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길에서 만난 생각

(새벽 산길에서 만난 생각)

by 바람마냥

새벽에 눈을 떠 보니 6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날은 밝아져 창문이 환해졌다. 대개는 늦게 자는 습관 때문에 여섯 시가 넘어야 일어나는데 오늘은 조금 일찍 눈이 떠졌다. 누워 있을 수도 없어 일어나 창문을 모두 열었다. 밤까지 비가 추근거려 습기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환기를 시키기 위해서이다. 문을 열고 현관문을 나서는 소리가 나도 아내는 아직 자고 있나 보다. 조용히 현관문을 닫아 놓고 화단으로 내려섰다. 화단은 밤새 안녕한지 그리고 자그마한 밭이지만 채소는 얼마나 자랐나 흘깃 눈길을 준다. 어제 내린 비로 잔디밭과 채마밭엔 푸름이 가득하다. 아침마다 기분 좋게 시작되는 아침이다.


새벽 운동을 하러 가기에는 너무 이르다. 지금쯤 체육관으로 가면 사람이 너무 많다. 얼마나 사람이 많아 이 시간대는 피해서 가야 한다. 생각 끝에 뒷산엘 오르기로 했다. 어제는 저녁까지 비가 왔기에 운이 좋으면 고사리가 나왔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주섬주섬 장화를 챙겨 신고 적당한 스틱을 하나 들었다. 도랑을 건너 산에 오르는 길, 늘어진 나뭇가지엔 빗방울이 가득하다. 머리에 스치는 가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입고 간 얇은 점퍼에 물이 떨어져 금방 젖어 버린다. 조심스레 나뭇가지를 피해 가면서 산길을 오른다. 언제나 조심스레 오르는 산길, 오늘도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앞선다.

길쭉한 낙엽송이 푸름을 과시한다.

우선은 산새들에게 제일 미안하다. 조용히 자고 있던 산새들이 이곳저곳으로 날며 울어댄다. 오늘도 오지 말 것 그랬다는 생각을 하며 망설인다. 벌써 옷은 젖었고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기도 민망했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곳엔, 언젠가 거센 바람이 불 때 떨어진 삭정이들이 산길에 수북하다. 세월을 견디지 못한 낙엽송은 가로로 누워있다. 삭정이를 치우고 쓸어진 낙엽송을 피해 가면서 간신이 산길을 벗어났다. 산길을 벗어나자 나타난 작은 화전 밭, 지난해에는 주인의 부지런함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산객을 맞이했었다. 주인이 바빴던 모양이다. 밭에 나무와 풀이 가득히 자라 있다. 오늘의 시골 풍경을 보는듯해 씁쓸하다.


시골의 모습, 곳곳에 풀이 수북한 밭이 그대로 있다. 오래전엔 어림도 없는 모습이 이곳저곳에 보인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손바닥만 한 뙈기밭도 남아 있지 않았었다. 무엇이라도 꽂아 대지의 힘을 얻어 보고자 발버둥치곤 했었다. 산골짜기 깊은 산골에도 남아 있는 밭이 있을 리 없었다. 한가한 마음을 다잡아 이곳저곳을 살피는 중, 잠자던 고라니를 깨우고 말았다. 다행히도 멀리 달아나 주는 고라니가 고맙지만, 새벽잠 깨운 죄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서둘러 이슬을 털고 언덕을 올랐다. 지난해에 많은 고사리가 있던 언덕이다. 숲을 이룬 풀을 제치고 올라선 언덕 위엔 풀만이 무성하다. 웬일인지 고사리는 만날 수가 없다.

부지런한 밤나무, 벌써 꽃을 피웠다.

시골에 자리를 잡고부터 고사리를 알게 되었다. 시골에 이사를 오자 이웃이 자랑을 한다. 동네 뒷산에 고사리가 많다는 것이다. 고사리에 관해 들었지만 바쁜 생활 속에 잊고 살았다. 그러던 중, 이웃과 산길을 동행중에 고사리에 관해 알려주었다. 고사리가 있는 곳과 꺾는 법 등 고사리에 관해 처음으로 알게 된 곳이다. 지난해에는 제법 많은 고사리를 꺾었었다. 마침 손녀가 고사리를 너무 좋아해 아내는 매년 고사리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생산지를 알 수 없는 것보다는 손수 채취한 것을 늘 자랑스러워했었다. 그런데 귀한 고사리가 없는 것이다. 발 빠른 누군가가 엊저녁에 다녀갔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중에 주변이 갑자기 밝아졌다. 컴컴하던 영화관에 갑자기 영화가 시작된 것이다. 신비한 골짜기 영화관에 밝은 빛이 찾아왔다.


앞 산을 넘은 햇살이 찾아온 것이다. 나무 사이로 쏜 화살처럼 날아온 한 줄기 햇살, 신선한 공기와 함께 신비스러움을 준다. 신기한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산 짐승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부지런을 떨었더니 이런 호사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골짜기에 피어 오른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맑은 물방울이 맺힌 푸름이 햇살에 빛난다. 멀뚱멀뚱 서 있던 나무들도 밝은 햇살에 깜짝 놀란다. 서서히 햇살이 넘치면서 산은 완전히 알몸을 드러냈다. 푸름에 맑음이 섞여 온 산은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풀과 잔나무로 가득한 비탈밭엔 아직도 햇살이 오지 않아 푸름만이 남아있다. 푸름 중에도 옅은 녹색에 햇살이 찾아왔다. 투명한 종잇장처럼 속살이 훤히 보이는 나뭇잎이다. 아름다운 녹색의 출렁임에 눈길을 잡지 못했다. 황홀한 시골의 아침 산이다.

햇살이 가득히 찾아왔다.

아직도 이슬에 젖은 작은 풀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작은 물방울도 감당하기 힘겨웠나 보다. 지기 한 몸 추단 하기도 힘겨워 쓰러진 나무들이 즐비하다. 세월을 감당하기 힘겨웠나 보다. 햇살에 반짝이던 나무들이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쓰러진 몸에서 나온 가지엔 아직도 잎이 무성하다. 살아나려 안간힘을 쓰는듯해 안타깝기도 하다. 어떻게 세워 줄 수는 없을까? 괜한 생각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하다. 삶의 응어리를 안고 세월을 견디지 못한 것 같아 발길이 주춤해진다. 발길을 재촉한다. 서둘러 체육관에 가야 해서이다.


서두르는 발길을 푸르른 다래 잎이 막아섰다. 푸름에 이슬을 먹은 싱싱한 다래 잎이다. 싱싱함에 햇살이 찾아와 눈 둘 곳이 없다. 반짝이며 튀어 오른 햇살에 눈이 부신 것이다. 아름답고 싱그러웠던 청춘이 떠오른다. 누구나 누려 보았던 아름다움 청춘, 푸르름에 빛나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푸르름을 푸르름으로 알지 못한 세월이 아쉽기도 하다. 삶에 눌려 찾지도 못해 본 싱그러운 푸르름이었다. 세월의 무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맑은 햇살에 푸름이 빛나는 나뭇가지를 보며 생각해 본다. 청춘인 듯 아닌 듯 한 남은 삶은 신나는 굿판이었으면 좋겠다고. 아침 산행길에 문득 드는 오늘의 생각이다.

keyword