았다. 작은 바람이 찾아오자 깜짝 놀라 날아간다. 주변을 맴돌던 벌이 찾아왔다. 하얀 꽃에 반해 떠날 수 없었나 보다. 노란 봄이 그렇게 익어갈 즈음, 냉이는 하얀 꽃이 피고 잎은 쇠어졌다. 냉이가 인간의 부름에 잊혀 간다. 다시 내년 봄을 기약해야 하는 냉이는 좀 쓸쓸하다. 살기 위해 뿌리가 익어가자 사람들이 외면한 것이다. 하지만 꿋꿋이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새 삶을 위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봄은 그렇게 익어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