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찔레꽃, 언덕을 가득 덮었다

(찔레꽃피는 봄, 찔레 꽃)

by 바람마냥

계절의 순환 속에, 따스한 바람이 봄을 몰고 왔다. 연초록이 뒷산을 물들일 무렵, 삶에 목마른 풀들이 고개를 내미느라 분주한 아침이다. 선선한 바람을 안고 오르는 언덕 찔레나무에도 봄은 찾아왔다. 봄기운을 어떻게 알았는지 기다란 찔레나무 가지에 점 푸름이 내려앉은 것이다. 따스한 햇살이 알려준 봄인가 보다. 점 푸름에 송송 아기 솜털이 앉아 작은 바람에 몸을 움츠린다. 봄기운이 완연하다는 이야기이다. 어느새 계절은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와 있었다.


뒷산을 오르는 햇살 따스한 언덕에 찔레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작은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찾아온 봄을 맞이하고 있는 곳이다.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언덕이다. 지난해에는 많은 비가 왔고, 곳곳에 장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장마에 허물어질 듯한 언덕이 아스라이 버티고 있다. 무너질 듯 버티고 있는 언덕에 길게 드리워진 찔레나무가 장마의 상처를 감싸고 있다. 길게 드리워진 찔레나무에 점점이 푸름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가느다랗게 늘어진 가지가 봄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래쪽엔 자그마한 옹달샘이 자리하고 있다. 옹달샘 가운데는 끝없이 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맑은 물이 연거푸 가는 모래를 밀어낸다. 작은 모래가 가라앉을라치면 밀어내고, 다시 모래는 가라앉을라 한다. 끝없이 밀고 밀리는 장난 속에 맑은 물이 솟아오르며 도랑을 적시어 준다. 옹달샘 주변 곳곳에도 봄이 찾아왔다. 곳곳에 작은 풀이 자리를 잡아 푸름을 물들이고 있다. 그 위를 긴 찔레 가지가 드리워진 것이다. 긴 가지에 점 푸름이 점점 자리를 잡아 찔레나무는 진한 푸름으로 치장을 했다. 어느새 덤불도 푸름으로 가득해졌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다.

IMG_8190[1].JPG 낙동강 라이딩 중 만난 찔레꽃

찔레나무, 장미과에 속하며 산과 들에 피는 장미라 하여 들장미, 야장미라고도 한다. 화려한 장미에 비해 소박하고도 신비스러움을 주는 꽃을 피운다. 찔리는 가시가 있다 하여 찔레나무 또는 가시나무라고도 부르는 나무이다. 잎이 다 떨어진 상태로 겨울을 보낸 후 봄에 새잎이 나는 낙엽관목으로, 우리 주변에서 오랫동안 같이한 나무이다. 봄에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빨간 열매를 맺어 풍미를 주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석산호’라 하고, 말린 열매를 ‘영실’이라 하여 귀한 약재로 사용한다. 또한 찔레꽃의 향기는 향이 짙어 찔레꽃을 증류하여 향수로 사용하기도 하는 귀한 나무이기도 하다.


점점 봄이 익어가고 있다. 산 위에 푸름이 넘쳐 산 아래로 흘러내릴 즈음, 찔레나무도 어쩔 수 없다. 가지에 붙은 작은 점 푸름이 넘쳐 가지를 풍성하게 덮어 가고 있다. 점점 아기 순이 자라 가고 있는 것이다. 찔레순의 푸름이 늘어진 가지를 완전히 덮을 무렵, 찔레나무도 꽃들의 잔치에 합류한다. 하얗게 피어나는 찔레꽃이 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따사로운 햇살을 버티지 못하고 향긋한 꽃내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섯 장의 흰 꽃잎이 팔을 활짝 펼치면 가운데 노란 꽃술이 피어난다. 하양에 노랑이 어울리는 절묘한 조화이다.


하얀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모내기를 해야 하는 계절이다. 모두가 바쁘게 살아야 하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물이 귀하던 시절, 모내기는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단비를 기다려야 하는 인내가 필요한 계절이다. 야속한 가뭄이 찾아오면 삶은 더 팍팍하기만 하다. 한줄기의 물을 찾아야 하는 '찔레꽃 가뭄'이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야속한 배고픔의 계절이기도 했다. 보리를 베기에는 이르고 지난해 마련한 쌀은 바닥이 보인다. 이래저래 서민들의 배고픔이 찾아온 시기이다.


찔레나무 순이 더 자라 살을 찌웠다. 다복한 꽃을 피웠지만 그 속엔 숨겨진 가시가 있다. 멀찌감치 서서 감상만 하라는 숨은 뜻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본다. 아름다운 하얀 꽃을 보여주려고만 했나 보다. 찔레나무 연한 순은 아이들의 먹거리이기도 했다. 한 뼘 정도 자라면 찔레 순을 꺾는다. 잎과 가시를 따내고 연한 찔레순 껍질을 벗겨 먹었다.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푸르름에 달콤함은 주저할 수 없는 맛이다. 아이들은 한 움큼씩 들고 허기를 달래기도 한 찔레나무 순이다.


삶의 순환과 함께한 찔레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푸른 잎 위에 앉은 하얀 꽃이 푸근함을 얹어 준다. 소복이 모여 있는 꽃무덤은 탐스럽기도, 푸근하기도 하다. 자연의 절묘함을 다시 한번 알게 한다. 덩달아 도랑 밑에 고마니 풀이 자리를 잡았다. 짙은 녹색으로 물든 고마니 풀은 분홍색 꽃을 예쁘게 피웠다. 햇살이 밝은 언덕 위에 핀 하얀 찔레꽃과 질펀한 도랑에 핀 분홍빛 고마니 꽃이 잘 어우러진 도랑이다. 아직도 작은 옹달샘에는 소박한 물줄기가 하얀 모래를 밀어내고 있다. 봄이 익어 여름에 접어들면 푸름은 더 깊어지고 검푸름이 짙어질 것이다. 서서히 여름으로 가는 길목은 짙은 녹색이 가득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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