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주는 아름다움, 녹음이 가득한 나의 앞산)
계절의 여왕, 5월의 푸름이 문턱까지 왔다. 새벽바람을 맞고 싶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한꺼번에 문턱을 넘어온다. 상큼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바람이다. 오래전, 히말라야 언덕에서 만났던 그 바람을 다시 만난 기분이다. 공기가 맛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히말라야의 바람이었다. 언제 그 바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쉬워했는데, 나의 창문을 열고 만날 수 있음이 부러울 게 없다. 크게 심호흡하는 사이 뿌연 안개가 출렁인다. 뿌연 안개가 산을 싸고 누워있는 것이다. 아름답고도 신나는 나의 앞산이다.
나의 앞산엔, 하늘 바로 아래 낙엽송이 자리해 푸름 속을 오고 간다. 긴 숲을 이루고 있는 낙엽송 아래로 꺽다리 참나무가 자리를 챙겼다. 널찍한 잎이 유난히도 푸른 참나무이다. 연한 녹색에 검푸름 옷을 가득 입었다. 넉넉한 참나무가 까칠한 소나무를 가득 품었고, 아래쪽으로 도랑을 건너 푸른 잔디가 자란 앞마당이 포진해 있다. 창문을 열면 언제나 마주할 수 있는 환상의 앞 산언덕이다. 봄이면 초록이 삐죽이 올라오고, 여름이면 검푸름이 물을 들인다. 검푸름이 지쳐 넘치면 알록달록한 낙엽이 온 산에 불을 지른다. 정열의 불이 사그라들면 하얀 눈이 내리며 온 산을 덮어 준다. 하얀 눈이 덮인 포근한 겨울이 지나면서 봄을 기다리게 한다. 계절 따라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신기한 자연 속의 나의 앞동산이다.
뿌연 안개가 산 아래까지 드리웠다. 찰랑찰랑 나무 끝에도 묻어 있다. 날씨가 좋을 모양이다. 짓궂을 비가 찾아와 뜰앞 꽃들이 눈을 흘겼었다. 꽃을 피울라 하며 비가 오고, 필만하면 다시 찾아와 야속하기도 했다. 꽃들의 삶을 쥐고 있지만 지나치면 비도 싫었나 보다. 안개는 서서히 밀려와 뜰 앞 실도랑까지 덮었다. 여기가 도랑인지 산인지 구분할 수 없다. 우두커니 서 있는 가로등이 멋쩍어한다. 희미한 가로등으론 감당할 수 없는 안개였나 보다. 안개가 이곳저곳 찾아 스며드는 사이 서서히 날이 밝아 온다. 산등성이 넘은 빛이 서서히 산을 내려온 것이다.
산을 넘은 햇살이 한가득 내려왔다. 먼지 한점 없는 하늘에 맑은 햇살이 가득하다. 참나무 연초록은 내린 빛을 그냥 보낼 수가 없다. 연초록에 내린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다. 연초록이 그 빛을 감싸 안았다. 연초록 잎이 맑게 빛난다. 투명하게 빛나는 햇살에 눈부신 눈을 질끈 감았다. 오래도록 묻어두고 싶어서다. 밝게 빛나는 햇살은 아직도 그 자리다. 나뭇가지 끝머리에 연초록이 있고, 연초록을 이고 있는 검푸름도 있다. 연초록에 앉고 남은 햇살이 길을 잃었는지 망설이다 아래로 떨어졌다. 연초록을 이고 있던 검푸름을 만난 것이다. 햇살을 부러워한 검푸름이 맑은 빛에 움찔한다. 느닷없이 안겨온 햇살에 놀라고 만 것이다.
멀리 눈길을 주자 긴 산등성이 한 번에 들어왔다. 검푸른 낙엽송이 우두커니 바라본다. 심술궂은 산 바람이 이리저리 간지러도 모른 척한다. 못 이기는 척 작은 가지가 그네를 탄다. 무뚝뚝한 낙엽송 아래 참나무가 초록을 이고 있는 것이다. 참나무 검푸름에 연초록이 앉아 햇살을 맞은 것이다. 참나무를 지나 소나무에도 햇살이 앉았다. 삐쭉이 내민 솔 잎이 햇살을 되받는다. 반짝이는 삐쭉한 솔잎이 긴 빛으로 아는 척을 한다. 봄부터 내민 푸른 솔순에도 햇살이 가득 내려왔다. 빛나는 햇살을 피할 수 없었나 보다. 여기까지 온 햇살이 넘치면 깊은 숲 속으로 떨어진다. 숲 속에 떨어진 햇살, 멈출 수 없다는 듯이 빛을 발한다.
느닷없이 떨어진 햇살도 변함이 없다. 맑은 빛은 깊은 숲 작은 가지에서도 빛이 난다. 숲 속에 숨어 있던 작은 가지는 깜짝 놀랐다. 웅크리고 있던 가지에 앉은 햇살이 깊은 빛을 발한 것이다. 연초록에 앉은 햇살이 초록을 묻혀 쉼 없이 떨어졌다. 물속에 풍덩, 집 앞을 흐르는 도랑물이다. 엊그제 비로 몸집을 불린 도랑은 오늘도 쉼이 없었다. 밤새도록 갈갈거린 도랑에 훤한 햇살이 찾아온 것이다. 촐랑대는 도랑 물이 간지러운지 몸 비틀어 꿈틀댄다. 자갈을 지나 낙엽 싣고 흐르던 도랑물이 갑자기 훤해졌다. 주변의 푸름이 물속에도 들어앉았다. 밝게 빛나는 햇살에 놀라 아침 도랑도 잠에서 깨어난다. 서서히 햇살이 풍성해지면서 산 식구들도 일어났다. 산새들이 일어났고 온 산이 서서히 몸집을 드러냈다.
반짝이는 햇살에 산 식구들이 부지런을 떤다. 하루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산새들은 먹이를 찾아 분주히 오고 간다. 허기진 새끼들 아침밥을 챙기기 위해서다. 처마 밑에 새끼들이 밥 달라고 쫑알댄다. 야트막한 동네 앞산도 몸집을 드러낸다. 앞산에 기댄 야트막한 비탈밭이 푸름으로 가득하다. 기다란 비탈밭에 줄 푸름이 늘어선 것이다. 봄 내내 농부가 그려 놓은 성스런 그림이다. 아침이슬에 반짝이는 햇살이 비탈밭에 넉넉하다. 빼놓을 수 없는 산골의 풍경이다. 검푸름이 있어 연초록은 더 빛이 나고, 햇살에 어우러진 초록은 한없이 아름답다. 5월의 초록은 그렇게 어울리며 아름다운 아침을 선사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