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잘한 꽃들의 잔치가 열렸다.

(자잘한 꽃의 아름다움, 지치도록 화려했던 꽃잔디)

by 바람마냥

눈을 뜨니 창문이 환하다. 밝은 햇살이 찾아온 모양이다. 얼른 일어나 창문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불러들였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시골의 맛이다. 앞산에도 초록이 부른 햇살이 반갑게 찾아왔다. 아내는 벌써 잔디밭에 나가 서성이고 있는가 보다. 잔디밭에 잡초도 뽑고, 수많은 꽃들을 챙기느라 오늘도 서두른다. 꽃들을 돌아보며 안녕한가 찾아보는 것이 새 아침의 시작이다.


서둘러 잔디밭으로 나가보니 밝은 햇살이 내려왔다. 푸른 잔디에 내린 이슬도 빛이 난다. 이슬이 다칠까 봐 잔디밭 가에서 서성인다. 여전히 앞 도랑엔 시원한 물이 흘러간다. 쉼도 없이 흐르는 도랑물이다. 자갈을 만난는지 한없이 쫑알댄다. 기분 좋게 잔디밭에 들리는 소리이다. 서둘러 채마밭에 가야 한다. 키를 얼마나 불렸는지 궁금해서이다. 밤새 키를 부쩍 불렸다. 신기한 대지의 힘이다. 잔디밭을 둘러싼 가장자리는 한적한 시골집을 빛내주는 보물 같은 정원이다. 언제나 신비스러운 꽃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리 탓도 하지 않고 할 일만 하고 있다. 많은 꽃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것은 역시 꽃잔디였다.

IMG_8344[1].JPG 화려한 꽃을 거둬들인 꽃잔디

꽃잔디, 초봄부터 푸름을 주더니 분홍과 빨강이 섞인 꽃이 피었었다. 지면을 덮고 있어 지면패랭이라 하는 꽃이다. 겨우내 죽은 척 누워있던 꽃잔디가 봄빛이 완연하자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꿈틀거렸다. 한참을 머뭇거려 걱정했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화려한 꽃으로 잔디밭 가장자리를 빛내 주었다. 큰 키로 아름다움을 과시하지 않고 세상의 꽃들을 빛내주는 조연으로서의 예쁜 꽃이었다. 서서히 봄이 지날 무렵 슬며시 꽃을 거두어들였다. 꽃을 거둔 꽃잔디는 푸르름으로 화답했다. 검푸름으로 지면을 덮으며 세를 불렸다. 화려한 이웃 꽃을 빛나게 하는 조연을 자처했다. 조연을 자처하는 꽃으로는 꽃잔디 말고도 있다. 바위취가 있고 기린초가 있으며, 봄맛을 돋워주던 돌나물이 있다. 채소밭 끝 바위틈에 자잘한 바위취가 보인다.


바위를 가득 덮었던 바위취가 꽃대를 세운 지 며칠 되었다. 길쭉하게 키를 키웠고 주저리주저리 꽃을 피웠다. 하양에 보랏빛이 먹금은 꽃을 다닥다닥 피웠다. 흔히 만날 수 없는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푸른 잎에 하얀색 줄무늬가 그려진 잎 위로 기다란 꽃대를 세웠다. 가냘픈 꽃대 위에 작은 꽃을 얹었다. 살아있음의 신기함에 아름다움을 가득 실었다. 종을 번식시키기 위한 성스런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무심한 바위를 감싸고 달빛 같은 소박함이 시골스러워 좋다. 자신을 드러냄 없이 언제나 무뚝뚝한 바위를 푸근하게 감싸 안았다. 신기한 자연의 묘기였다. 봄철에 바위를 덮었던 돌나물도 성스런 의식 중이다.

IMG_8332[1].JPG 바위취가 꽃을 피웠다

너무 많은 식구를 불린 돌나물을 나 몰라라 두었었다. 서서히 바위를 넘어 잔잔하게 세를 불리던 돌나물, 노란 꽃을 자잘하게 피웠다. 무심하게 봐왔던 돌나물 꽃, 처음으로 자세히 보는 꽃이다. 자잘한 아름다움이 어두운 뜰을 환하게 비추어 준다. 맛깔난 봄나물이 되었던 돌나물이 노란 꽃으로 분장을 하고 무관심에 반항하는가 보다. 노란 꽃으로 분장한 돌나물에 갑자기 미안해진다. 염치없이 번져가는 대식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중이다. 노랗게 색을 가득 실고 뒤뜰을 환하게 비추며 이웃 푸름을 빛내주고 있다. 새봄에 주는 상큼한 맛보다도 아름다운 꽃 맛이 훨씬 능가하고 있다. 대문가에는 자잘한 기린초가 자리 잡고 있었다.

IMG_8310[1].JPG 소박한 돌나물이 꽃을 피웠다.

노랗고도 자잘한 기린초가 노란 꽃으로 화단을 가득 덮었다. 麒麟草(기린초), 잎모양이 전설 속의 상상동물 기린의 뿔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언젠가 자전거길에서도 만났던 그 꽃이다. 바위틈을 가득히 덮었던 기린초가 화단을 노란 꽃으로 가득 메웠다. 기린은 원래 상상 속의 동물이었다고 한다.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를 달았고, 발굽은 말과 같으며 오색의 색깔을 가진 동물이었다고 한다. 수컷을 麒, 암컷을 麟이라 하여 기린이라 하였는데, 명나라 때 아프리카에서 온 목이 긴 동물을 전설 속의 동물 '기린'이라 하였다한다. 기린의 뿔을 닮은 기린초가 푸르름 위에 노랗게 꽃을 피운 것이다.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계절을 노래한다.

IMG_8315[1].JPG 기린초의 아름다움

세상에 주연만 있을 수는 없다. 조연 없이 주연은 영원히 빛날 수도 없다. 조연과 어우러지며 주연은 서서히 빛이 나고, 덩달아 조연의 값어치를 알 수 있다. 꽃 중에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꽃을 피웠다 거두는 조연들이 많이 있다. 서둘러 피지도 않고, 화려한 빛을 발하지도 않는다. 봄철에 와도 조용히 피어 화려한 이웃 꽃들을 빛내주는 꽃들이다. 무심한 바위를 쓰다듬어 주는 바위취가 있고, 노랑으로 물들여주는 돌나물이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노랑으로 화단을 빛내주는 기린초가 있으며, 꽃을 접고 푸름으로 조연을 자처한 지면패랭이가 있어 화단은 한층 빛나는 계절이다. 사람의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조연이 있어야 주연이 있을 수 있고, 주연은 빛이 날 수 있다. 많은 세월 속에 보낸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거센 맞바람은 없어도 미미한 바람은 늘 있었던 삶이었다. 가난이 그랬고, 환경이 그랬으며 타고난 DNA가 그러했다. 하지만 주연이 되고 싶어 언덕을 굳이 넘고 싶지 않았었다. 수많은 주연들이 넘는 언덕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애초에 주연이기를 거부했던 삶, 조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조연으로서의 충분한 역할이 즐거웠고 늘 감사한 삶이었다. 아침 바람에 나선 뜰앞에 작지만 소소한 재미를 주며 조연을 자처한 꽃들을 마주한다. 소박한 바위취와 돌나물이 고맙고, 뜰앞을 훤하게 밝혀주는 기린초와 꽃잔디에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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