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끝 도랑에 평화가 찾아왔다.

(시골아침 풍경,뜰앞붉은 괴불나무꽃)

by 바람마냥

온 동네에 평화가 내려왔다. 새벽을 여는 도랑물 소리와 함께 아침이 열린 것이다. 아차 했는지 이웃집 닭이 길게 목을 빼고 울어댄다. 아침이 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나 보다. 오랫동안 삶에 익숙한 닭이 그럴 리가 없었는데 갈갈대는 도랑물 소리에 취했었나 보다. 닭장이 도랑 근처에 있는 것이 닭의 체면을 구기게 했는가 보다. 알고 보면, 도랑물이 동네를 깨운 것이 아니라 깨어나며 만난 도랑 물소리 이리라.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도랑 물소리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도랑물을 바라본다. 도랑물도 무심히 나를 바라본다.


가느다란 도랑엔 언제나 물이 흐른다. 사시사철 구분할 것이 없다. 계절에 따라 물의 양만 변할 뿐이다. 며칠 전에 비가 내려준 덕에 풍성해진 도랑물이 신이 나서 옹알거린다. 언제나 듣기 좋은 아기 울음소리 같다. 봄이면 봄대로 물이 흐르고, 여름이면 도랑 가득히 물이 흐른다. 가을이면 오랜 추억을 불러주고, 겨울이면 아름다운 봄을 불러 준다. 도랑물 소리에 취해 한참을 바라본다. 어쩌면 그리도 맑은 물이 내려와 줄까? 언제 봐도 고마워 한참을 바라본다. 자잘한 돌멩이가 있고, 커다란 바위도 있다. 가끔은 드문드문 나무 등걸도 있다. 도랑물은 전혀 상관없이 갈갈대며 흘러간다. 모든 것을 흔쾌히 끌어안고 평온하게 흘러내린다.


널따란 바위도 넘어 물이 흐른다. 바위 위에 흐르는 물은 더 맑은 물인가 보다. 한없이 맑음이 찾아와 흘러감이 아깝기만 하다. 바위를 넘어 흘러내린 물은 뽀얀 거품을 이룬다. 아기자기한 물거품이 오글거리며 어울린다. 헤어지기 아쉬운지 서로 엉켜 아래위로 나뒹군다. 흐르는 물에 밀려 내려간 하얀 거품은 이내 물이 섞여 아쉬움을 덜어낸다. 누런 낙엽을 만났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인가 보다. 누렇게 색이 바랬고, 중간중간에 아쉬운 구멍도 나 있다. 물을 타고 내려가는 낙엽이 편안한 듯 누워있다. 이러는 사이 햇살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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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도랑물에 밝고도 하얀 햇살이 찾아온 것이다. 더없이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찰랑대는 물결이 살짝 드리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누가 이런 조합을 만들어 냈을까? 언제 이 아름다운 어울림을 또 만나 볼 수 있을까? 할 수 없이 도랑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름다운 작은 물결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촐랑대는 물결 따라 깜짝 놀란 햇살이 반짝인다. 튀어 오른 남은 햇살이 풀잎에 떨어졌다. 아침 이슬에 젖은 푸름에 햇살은 신이 났다. 햇살 따라 반짝임은 푸름이 있어 더 빛난다. 햇살이 한층 밝아졌다. 이때쯤 싱거운 뻐꾸기가 하늘을 날아간다. 하루 시작을 알리는 뻐꾸기가 울며 날아가는 것이다.


한가로운 뻐꾸기 울음소리가 한없이 정겹다. 어린 시절에 만났던 그 뻐꾸기 소리다. 한가한 초가집에 햇살이 내렸다. 반짝임은 그곳에도 멈출 리가 없다. 반짝이는 햇살 속에 구부정한 초가집은 세월을 가득 안고 있다. 골이진 초가지붕이 흐르는 세월을 말해준다. 초가지붕 위로 길게 자란 감나무 가지가 드리웠다. 감나무 잎이 어느새 진초록에 젖어있다. 진초록에도 햇살이 반짝임을 주고 갔다. 한없이 한가함을 주는 시골집이다. 햇살이 익을 무렵, 한가한 뻐꾸기가 또 날아간다. 마실길에 울어보는 소리인가 보다. 뻐어~억꾹, 뻐꾹. 갈 곳이 급했는지 뒷 울음소리 짧아졌다. 그래도 정겨운 소리였다. 그 소리를 만났다.


맑은 도랑물 소리에 햇살이 섞여 있었고, 거기에 정겨운 뻐꾸기 소리가 담겼다. 옹알대는 도랑물 소리만으로도 행복한 시골에, 반짝이는 햇살이 찾아와 흥을 돋운 것이다. 곳곳에 반짝임을 얹어주는 호사까지 누리고 있다. 홀연히 나타난 뻐꾸기 소리가 오래 전의 추억을 더듬어준다. 고향이 생각나고 어울려 놓던 친구들이 기억된다. 코찔찔이 친구들이 뛰어노는 넓은 마당이 다가온다. 벗어 저 내려가는 바지를 추겨 올리며 따라오는 친구를 떨치려 안간힘을 쓴다. 끝내 붙잡혀 흙밭에 뒹굴며 뒤 잡이를 한다. 그리운 친구들의 모습니다. 아침나절에 만난 싱거운 듯 고마운 뻐꾸기 소리가 한동안 시간을 멈추어 놓고 말았다. 참, 좋은 아침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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