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들과의 동거, 뜰앞 모과나무와 앞산의 녹음)
다시 찾아온 봄, 봄이 찾아오면서 살아 있는 생물들은 서둘러 새 삶을 꾸려야 했다. 식물은 식물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시골집 2층 서재, 앞산엔 여름으로 한 발 다가선 계절이 녹음으로 가득하다. 덩달아 산새들은 이곳저곳을 드나들며 나름대로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어느새 새끼를 부화했는지 작은 새끼들은 밥 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시골에 내 보금자리를 잡자마자 동거를 요구하는 것은 첫 번째가 새들이었다. 이름만 예쁜 산까치가 손을 내밀었고, 참새떼가 몰려와 농성을 벌이곤 했다. 체면 불고하고 테크에 집을 지으려는 산까치와의 협상은 순식간에 결렬되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세입자의 불손한 태도 때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떼를 지어 소란을 피우고, 갖가지 검불을 물어다 집을 짓는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더럽혀지는 데크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고 특히 그들의 배설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산란기가 되면 사람을 해치려는 태도가 더욱 불손해 동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설치한 것이 바람개비였는데, 처음엔 바람개비도 상관없다는 듯이 집을 지었다. 하지만 산바람을 타고 쉼도 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당할 수는 없었는지 집 짓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매정하게 산까치와의 동거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참새는 태도가 달랐다. 처마 밑에 조용히 집을 지으려고도 하지만, 산까치보다는 젊잖은 태도와 다소곳하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 쉽게 양보하며 적어도 난동은 피우지 않는 참새들이었다.
지난해에는 참새와 동거를 허락하였다. 참새들은 일층과 이층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새살림을 꾸렸었다. 그런데 동거를 허락하고 보니 세입자의 태도가 바뀌고 말았다. 각종 검불과 배설물로 데크를 하얗게 더럽혀 놓는다.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 대는 소리는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새끼는 밥 달라고 떠들고, 어미는 밥 먹으라고 지껄인다. 할 수 없어 참새마저 동거를 거부하려 했으나 이미 새끼를 부화해 놓은 상태라 어쩔 수가 없는 시기가 되었다. 그렇게 지난해에는 참새와 동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에 세입자의 태도가 너무 불손해져 올해에는 동거를 허락하지 않을 태세였다. 아이들이 시골집을 찾던 날, 바람개비를 처마 밑에도 설치했다. 세입자의 난동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봄이 익어 가고 있었다.
푸르름이 익어 가고 꽃이 피면서 참새들의 동태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 언제나 그들은 떠들고 날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바람개비를 설치하고 난 후, 며칠간은 참새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숲 속에서 날아다니거나 하늘을 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여름이 다가오면서 방심하는 사이 참새들의 단체행동에 동거 불가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동안 살금살금 드나들며 처마밑 구멍구멍에 슬며시 신혼집을 차린 것이다. 일층 처마 밑은 물론, 이층 처마 밑 곳곳에 새끼를 부화해 난리가 났다. 어미는 밥을 먹으라 짹짹거리고, 새끼는 밥을 달라 짹짹거린다. 집안이 온통 새집인지 내 집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엔 바람개비를 기피하던 참새가 어느덧 바람개비와 동무가 되었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늘도 아침부터 시끄럽다.
녹음이 가득해진 시골의 아침이다. 무엇이 그리 신이 났는지 참새들은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연신 처마 밑에 마련한 그들의 보금자리를 찾아 드나든다. 햇살 맑은 아침, 이층 서재 앞산은 녹음으로 가득하다. 밝게 내린 햇살로 파란 나무들이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질세라 참새들도 한몫을 거드는 아침이다. 연신 새끼들이 배가 고플까 걱정인가 보다. 무엇인가를 연신 물어 나르느라 잠시도 쉴새가 없다. 처마 밑에 다가가면 멀찌감치 앉아 동태를 살피고 있다. 무법자처럼 신혼집을 차려 놓고 새끼까지 부화시켜 놓은 참새,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어린 새끼와 어미를 내 쫒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계절의 여왕 5월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녹색으로 단장한 자연이 고맙고, 거기에 꽃까지 선사해준 자연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두렵기만 하다. 무거워진 녹음에 숙연해지고, 자그마한 텃밭이 가득해짐에 가슴마저 뿌듯하다. 아침에 바라보는 자연은 오늘도 말없이 인간에게 베풀고 있다. 자그마하던 고추모가 서서히 자라 꽃을 피우고, 고만고만한 토마토가 노란 꽃을 달고 있다. 우두커니 서 있던 가지는 어느새 팔을 벌렸고, 그늘에 심었다고 서러워하던 상추와 케일이 잎을 키워 놓았다. 쑥갓은 어느새 키를 불려 껑충하니 서있다. 이에 질세라 아욱과 시금치 그리고 하루나가 훌쩍 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곳곳에 자란 취나물이다.
시골에 자리하고 아내는 이것저것을 심느라 여념이 없었다. 꽃을 심고, 취나물을 심었으며 곳곳에 꽃을 피우는 것은 모조리 심어 놓았다. 대지에 심어진 그들은 누가 거들떠보지 않아도 키를 불리고 몸집을 늘려 씨앗을 만들었다. 씨앗은 해를 넘겨도 어김없이 싹을 틔웠고, 곳곳에 자란 취나물이 그렇다. 아내는 취나물을 한 움큼 따 온다. 살짝 데쳐서 무쳐 먹는 취나물 맛은 어느 반찬에 비할 수 있을까? 덩달아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밝은 아침, 오늘도 참새들의 수다는 그칠 줄을 모른다. 살아 보겠다고 집을 짓고, 새끼를 부화시킨 참새가 오늘도 옆에서 치근거린다. 새끼를 데리고 집을 나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이래 저래 푸근한 자연 속에 무료로 살아가는 나, 참새라서 살 수 없다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밤새 조용하던 시골집을 참새가 깨워주고 이웃 닭이 새벽을 알려준다. 앞산 꼭대기에 사선으로 내리는 햇살이 가뿐 숨을 멎게 한다. 하늘거리는 낙엽송 위에 작은 물방울을 남긴 아침 이슬, 그래도 남은 물방울이 안갯속에 젖어든다. 숨이 멎도록 아름다운 초록에 묻혀 은은히 풍겨오는 커피 향에 가슴 저려오는 아침이다. 잊지 못할 이른 아침의 살아가는 풍경이다.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누리는 자연 속에서, 나는 살 수 있고 참새는 살 수 없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 것 같아 가슴을 움츠리게 한다. 아침내 떠들어대는 참새와 동거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늦은 봄날에 만나는 자연과의 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